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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호/특집/안성덕/잊을 수 없는 존재의 한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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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541회 작성일 17-01-0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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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안성덕





잊을 수 없는 존재의 한순간
―이병초, 『까치독사』




    고향은 태어나 자라난 곳이다. 제 조상이 오래 누려 살던 곳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어머니의 밥을 먹고 들로 산으로 쏘다니며 뼈를 키웠다. 살을 불렸다. 마을 앞 둠벙에서 송사리 떼를 몰다가 어른들의 물꼬싸움을 구경했으며, 부는 바람에 저 먼저 눕는 호밀밭 언저리에서 동네 형들과 누나들의 연애도 목격하곤 했다. 그렇게 우리는 정신이 서고 몸이 커갔다.
    7, 80년대 산업화 이후 세상에 뿔뿔이 흩어진 이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선산에 누워계시는 어머니 아버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세월에 밀려 이젠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이 변해가는 고향산천에 대한 안타까움과, 하나 둘 사라져가는 옛 사람들에 대한 추억이 앞서기 때문일 터이다. 그 끈끈하던 정이 그립기 때문일 터이다. 자석에 쇠붙이 끌리듯 우리는 그렇게 끌리는 것이다. 세월의 무게에 짓눌리고 세상의 틈바구니에서 부대끼면서도 조금만 더 견디자, 견뎌서 나 태어난 고향에 돌아가 한 채 오두막을 짓고 살자, 하며 버티는 이가 어디 나뿐이랴.
이병초 시인이 금년 봄 새 집을 지었다. 당호가 『까치독사』라 했다. 사전 연락도 없이 집 구경이나 해 볼 요량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의 고향 근처라는 소문을 믿고 무작정 길을 나선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새 집이 보인다. 그의 풍채만큼이나 단아하다. 지나가는 이 하나 없어 뉘 붙잡고 물어 볼 수는 없지만 단박에 그의 집인 줄 알겠다. 터를 잡고 골라낸 돌을 주춧돌 삶은 뽄새며 뒷산에서 찍어왔음 직한 굽은 기둥이며 영락없이 그의 집이다. 어쩌다 지나가는 낯익은 이웃과 추억 속의 산천을 맘껏 둘러보려 낮게 둘러쳤을 담장엔 솔바람도 걸리지 않을 것만 같다. 
주인은 부재중이었다. 혹시, 오늘 아침 동구 밖 미루나무 꼭대기에서 까치라도 울었나? 손이 올 거라는 기별에 점방에 막걸리 받으러 갔나? 주인 없는 빈집을 뒷짐 지고 한가롭게 둘러본다.


1. 사라져가는 것들

동치미무 쫑쫑 채 가시어 고추장 치고 생강대 넣고 된장 치고 양푼밥에 썩썩 비벼 먹는 저녁, 이마에 눈 밑에 흐르는 땀을 손가락으로 훔쳐대며 된장독에 박은 살얼음 묻은 고춧잎이 입에 개운한 저녁, 문구멍으로 내다본 세숫대야 너머 구정물통 너머 길갓방 아궁이에 활활활 참나무 장작이 마디게 탄다


                                                                      ―「저녁」 전문


   끼니갈망 어렵던 시절을 회상하는 얘기로 “밥 없으면 빵 먹지” 라는 웃지 못 할 우스개도 있지만, 요즘은 먹고 입는 일이 대개는 너무 풍족하다. 아련한 옛 시절, 아랫목의 손바닥만 한 이불에 옹기종기 발 우겨넣던 형제들이 있었다. 우리에겐 “동치미무 쫑쫑 채 가시어 고추장 치고 생강대 넣고 된장 치고 양푼밥에 썩썩 비벼 먹”으며 숟가락 싸움하던 시절이 있었다. 굴풋한 밤, 찐 고구마에 김치가닥 척척 걸쳐먹던 밤, “살얼음 묻은 고춧잎이 개운”했다. 요즘 사람들이야 소설 속의 이야기쯤으로 여길 만도 하겠지만, 그땐 그랬다.  
    “수랑둘배미 위 야트막한 산”(「삐비꽃」)에 지천으로 핀 삐비처럼 머리 희끗할 것만 같은 이병초 시인이, 추억이라는 “문구멍으로 내다본 세숫대야 너머 구정물통 너머 길갓방 아궁이에 활활활 참나무 장작이 마디게” 타고 있다고 숨도 쉬지 않고 가쁘게 전한다. 활활활 타는 그 참나무 장작은 또 식어 참숯이 될 것이다.


