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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호/신작시/소율/체리, 수근수근 색깔론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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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369회 작성일 17-10-26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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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소율




체리, 수근수근 색깔론




세상에나, 온통 빨갛게 물이 들었군
봐봐 온몸에서 교태가 좔좔 흐르고 있잖아? 수상해


우연이었어 급경사진 몽마르뜨 언덕을 오르던 그 날
마침 후미진 골목의 근처 좌측 한 켠에 무더기로 쌓여있던
하필 레몬도 오이도 아닌, 체리의 붉은 유혹에
이끌려 가는 사람들 따라 무심코 발길을 돌렸을 뿐이고
그곳에서 홀린 듯 쌈짓돈 통째로 탈탈 털렸을 뿐이고
한밤중 백야가 잠드는 개선문 아래로 나가
달달한 체리의 살집 잇몸이 짓무르도록 베어 먹었을 뿐이고
그러다 바닥에 검은 씨알 하나 툭 뱉어내었을 뿐이고


세상에나, 온통 빨갛게 물이 들었군
봐봐 온몸에서 교태가 좔좔 흐르고 있잖아? 수상해


수근대는 사람들 사이를 뚫고 새빨간 선그라스를 머리에 인
눈이 빨갛게 충혈된 여자가 조심조심 비행기 트랩을 내려온다


공항 내 전광판엔, 체리로 변장한 한 여자가 파리 발 비행기를 타고
방금 국내로 잠입했다는 첩보가 속보로 뜬다
여자가 황급히 제 빨간 그림자를 걷어안고 사라져 갔다
그날 이후, 체리는 지금도 여전히 수, 배, 중이다








어쩌면 마술을 부려야 할지도 몰라
목재를 들어 올려 기둥을 세우고
빨간색 기와로 된 지붕 올린다 한들
으랏차차 지구는 온종일 대패질만 해대고
눈먼 고양이들은 밤새 제 사랑을 찾아 헤매지
헤이! 잘, 살아가고 있는 거야?
심심하게 안부를 묻던
마술사가 손을 흔들자
장미꽃이 지팡이로, 뱀으로 꿈틀거리다
순식간에 비둘기 날아오른다
오 케세라세라*
혹, 한 방에 훅 갈지도 모를
단 한 번의 로또를 기대해도 좋으련?
천연덕스레 웃고 있는 미녀가 들어있는 상자
안으로 날 선 칼들 무작위로 꽂히어들고
헤이! 잘, 버텨내며 가는 거지?
저녁이면 만찬장에선 커튼 뒤에 숨겨져 있던 그림자
꼬리 밟힐라
오 케세라세라

   * ‘잘 될 거야’란 뜻을 가진 스페인어로 긍정적 희망을 주고자 할 때 쓰는 말.





소율_1994년 《예술세계》로 등단. 시집 『브래지어가 작아서 생긴 일』,  『내 얼굴 위에 붉은 알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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