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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책 크리틱/김연필/인간과 언어의 始原에 대한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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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365회 작성일 17-01-01 17:58

본문

책 크리틱

김연필






인간과 언어의 始原에 대한 그리움

― 김왕노 시집 『아직도 그리움을 하십니까』




0.
     ‘그리움’의 의미에 대해 사전에서 말하는 바는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이다. 아주 간단하고 짧은 의미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이 애타는, 그리움이라는 마음은 과연 보는 것만으로 해소되는 마음인가, 라는 의문이 남는다. 사전에 적힌 의미만을 그리움이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우리의 마음은 복잡하고, 그리움 또한 그런 마음이고, 이 마음은 그리워하는 대상을 만난다 해도 쉽게 풀리지 않는 마음이다. 결국, 그리움의 대상을 마주해도 여전히 그리움은 남는다.
    그렇다면, 왜 ‘그리움’일까? 보통, 이와 같은 의미의 문장을 말할 때에는 명사 ‘그리움’보다 동사 ‘그리다’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무래도 동사 쪽이 먼저 만들어지고 뒤에 그리움이라는 명사형이 만들어졌기에 동사로 사용할 수 있는 문장에서는 동사로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집의 제목에서는 굳이 명사를 사용해서 문장의 목적어 자리에 채운 것일까? 부자연스런 문장을 사용한 데에는 분명 의도가 있을 것이다. 이 의도를 알아내는 것이, 이 시집을 읽는 데에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1.
    그리움에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누구/무엇을 그리워하는지 알지 못하면 그리움의 감정도 알기 어렵다. 그리움의 대상은 사람일 수도 있고 사물일 수도 있다. 어떠한 지나간 순간이나, 지나간 순간에 가졌던 감정일 수도 있다. 김왕노의 이번 시집에서 나타나는 그리움의 대상이 무엇이라 딱 잘라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읽는 이마다, 그리움의 대상을 완전히 다르게 인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움이란 기본적으로 과거의 대상에 대한 감정이다. 아직 겪지 못한 일, 아직 보지 못한 사람을 그리워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만나보지 못한 대상에 대한 그리움도 존재한다. 과거에 존재했던 것에 대한 그리움이 그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의 시대를 그리워하고, 과거의 사람을 그리워한다. 김왕노의 그리움의 대상들도 그러하다.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다. 개인의 과거에 대한 그리움에서 시작해서, 원시의 또는 태초의 순간까지 그리워한다. 그의 그리움은 아주 뿌리 깊은, 시원始原의 그리움이다.
    이번 시집, 『아직도 그리움을 하십니까』에서 내가 읽은 그리움은 크게 둘로 나누어진다. 우선, 시의 소재와 화자의 진술에서 드러나는, 의미적, 내용적 그리움이다. 김왕노의 이번 시집은 제목대로 그리움에 관한 시집이며, 이전의 시집에서도 그리움은 그의 가장 중점적인 정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시에는 이러한 의미적으로 드러나는 정서적 그리움 외에도 다른 그리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시 속에서 드러나는 그만의 언어 사용의 특성을 살펴보면, 그의 언어 자체에 태초의 시와 태초의 언어에 대한 그리움이 드러난다.



어제도 갔고 오늘도 간다. 가도 갈 수 없는 당신이지만
바람으로 갔고 별로 갔고 밤으로 갔고 새벽으로 갔다.
당신은 일상을 당신으로 보내지만 나는 바람이 되고 별이
되고 밤이 되고 새벽이 되는 변화와 질주의 날이었다.
가고 가지만 또 나는 당신에게 간다. 간다 해도 만날
수 없지만 오늘 유난히 당신 창가에 와 우는 새가 나라는
것을 당신이 알지 못할 테지만 난 새가 되기 위해
내 뼈와 영혼을 비우고 난 조그만 새 한 마리가 되었다.
난 오늘도 가고 내일도 가지만 백 년 뒤도 가고 있을 것이다.


