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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미니서사/박금산/엘림 들깨수제비 집에서 침을 삼키는 아버지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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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서사
박금산
엘림 들깨수제비 집에서 침을 삼키는 아버지와 아들
서울시 강북구 국립재활원 앞 사거리에는 엘림 들깨수제비 집이 있다. 메뉴는 수육과 들깨수제비와 들깨칼국수 세 가지이다. 수제비와 칼국수에는 들깨가 들어가고 수육은 돼지고기를 삶은 요리이다. 엘림은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땅이름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홍해의 바닷물을 가르고 건너가 당도한 육지는 사막이었는데 그곳은 사막이었으므로 마실 물이 없었다. 사막 중간에 오아시스가 있었으니 그 지역을 엘림이라 불렀다.
사춘기 아들은 여드름 치료제로 한약을 먹고 있었다. 한의원 원장은 돼지고기와 닭고기의 기운이 약의 성분과 상충하니 치료 중에는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돈가스와 치킨을 좋아하는 아들은 먹을 것을 제한 받자 시무룩해졌다. 아들이 먹을 수 있는 육류는 돼지와 닭을 빼자 소와 오리와 생선과 양이 남았다. 아들은 오리를 즐기지 않았다. 생선은 지겨웠다. 양은 먹어본 적이 없었다. 아들은 소고기 페티가 두툼한 햄버거를 먹자고 제안했다. 아버지는 햄버거를 먹는 것에 반대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엘림 들깨수제비 집에 들어갔다. 손님들은 모두 수제비와 함께 수육을 먹고 있었다. 아버지는 메뉴판에 적힌 ‘수육’을 보며 직원에게 물었다. 수육은 돼지고기지요? 직원이 그렇노라 대답했다. 아들이 말했다. 먹고 싶지만 참을게요.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수제비를 주문했다. 잠시 후 부자의 상 위에 들깨수제비 2인분이 당도했다. 아버지는 당황했다. 수제비와 함께 수육이 다섯 점씩 기본으로 나온 것이었다. 손님들이 모두 수육을 먹고 있었던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수육이 마뜩찮았다. 기본으로 나온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식당 주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못 먹는 아들 앞에서 덥석 입에 넣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묘안을 찾아야 했다. 자기 몫의 수제비를 아들에게 덜어주고 아들 몫으로 나온 수육을 자기 앞으로 당겨 먹는 방법이 공평한 것처럼 여겨졌다. 아버지는 아들이 먹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수육 접시를 수제비 뚝배기 뒤쪽으로 안 보이게 숨겼다. 숨기는 데에 성공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들이 뚝배기 너머로 고개를 빼서 수육의 생김새를 감상했다. 아버지는 젓가락을 들었다. 수육을 한 점 집어 새우젓에 찍는 순간 아들과 눈길이 마주쳤다. 아버지는 수육을 입으로 가져가지 못하고 원래의 접시에 도로 가져다 놓았다.
수제비를 먹는 동안 내내 아들과 아버지는 수육을 눈으로 바라보았다. 옛날에 모세는 엘림에 닿기 전 지팡이로 홍해를 갈랐는데 아들과 아버지는 엘림 들깨칼국수 집에서 숟가락으로 수제비 국물을 갈랐다. 아들은 아버지가 덜어주었던 수제비를 아버지의 그릇에 도로 돌려주었다. 아버지는 수육에 묻혀 놓은 새우젓을 보며 침을 삼켰다.
**약력:소설가. 여수 출생. 《문예중앙》으로 등단. 서울과기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소설집 『생일선물』, 『바디페인팅』, 『그녀는 나의 발가락을 보았을까』. 장편소설 『아일랜드 식탁』, 『존재인 척 아닌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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