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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신작시/봉윤숙/구름병동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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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봉윤숙
구름병동
구름은 빨리 흩어지기도 하고
모이기도 해요 마치 발작 같죠
창백한 인사에도 얼굴은 두근두근거리죠
바람이 자주 드나들던 구름 골목에는 버려진 신발 한 짝
오래된 우유팩처럼 부풀어 오른 호기심은
지루하게 하품하는 구름을
하모니카처럼 불죠
지금 아이의 몸 안에도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이 있어요
단 한 조각의 구름에도 세상은 어두워질 수 있고
아이는 흐린 날이 많았어요
흐린 날의 수채화풍 날씨가 몽실몽실 이동하고
눈이 퉁퉁 부은 날에는
입술 뾰족한 구름을 타고 울음 바깥으로 놀러 나가요
구름도 오래 걸으면 다리가 아플까요
이쪽 창문에서 저쪽 창문까지 입김을 불어 지나가죠
그럴 땐 나처럼 숨이 찰까요 입원실은 늘 숨이 차서
엄마 손을 꼭 잡고 있어도 그네를 타는 것처럼
앞뒤로 흔들려요
소아과 병동엔 작은 기침들이 놀아요
날아가지 않은 구름의 주둥이를 찾으며 놀아요
구름은 뭉쳤다 흩어지지만 늘 숨어있는 구름도 있어요
구름의 의사소통을 생각해 봐요
콜록콜록 기침하는 걸까요 아니면 콧물을 흘리는 걸까요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는 구름은 없어요
나는 묶여있는 구름을 풀어줄 거에요
엄마는 늘 나에게 묶여있다고 말해요
가느다란 잠 속으로 새빨간 피들이 지나다니고
나쁜 병은 폴짝폴짝 뛰어놀고 있어요
파란 수술복을 입은 의사들이
봄날을 수술대에 올리고 있어요
모락모락 피어나는 아지랑이들이
모야모야 자라고 있어요
대박 노래방
저 사람의 어디에 저런 표정이 숨어 있었을까
아득한 날들을 불러오는 저 사람들
내 노래라는 듯
옛일을 알려 주겠다는 듯
밑바닥에 숨겨왔던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노래를 만난다
애원의 기억도 악다구니의 기억도
높낮이가 다른 악보는 아닐까
누구나 노랫말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고개를 끄덕 살짝 끼어들고
리듬은
수십 번 내가 들락거린 집과 같다
와락 껴안았던 기억의 벤치에 잠시 무릎을 꼬고 앉거나
다소곳하게 돌아섰던 과거를 불러내거나
찰랑찰랑 마감시간을 재촉하는
탬버린의 시간
어느 순간
꼭 그 문을 들락날락한다
꽉 움켜쥐고 있는 마이크가 고스란히 듣고 있다
노래가 없을 때
재회의 목록도 신곡으로 바뀌어 가는
앙코르 없는 표정들이 끔뻑거린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가사는 높낮이가 다르다
순탄한 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막다른 길도 아닌
지금 우리는 간주 중이다
노래의 표정들이
노래방 책자의 번호 속을 들락거린다
**약력:201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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