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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호/신작시/김경수/무엇이 아름다운가요?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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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312회 작성일 17-10-2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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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김경수






무엇이 아름다운가요?




오래된 책에서 늙은 노을이 걸어나옵니다.
노을은 배교背敎를 거부하고 목을 길게 늘어뜨린
이백 년 전 조선 천주교 순교자의 천국을 보았을까요?
맹추위에 기진맥진한 작은 직바꾸리 새가 길 위에 엎드려 있고
행인들은 죽은 새인 줄 알고 그냥 지나쳐 갑니다.
오래된 책에는 쓸쓸한 인생에 대해 번민하는
글자의 흔적이 누렇게 번지고 있지만
모든 것이 없는 죽음이 아름다움인가요?
오래된 책 속에 누워 늙어가던 구름이 묻습니다.
내가 쓰러져 누운 직바꾸리 새를 집으로 데려와 따뜻하게 해주자
새는 파닥이며 멀리 새들의 무리 속으로 날아갑니다.
그러니까 오래된 책 속에서는 꽃들이 강물처럼 흘러갔습니다.
글자가 깃발처럼 펄럭이기도 하고 강물로 뛰어들 준비를 합니다.
저 강으로 뛰어드는 절망의 뒷모습이 더 아름다운가요?
죽음을 피해 날아 올라가는 새의 날갯짓이 더 아름다운가요?
오래된 책에서 오래 전의 새들이 안부를 물으며
빛바랜 글자들과 이야기를 합니다.
나무에도 마음이 있어 물방울로 맺히는 시간의 덩어리에 대해
새들이 마음을 읽고 시간을 읽고 순간적으로 사라집니다.
가슴을 찢는 아름다움이네요.
산山을 향해 먼저 떠난 사랑하는 이의 안부를 묻는 것은.





편지와 물고기




애인에게 보낼 편지를 들고 찬 바람에 떨고 있는
한 소심한 사내가 강물 속을 들여다본다.
물고기는 물의 치마에 새겨진 문양文樣이다.
물 속 자유민주공화국에서 비로소 자유를 쟁취한
푸른 지느러미가 맑은 소리를 매달고 흔든다.
물고기의 내장을 통해 차가운 소리가 흐를 때
물고기라는 언어는 편안해진다.
물고기란 언어가
꼬리지느러미에 힘찬 사유思惟를 달고 강물 속에서 유영한다.
저녁노을이 산 뒤로 넘어가자
산이 짧은 순간 더욱 선명한 검은 색이 되어
언어들이 헤엄치고 있는 강 속으로 뛰어든다.
물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흰 꼬리지느러미를 단 시간이 끊임없이 사라지는 것을
파란 수초 같은 현재가 끊임없이 새로운 현재로 바뀌어지는 것을
물고기는 시간도 흐르는 알갱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象徵이다.
사라지는 존재가 사라지는 시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물고기란 언어가 사라지는 인간의 뒷모습을 측은하게 바라본다.
한 소심한 사내가 살고 있는 산 속 작은 집 창문을
저녁 7시가 두드린다.
애인에게 보낼 편지를 아직 보내지 못하고 있다.
편지가 한 사내의 마음을 읽고
꿈 속 우체통으로 스스로 들어간다.





김경수_1993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하얀 욕망이 눈부시다』, 『다른 시각에서 보다』, 『목숨보다 소중한 사랑』, 『달리의 추억』, 『산 속 찻집 카페에 안개가 산다』, 이론서 『알기 쉬운 문예사조와 현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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