2. 엑스트라들

들목댁은 또렷하게 나를 기억했다
찜질복 아래 드러난 살진 무릎이 희디희어
내가 되레 무안했다 뭐 하고 사냐
자식은 몇이냐고 묻는 말 속엔,
어떤 놈 후리러 왔냐는 삿대질에 몰려 누런 백열전구 아래 빨래처럼 널브러졌던, 깜밥 달라고 생솔 냇내 묻어 있던 살결에 무작정 뛰어들었다가 그 품에 안겨 소리 죽여 눈물 흘리는 그 품에 안겨 가슴 두근거렸던 사십여년 저쪽이 걸어나올 채비를 하고 있었다


                                                                        ― 「만남」 부분


    우리들의 고향에는 “들목댁” 같은 인생이 더러 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살다 들어왔는지 묻지도 않았지만, 과거를 알 수 없는 그런 인생들이 있었다. 낯선 이도 어렵잖게 들여 낯가림을 강요하지 않던 고향이었지만, 그 대상이 과수댁이었을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기도 했다. 그녀의 어쩌다 “드러난 살진 무릎”에 혹한 남정네들의 야릇한 눈길에, 동네 사람들의 괜한 오해와 모함에 ‘들목댁’은 곤욕을 치르곤 했다. 그런 ‘들목댁’을 어느 날 우연히 찜질방에서 만났나 보다. 겨드랑이에 막 거웃이 돋을 무렵 막연한 대상이었을 ‘들목댁’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식은 몇이냐고 묻”고, 그는 “찜질복 아래 드러난 살진 무릎이 희디희어” 한때는 “내 어머니였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던 들목댁”이 왠지 짠해기만 하다. “사십여년 저쪽” 청춘의 한 페이지가 불현듯 떠오른다.


수랑둘배미 위 야트막한 산
아재가 생기다 만 눈썹 꿈틀대며 삐비 뽑아주던 데
햇살이 솔가지들 새로 뼘재기 하던 데

식은 풀떼죽에도 땀을 질질 흘리는, 야매로 똥꼬 수술하고 새살 안 차는, 왼종일 쎄빠지고 고봉밥 천신도 못하는, 때리면 맞고 피 나면 닦고 띵띵 부어오른 데 소주 부어 달래는, 왜무 막 뽑아 놓은 것 같은 고년 종아리에 허천들려 용갯물을 한말은 쏟았을 거라는, 흙째 묻힐란다고 몸띵이 아무 데나 뼉다구 튀어나온, 어성초 오갈피 똥물에 이골난, 손톱이 때 낀 발톱 같은 아재가 부글부글 통개를 삶았던 데

소나무 그늘도 솥 걸었던 자리도 없어지고
삐비가 허옇게들 쇠었다


                                                             ― 「삐비꽃」 전문


    아련한 세월 너머에 ‘들목댁’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생기다 만 눈썹 꿈틀대며 삐비 뽑아주던” 아재도 있었다. “왼종일 쎄빠지고 고봉밥 천신도 못하는, 때리면 맞고 피나면 닦고 띵띵 부어오른 데 소주 부어 달래는” 기와집 아니면 방앗간 집 머슴이었을 아재, 그를 따라다니며 우리는 “소나무 그늘”에 솥을 걸고 “통개를 삶”는 법을 배웠다. “왜무 막 뽑아 놓은 것 같은 고년 종아리에 허천들”렸던 그에게서 휘파람을 배웠다. 고향에는 기와집 어른만, 방앗간 집 주인만 살지 않았다.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되려면 ‘동내아저씨1’, ‘지나가는 여자2’도 있어야 한다. 그들에게 기대어 건너온 우리들의 청춘은 부채가 너무 크다. 그들이 당황하지 않게, 그들이 어색하지 않게 가만가만 그들의 언어, 고향의 언어로 호명해 주는 일이야말로 그들에게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젠 “삐비”처럼 머리가 “허옇게들 쇠었”을 옛 사람들이 그립고도 그립다.