                                                                                                               ―「방문」 전문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 「방문」의 전문이다. 얼핏, ‘갔다/간다’라는 동사를 반복하기만 하며 모순된 진술을 만들어내는 것이 전부인 작품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를 읽다 보면 묘한 재미가 느껴진다. 반복되는 동사의 사용에 의한 리듬감 때문인 듯하다가, 당신이 간 곳의 빠른 변주, 나라는 존재의 빠른 변화가 겹치면서 의미적인 효과까지 만들어내어 이 짧은 글을 시로 만드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런 설명만으로 끝내서는 시에서 느껴지는 재미를 다 살펴볼 수 없다. 구체적인 언어로 분석해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리듬감이 시 속에서 생동하고, 이런 언어의 생동성으로 인해 언어가 단순한 의미 전달의 기호를 벗어나, 그 외연만으로 감각적 실체를 느낄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이다. 소위, 언어의 물질성이 잘 드러나는 시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폐교다. 교정에 잡풀만 무성히 우거져 도둑공부하고 싶어 창가를 기웃거리는 폐교다. 바람이 꽃가지를 붙잡고 수음하다가 떠나는 폐교다. 집 쫓겨난 개들이 들어와 흘레붙다가 말라가는 폐교다. 미루나무만 회초리 같은 가지를 휘두르다가 지치는 폐교다. 학교 종이 땡땡땡 치지 않는 폐교다. 포르말린에 갇힌 회충이 우는 폐교다. 어린별이 맨발로 옥상서 서성이다 가는 폐교다. 처녀인 너구리를 너구리가 따먹어버리는 폐교다. 꿈의 피딱지가 말라붙은 폐교다. 운동장 모퉁이의 수국에게 하늘을 칠판 삼아 가갸거겨오요우유를 가르치고 싶은 폐교다. 세상 먼발치서 조금씩 허물어져가는 폐교, 너희들이 낄낄거리면서 도둑담배를 태우고 교문을 발로 탕탕 걷어차던 폐교다.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우게 하던 폐교다. 다시 분교나 본교가 되고 싶은 낡고 오래된 폐교다. 탱자나무 가시만 탱탱한 폐교다.


                                                                                                                                                                 ―「폐교」 전문



    이번 시도 앞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대단한 시적 발상이나 표현은 특별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화자인 ‘나’와 대상인 ‘폐교’ 사이의 동일시와, 대상인 ‘폐교’의 이미지를 빠르게 계속해서 변화시키는 것만이 시적 효과를 위한 장치의 대부분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슥 읽어내리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시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시적 효과를 위한 장치는 거의 없지만, 김왕노의 언어 자체가 갖는 물질성과 적절한 위치에 배치한 반복만으로도 이 시는 충분히 시로 작동할 수 있는 작품이 된다.
    이런 의미 외적인 언어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는 언어 기호와 의미 사이의 관계는 자의적이라는 현대 언어학의 인식에 대한 반발이라 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언어와 세계가 분리되지 않은 시절, 언어가 아직 신성성을 갖고 주술로서 작용하던 언어의 태초까지 도달하고 싶은 마음이다. 김왕노의 시에서 꾸준히 보이는 시적 기법인 반복 또한, 세련된 의미적 기교에 치중하기보다는 투박하면서도 힘있는 고대 가요의, 아직 신비롭던 시절의 언어에 다가가는 행동이다.
    이런, 비유나 상징에 덜 닿은, 날 언어로서의 시를 계속적으로 추구하는, 언어의 생동성을 찾아가는 김왕노의 시쓰기는 언어의 태초와 시원始原에 대한 그리움의 표출이 아니겠는가.


