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66호/신작시/천세진/기호가 떠났다 외 1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81회 작성일 17-10-26 18:17

본문

신작시



천세진





기호가 떠났다




마을에서 또 기호가 사라졌다. 한때는 이국異國에서만 살았으나, 이제 날선 고드름이 사는 이 땅의 사육장에서도 발견된다는 새와 같은 이름을 갖고 있었던 식당 ‘타조’.


생선, 야채, 과일, 삼겹살, 낙지, 메밀을 내세운 기호들이 그리 오래 버티지 못했던 이 동네에서, 젊은 식당 주인 사내가 탄생시킨 양식은 한때는 이국異國의 사람들만 먹었다던 여러 종류의 파스타였다.


기호가 이해되지 않으면 주인도, 그의 시간도 이해되지 않는다. 어떤 장소들은 기호를 이해할 시간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 곳도 있다.


TV를 보는 시간이 점차 많아졌던 식당주인이 떠나자마자 기호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기호를 거둘 기력마저 잃고 떠났다. 불이 켜지지 않는 기호는 그 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걸려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기호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다시 기억해냈을 즈음, 또 다른 기호가 그 자리에 걸리며 사라졌다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단 하나의 기호를 가질 뿐이다. 하나밖에 갖지 못한 이들에게 기호는 목숨. 거리는 기호들로 화려하지만, 목숨의 기호들은 화려함 뒤에 공포를 숨겨놓고 있다.





기호의 마트에 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금도를 넘었다.


땀이 흐르는 근육에 힘을 모아 발풀무를 구르고, 쇠를 벌겋게 달구어 모루에 올려놓고 수백 번 두들기기를 여러 차례


모양 잡힌 기호에 나무 손잡이를 단단히 박아 건네주고, 비 가릴 지붕과 불 땔 장작과 아이들에게 줄 따뜻한 통닭을 사들고 돌아오며 세어보는 셈은 밑져도 본전은 하는 거래였다.


모든 기호의 주인이 친절하고 속임수를 안 썼다는 것이 아니다. 멱살잡이 숱하게 벌어지고, 더러 소주병도 깨지고 단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지만, 얼굴이 다르듯 저마다 다른 기호를 팔고 살았다.


기호가 기호를 생산하다니!


엄청나게 큰 기호의 마트에 갔다. 한때 자기 기호를 팔고 살던 이웃들을 만났다 마트의 기호를 티끌하나 없도록 왁스를 먹여가며 걸레질하고 있었다. 한 이웃은 입구에 서서 마트의 기호에 대해 목숨 걸고 선전하고 있었다.


 더는 멱살잡이 할 이웃이 없었다.






천세진_2005년 《애지》로 등단. 시집 『순간의 젤리』. 인문학칼럼니스트. 영화칼럼니스트.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