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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호/신작시/윤고방/도시여 제발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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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윤고방
도시여 제발
나를 부르지 말게나
부끄러운 내 손을 이제 그만 놓아 주게
써늘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째깍째깍 초침 소리에 맞춰
시대의 영묘한 부름에
단 한 번도 속시원히 대답한 적 없는
세상의 빈틈없는 경영 전략에
눈치 빠른 박수 한번 쳐보지 못한
이 미련한 나를 용서하지 말게나
변두리 길거리로 몰아내도 괜찮네
아주 그냥 하늘나라 청소부나
용궁 문지기로 강등시켜도 괜찮지마는
속이 죄다 내비쳐 보이는 이웃들과
어여쁜 미물들이 다스리는 산골 아래
흰 강아지와 검정 고양이들이
국경을 지키는 나라에 살겠네
평생 흘린 식은땀을 씻어낼 때까지
도시여 제발
날 좀 그냥 내버려 두게
이쑤시개의 변명
꿈틀거리는 목숨이 우주의 멱살을 잡고 있다
아름다운 진도 세방낙조*의 서녘 하늘이
오색 비단으로 낙지의 온몸을 휘감고 있다
맛깔스런 섬 사투리로 육두문자를 쏟아내는
토박이 해설사 아줌마는
곧 세방낙조가 세발낙지로 변신한다 했는데
바야흐로 저녁 밥상 위에서는
천상천하 아리따운 세방낙조가
꿈틀거리는 세발낙지로 환생하는 찰나
토막난 종아리 목타는 발가락들이
열사의 연옥을 걷고 있다
녹슨 윤회의 쇠사슬을 모랫벌에 끌면서
한 목숨이 한 우주로 통하는 길목
느긋한 이쑤시개로 뽑아 올리는 꽃다운 낙조
여기는 산 낙지 전문점
*세방낙조細方落照: 전남 진도 바닷가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저녁놀.
**약력:1978년 《현대문학》 초회 추천. 1982년 《한국문학》으로 등단. 시집 『하늘 가리고 사는 뜻은』,
『바람 앞에 서라』, 『낙타와 모래꽃』. 경기문학상 본상, 한국문학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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