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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신작시/김화연/블루 사진관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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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김화연
블루 사진관
장미꽃 벽지 문 사이로 들어서는 그녀
생화인 듯 보이는 빨간 장미
꽃을 피우다가 문소리에 잠시 멈춘다
의자에 앉자
미소를 잡는 셔터는 휘파람을 불며
살아 온 길을 더듬는다
숨어 지내는 길들이 사방으로 걸어 나온다
지치고 패인 길
어둡고 늘어진 길이
휴지통에 구겨지듯 버린다
햇살이 녹아 있는 길
하나 남는다
손가락은 흙먼지 길에 아스팔트를 깔고 있다
뽀얀 선이 살아 있는 거리
거꾸로 가는 시계 바늘이 물을 적시고 있다
만개한 꽃이
싱그러운 줄기가
네모난 화면에서 수줍게 웃고 있다
오래된 앨범에서 졸고 있던 풋풋한 시간이 깨어났다
피우지 못했던 꽃봉오리가 방안에서 꿈틀거린다
돌아가지 못할 시간이 돌아온 블루 사진관
머물고 싶은 계절로 장미꽃 되어 걸어 나가고 있다
쇼윈도 사이에서
벚꽃이 활짝 핀 정자동 길가에
휘날리는 꽃잎이 떨어진 자리
쇼윈도에 진열된 중고 명품 핸드백이
은색 지퍼를 닫은 채 눈부시게 광이 났던 시간을 잡고 있다
햇빛 바른 유리창을 가만히 응시하는 꽃잎
누군가의 어깨에 매달려 습관으로 이어가던 생
반짝이는 거리를 누볐던 자리에
주름으로 패어 있는 외피
속살에 누렇게 찌든 기억의 잔상들이 점으로 남아 있다
빛이 마주치는 거리에는 꽃잎들의 세상이다
새하얗게 토해내고 있는 터질 듯 뽀얀 꽃잎
바람을 등에 업고 회전목마를 타며
가지마다 길마다 꽃이 풍경이다
내일은
봄비가 내린다는 것도 잊은 채 수다를 떨고 있는 꽃잎
이미 써 버린 시간으로 민낯이 되어 버린 가방
남은 시간의 경계에서 가야할 길은 오리무중이다
바닥에 놓여있는 가방과
바람 따라 춤을 추는 꽃잎이
팽팽하고 헐겁게 선을 그으며 시침을 돌리고 있다
길이 공존하는 유리창 사이에서 시간이 녹고 있다
**약력:2015년 《시현실》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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