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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신작시/김연필/낮도깨비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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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김연필
낮도깨비
이 세상에 없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말할수록 희미해지는 그림자에 그림자 하나 덧붙이고 싶었다
멀어질수록 희미해져서 이제는 보이지 않는 그림자, 보이지 않아서 이제는 말할 수 없는 그림자, 말할 수 없어서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그림자가 되어서 이 세상에 없는 것들에 대해
이 세상에 없는 방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말할수록 이루어지는 것들 이룰수록 멀어져버리는 것들 멀어질수록 다가오다 흩어지는 이 세상에 없는 것들 이 세상에는 말이 많구나 말하지 않아도 이루어지는구나 말해도 되는 말을 생각하다
말할 수 없는 방법으로 말하는 법을 익히고, 그릴 수 없는 것을 그리는 방법으로 희미해지는 그림자를 그리고, 그리고 나서도 그리지 못하는 얼굴 하나, 몸통 하나, 발 하나, 손 하나
손 하나도 움직일 수 없는 우리가 있구나 발 하나만 움직일 수 있는 우리가 있구나 우리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아닐 수도, 우리가 아니기도 하구나
발자국 하나 남기고 멀리 뛰어 간 도깨비 하나, 도깨비의 방망이 하나, 방망이를 두드리면 무엇이 될까, 될 수 있을까, 되지 못 할까
희미해지는 그림자에 말할 수 없는 이름 하나 붙인다 말해도 소용없는 이름 하나 붙인다 생각해 보면 모든 이름이 소용 없구나 모든 말이 소용 없구나 무슨 소용으로 무슨 말을 하겠구나 그래 불안해도 떨어도 멀리 날아가도
발자국 하나 남기고 도깨비 하나 남기고
방망이를 두드리기만 하며, 희미한 것을 다듬이질만 하며
부조리한 예언
밤의 불안 속에서 우리는 침묵했다, 우리는 일종의 불안을 느꼈다. 일종의 불안 속에서 우리는 경계했다. 경계 너머로 날아가는 벌레 보였다. 검은 벌레, 날아가는 검은 벌레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를 예감했다. 벌레의 마음으로 우리는 우리의 불안,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불안과 침묵을 예감하며 날아가는 벌레를 떠올리며, 벌레의 큰 턱을 생각하며, 벌레에게 증오하고 벌레에게 슬퍼했다. 우리는 슬픔 속으로 들어갔다. 슬픔의 예견 속에서 우리는 다른 벌레를 떠올렸다, 파란 벌레, 파랗고 빛나는, 빛나기만 하다가 떨어지는, 우리는 파란 벌레를 예견하며 더욱 검어졌다. 우리는 검은 벌레를 예견했다. 우리는 검은 벌레를 불안했다. 우리는 검은 벌레를 침묵했다. 예견 속에서 검은 벌레 보았다. 경계 너머에서 춤을 추는, 달 밑에서, 달 같은 눈을 한, 우리의 끝을 부르려 해도 우리의 끝을 침묵할 수 없었다.
**약력:2012년 《시와 세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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