2.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하지만 필자는 그렇다고 생각하는) 태초의 언어에 대한 그리움의 이야기는 접어두어도, 그의 시에서 나오는 정서의 대부분이 그리움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위에서 살펴본 두 편의 시만 살펴봐도 그렇다. 「방문」에서는 아무리 가도 닿을 수 없는 당신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고 있고, 「폐교」에서는 화자와 동일시되는 대상이자 화자가 애정과 쓸쓸함을 느끼는 대상인 폐교가 다시 아이들이 오가는 학교로 돌아가길 바라는 그리움을 느끼고 있다. 이외에도 시인은 많은 것들을 그리워한다. 여러 그리운 것들 중에서도, 그가 유난히 그리워하는 것들이 눈에 띈다. 그런 것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밤하늘을 자세히 보면
별자리 중 마방자리 하나 새로 생겼을 것이다.
작년 우레 속에서 아버지 목소리 들었으므로
하늘 가득 울려 퍼지던 말을 부르던 아버지 목소리
저승 가서 난봉가 부르며 사시는 줄 알았는데
저승서도 참대 같이 자라는 아버지 꿈
북벌을 이루려는 아버지 꿈으로
아버지는 스스로 저승 어디 마방 지으시고
말을 먹이시는 눈치이다.
어쩌다 잠 속에 현몽하신 아버지 모습
저승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말끔했지만
아버지에게서 나는 구수한 말똥 냄새는 속일 수 없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꿈이자 자식의 꿈 이루려고
마방자리 어느 별에서 오늘 밤도
호롱불 아래서 말굽을 홀로 갈고 계실 것이다


                                                                                             ―「마방자리」 전문



    시인의 주된 소재인 ‘북벌론’과 관련된 작품이다. 같은 책에 수록된 시 「그리운 파락호」에서는 이 시보다 북벌에 대한 의지가 훨씬 강하게 드러난다. ‘조선인 학생 괴롭히는 일본 생도들을 작살내어’ 온 화자의 아버지는 ‘왜의 정벌과 북벌은 민족의 대과제’라 말하며 북벌을 준비해 온 사람이다. 화자는 이런 사실을 모르다 뒤늦게 아버지의 행적을 알게 되고, 그런 아버지의 뜻을 자신의 삶에서 이루려 한다. 김왕노의 시 여럿에서 나오는 이러한 북벌에 대한 태도는, 얼핏 그를 남성성에 치우친, 소위 ‘마초 시인’으로 보이게 한다.
    하지만 위의 시를 살펴보자. 「그리운 파락호」와 마찬가지로 북벌을 꿈꾸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이 시에서 화자는 ‘작년 우레 속에서 아버지 목소리 들었’고 ‘어쩌다 잠 속에 현몽하신’ 아버지를 꿈을 통해서 접한다. 화자는 우레 소리에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정도로 아버지에 대한 간절함이 있는 자이며, 그 간절함에 꿈에서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이런 부분에서 아버지를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 즉 화자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생각해 보자. 시의 화자가, 시인이 이루고 싶은 것은 단지 ‘북벌’을 이루는 것인가,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어 아버지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고 싶은 마음인 것인가? 질문을 던지며 김왕노의 이번 시집을 읽는다면 북벌을 이루려는 남성적인 시인의 모습에서 오히려 아버지를 향한 끝없는 그리움, 아버지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고 싶어 하는 어린 소년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율희의 세계」에서 그는 원초적이고 이상적인 여성의 세계를 그리워하고, 원초적 여성인 ‘율희’를 그리워하며 여성성에 대한 동경을 보여준다. 이 ‘율희’는 윤리에 묶이지 않은, 원시의 여성이며 ‘율희의 세계’와 하나인 신적 존재이며 또 인간이다. 제주도 설화의 설문대할망처럼 인간이면서도 세계를 만들어내는, 아직 인위적 인간성이 다듬어지지 않은 원시적인 태초의 여성인 것이다. 시인은 계속해 이 ‘율희’와 만나길 바라고, ‘율희의 세계’에 닿기를 원한다. 이것은 생명의 근원인 여성에 대한 동경이며, 세계의 근원에 대한 그리움이라 할 수 있겠다. 「목포 그 여자」에서도 시인은 여성에 스며들고 싶어 하며 이런 여성성에 대한 동경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듯, 시인은 자신의 근원인 ‘아버지’를, 그리고 인류의 기원인 ‘여성성’을 끝없이 그리워한다. 또한 그는 꾸준히 바다와 연관되는 시어와 이미지를 사용하기도 한다. 「목포에서」에서는 개벽의 아침, 새로운 세상을 기다리면서도 계속해 바다를 떠올린다. 바다 또한, 생명의 탄생지로서 그의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의 그리움은 근원적 존재, 근원적 세계에 대한 그리움인 것이다.


