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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호/신작시/유현아/거리의 공무원을 생각하는 일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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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462회 작성일 17-01-03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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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유현아





거리의 공무원을 생각하는 일



어느 나라의 공무원이 하는 일은 거리의 가스등을 날마다 켜고 끄는 일이라지


길게 늘어선 가스등에 하나씩 불을 붙이며 어떤 낭만을 생각하는 일이라지


희미하게 노란 냄새를 맡아본 적 있니
어떤 나라에선 노랑을 기억하는 것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나라가 있다는데


게릴라의 그림자들처럼
순순히 어둠의 문턱을 뛰어넘는 낭만주의자들을 생각한다


모두 폐허가 되기 전에 바로잡을 필요가 없는 시간
어느 나라의 낭만적인 공무원을 꿈꾸는 시간


그곳에선 어쩌면 조금 더 진지해도 되겠지 조금 더 침묵해도 되겠지 조금 더 더듬거려도 되겠지 조금 더 울어도 되겠지 그리고 혁명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겠지


바람을 어깨에 메고 자신의 이름을 딴 마법지팡이를 가지고 있는
가스등 켜는 소리와 그을음 냄새를 간직한 낭만주의자들이 있는   


안개가 내려앉은 축축한 새벽 거리를 슬그머니 걷다보면
간밤의 이야기를 지그시 끄는 공무원을 볼 수 있는 거리가 있다지







절대 비밀 받아쓰기



이모 이건 절대 비밀이야
엄마가 알면 큰일 나
엄마는 잔소리쟁이고 욕쟁이고 울음덩어리를 가지고 있으니까


이모 나 갈빗집에서 알바 해
손님들이 여기요! 하면 저기로 달려가 주문 받고
손님들이 야! 해도 신나게 달려가 상을 치워주는 일이야
휴대폰 벨이 천둥처럼 울려도 절대 전화 받으면 안 되는 거야


나쁜 친구들하고 어울리느라 늦게 들어온다고 이모한테 하소연해도
절대 이야기하면 안 돼


엄마가 내 교복에서 술 냄새 난다고 한 건
어떤 이상한 아저씨가 술을 쏟았기 때문이야
엄마가 내 교복에서 담배 냄새 난다고 한 건
어떤 무서운 아저씨가 담배연기를 뿜었기 때문이야
엄마가 내 무릎 까졌다고 속상해 한 건
쟁반 들고 빨리 걷다 넘어져서 그런 거야, 별 거 아니야


아파도 서러워도 화나도 울지 않으려면 입술을 깨물면 돼
입술이 얻어터진 것처럼 흉터가 생긴 이유야


열여덟 살이 뭘 할 수 있냐고 절대 물어보지 마
나도 야자 하고 싶고 학원 다니고 싶고 용돈 받으면서 삼각김밥 먹는 거 좋아해


이모, 이모는 엄마 언니니까
동생이 슬프면 싫잖아 동생이 아프면 싫잖아 동생이 화내면 싫잖아
그러니까 이모 이건 비밀
글쎄 알바비 받으면 뭘 해야 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이모 이건 절대 비밀






**약력:2006년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 『아무나 회사원, 그밖에 여려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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