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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미니서사/김혜정/고양이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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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서사
김혜정
고양이의 미래
여자는 고양이를 안은 채 벤치에 앉아 있다. 햇살이 여자의 정수리를 환하게 비춘다. 남자가 다가가 여자 옆에 앉는다. 여자는 남자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내 귀여운 아들, 발몽이에요. 당신이 올 때까지 나를 돌봐 주었어요. 이 아인 날 무척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해줘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고양이가 야옹 야옹하며 그녀의 얼굴을 핥는다.
“물론이요. 당신에게 발몽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오. 이 아이가 당신 곁에 있는 동안 당신은 아무 문제가 없을 거요. 잠깐 발몽과 인사를 나누고 싶군.”
“그렇게 하세요. 발몽도 당신을 기다렸어요.”
남자는 고양이를 안고 대화를 나눈다. 고양이가 그의 팔을 핥는다. 둘은 아주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남자의 입가에 주름이 지고, 두 눈이 세모꼴이 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남자가 종종 무언가를 부탁할 때 보게 되는 낯익은 모습이다. 고양이 또한 남자의 눈을 응시하며 야옹야옹 대답한다.
가운을 입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의사가 그들 곁으로 다가간다.
“부인께서는 여기 생활에 아주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곧 회복해서 집으로 가실 수 있을 거예요. 아시겠지만 부인의 상태는 그렇게 심각한 편은 아니니까요.”
의사의 목소리는 자상하고 다사롭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고독이 깃들어 있다. 기억을 잃은 이들은 물론, 그의 가족들에 대한 배려로 그의 삶이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늘 거짓말을 해야 하는 사람은 고독할 수밖에 없다.
“언제쯤 회복될 수 있을까요? 아시다시피 아들 녀석이 어린데, 엄마를 몹시 찾아서요.”
“글쎄요. 아드님이 고양이가 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그걸 생각해 보시면 될 겁니다.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셔도 좋고요.”
남자의 눈에는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그렇듯이 그늘이 드리운다.
의사가 그럼 저는 이만, 하고 자리를 뜬다.
“자, 그럼 이제 당신은 아들과 함께 있도록 해요. 난 집으로 가서 고양이를 돌볼 테니까. 주말에는 고양이를 데리고 오겠소. 고양이가 당신을 무척 보고 싶어 해요.”
“당신의 마음은 정말 고마워요.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난 고양이털이 날리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고양이는 당신이 잘 돌봐주세요.”
남자는 여자와 작별의 포옹을 한다.
여자는 고양이를 안은 채,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남자로부터 멀어져 간다. 남자의 눈자위가 붉어진다. 고양이의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 늘 그렇듯이.
**약력:199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설집 『복어가 배를 부풀리는 까닭은』, 『바람의 집』, 『수상한 이웃』. 장편소설 『달의 문門』, 『독립명랑소녀』 서라벌문학상 신인상, 간행물윤리위원회 우수청소년 저작상, 송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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