0‘.
    이렇게 살펴본 두 그리움을 두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을 끌어오고, 다른 그리움이 다시 한 그리움을 끌어오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그리움의 절정을 보여주는 작품이 있다. 마지막으로 이 시집의 표제작을 살펴보며 마무리하도록 하자.

    한때 물방울이던 당신, 풀꽃에 맺히던 한 방울 당신, 이슬이던 당신, 부르는 작은 목소리에도 톡 터지려던 물방울 당신, 먼지만 닿아도 터지려던 당신, 아직도 그리움을 하십니까. 눈물방울보다 더 작은 당신, 언제 터질까 조마조마하던 당신, 내가 물방울이면 쉽게 엉겨붙어버릴 거라던 당신, 창문을 열고 먼 하늘을 바라보며 아직도 그리움을 하십니까. 마르면서 휘날리는 하얀 빨래를 보며 아직도 그리움을 하고 계시나요. 철거덕거리는 기차바퀴 소리가 잠을 잘게 쓸고 가면 가만히 일어나 아직도 먼 먼 그리움을 하십니까. 나를 닮은 물방울 하나 낳고 싶다던 당신, 가임을 기다리며 물방울로 반짝였던 당신, 속이 투명했던 당신, 물방울과 맺혀 있으면 찾지 못할 당신, 밤새 추적추적 비 내리면 내가 그리워 눈물방울과 운다는 당신, 당신이 정말 보고 싶었냐고 내게 물으며 자꾸 스며들던 물방울 당신, 하늘 이편에서 하늘 저편으로 사라지는 비행운을 보면 아직도 싱싱한 그리움을 하십니까. 기름 같은 나와는 끝내 섞이지 못한 물방울 당신, 물 같이 흘러가버린 당신, 아직도 달이 차오르면 짐승처럼 우우 울면서 끝없이 그리움을 하십니까. 벌써 내게도 온 그리움의 갱년기인데 우울의 긴 그림자를 끌고 가는 저녁, 아직도 당신은 그리움을 하십니까.


                                                                                                                                    ―「아직도 그리움을 하십니까」 전문


    앞서 살펴본 언어의 감각적 특성을 최대한 살린 물질적 언어의 적절한 배열과, 그리움의 정서를 최대한 살리는 의미적 표현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데에 성공한 시이다. 시를 읽어내릴 때에 느껴지는 독특한 감각만으로도 훌륭하지만, 그에 더해 당신에게 그리움을 묻는 방식으로, 화자 자신의 그리움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심화시키는 서술이 합쳐져 두 개의 실이 엮이듯 엮여 올라가며 시의 감동을 최고조로 올리고 있다. 이 시야말로 김왕노 시인의 수많은 시들의 정수를 통해 만들어진 최고의 작품이다.



    직접 그리워하지 않고, 명사인 ‘그리움’을 목적어로 사용한 것은, 그에게는 그리움이 목적이기 때문일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그리움이 가지는 정서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그리움을 시의 중심적 동력으로 사용하려는 것이다. 그리움은 연착된다. 언어의 의미처럼, 잡으려 해도 명확히 잡히지 않는다. 시인은 ‘그리다’에서 ‘그리움’을 발명해냈다. 그리고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의 속성을 이용해, 그의 시를 더 멀리, 더 높이 보낸다. 먼 곳까지 간 그의 시는 더욱 그리워져, 우리에게 더 큰 감동을 줄 것이다.







**약력:2012년 《시와 세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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