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64호/신작시/권기덕/라이트light 외 1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113회 작성일 17-01-04 00:42

본문

신작시

권기덕






라이트light



전등가게에서 전등이 하나씩 깨지고 있었다


검은 거미가 한 마리씩 깨어나 웃었다


웃음소리에 빈 의자들이 들썩거렸다


빛과 빛이 밀어냈던 자리,


검은 거미는 검은 거미를 잡아먹고


점점 더 큰 검은 거미가 되어가고


거미집을 짓는 대신


어둠을,


어둠 대신


무덤을 짓고 있었다


옆집 전등 가게에 있던 너는


나를 향해 비웃었고


한스 벨머의 인형*에게 입을 맞추었다


나는 끊임없이 졸면서


종이에 낙서를 했다


전등이 모두 깨진 뒤


검은 거미들은 낙서에 걸려 버둥거렸다


   *섬뜩함을 주는 구체관절형 인형으로써 억눌려있는 인간의 성적욕망을 표현함.







라이트wright




길거리에서 버려진 바지를 망치로 두드리고 있었지 죽은 나비 한 마리가 오른쪽다리 구멍에서 빠져나왔어 누군가의 이름을 나직이 불러주었지 망치질을 멈출 수가 없었어


간혹 사람들은 침을 뱉었어
바지로부터 자신의 얼굴이 나타나려 했기 때문이지


짐작컨대, 그들은
버려진 바지를 잘 알고 있거나
죽은 나비를 죽이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내 얼굴에 침을 뱉어본다)


서로 움직이는 동안
망치소리만 남고 관계는 사라졌어
낯선 지퍼에 얼른 동전을 넣었지


버려진 바지 옆에 그림자 두 개가 함께 망치를 두드리고 있었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길어졌지 석양이 내려앉을 즈음엔 바지에 다리를 쑤욱 넣은 뒤 휘리릭 달아나버리는 게 아니겠어? 다음날, 사라진 바지 옆에 또 다른 바지가 다시 남겨졌지만 말이야
 
바지에서 울음소리가 새나왔지
  죽은 나비가 불러준 그 이름이 들렸지
  다시 길거리에 웅크리고 앉아 망치를 두드렸지


  내 자신도 모른 채
  무언가를 쓰듯이 말이야








**약력:2009년 《서정시학》으로 등단. 시집 『P』.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