3. 절박함

바늘로 닭 피를 찍어
이마빡에 새겼다는 개 혓바닥 문신은
평소 아무 티가 없다가
술기 오를수록 벌겋게
맹독을 문 저주처럼 또렷해졌다
왜 하필 개 혓바닥이냐고 누가 묻자
옛날엔 전쟁터에서 제 시체 잊어먹지 말라고
먹으로 바늘뜸 뜬 게 문신이었다고
꼭 만나자는 약속도 없이
헐수할수없이 떠내려보낸 게 사람뿐이겠냐고
귓속에 자리 편 새소리
댓잎에 베여 사각거리는 바람 소리를
개 혓바닥처럼 쭈욱 들이켰다

                                                                           ―「문신」 부분


    대중목욕탕 어깨들의 가슴과 등에 새겨진 호랑이와 용의 문신을 허세로만 알았다. 고양이도 이무기도 못되는 조무래기 건달들의 눈속임인 줄만 알았다. “전쟁터에서 제 시체 잊어먹지 말라고” “바늘로 닭 피를 찍어/이마빡에 새”기듯이 우리들 모두 가슴속에 “먹으로 바늘뜸”을 뜨고 살아온 줄 미처 몰랐다. “평소 아무 티가 없다가/술기 오를수록 벌겋게/맹독을 문 저주처럼 또렷해” 지는 그 ‘문신’은, 잔뜩 주눅 든 촌놈이 한 잔 술에 떠올리던 정든 부모형제와 머나먼 남쪽 그리운 고향이 왜 아니었겠는가. 피비린내 나고 살점 튀기는 삶의 전장에서 나 장렬히 전사하거든 시체나 걷어달라고, 누군가에게 부탁하듯 제 가슴 깊은 곳에 ‘문신’을 새기고 우리들은 저 70년대 80년대를 건너왔다.


산과 산 사이 작은 마을 위쪽
칡넝쿨 걷어낸 둬뙈기를 둘러보는데
밭의 경계 삼은 왕돌 그늘에 배 깔고
입을 쩍쩍 벌리는 까치독사 한 마리
더 가까이 오면 독 묻은 이빨로
숨통을 물어뜯어버리겠다는 듯이
뒤로 물러설 줄도 모르고 내 낌새를 살핀다
누군가에게 되알지게 얻어터져
창자가 밖으로 쏟아질 것만 같은데
꺼낸 무기라는 게 기껏 제 목숨뿐인 저것이
네 일만은 아닌 것 같은 저것이
저만치 물러난 산그늘처럼 무겁다


                                                                                 ―「까치독사」 전문


    마을길도 넓히고 초가집도 없애던 저 ‘새마을 운동’ 시절엔 전 인구의 60%를 차지하던 농민이 이제는 겨우 5%라고 한다. 부쳐 먹을 땅뙈기도 없었지만 소출도 변변찮던 시절, 그저 입 하나 덜려고 떠밀리듯 십이열차를 탔다. 구로동으로 문래동으로 올라왔다. 그렇게 가난한 고향을 탈출(?)한 우리는 낯선 도회의 경계에서 “누군가에게 되알지게 얻어터져/창자가 밖으로 쏟아질 것” 같은 세월을 견뎌야 했다. 쉽게 받아들여 주지 않는 세상의 경계에서 “왕돌 그늘에 배 깔고/입을 쩍쩍 벌리는 까치독사 한 마리”가 되어 “더 가까이 오면 독 묻은 이빨로/숨통을 물어뜯어버리겠다는 듯이/뒤로 물러설 줄도 모르고” 세상의 “낌새를 살”폈다. 그렇게 되알지게 얻어터지면서도 “꺼낸 무기라는 게 기껏 제 목숨뿐” 이었다. 그런 절박함으로 우리는 한세월 건너왔던 것이다.    

   집 구경이 끝나갈 무렵 주인이 돌아왔다. 한 손에 막걸리 병이 든 비닐 봉다리를 들고 가수 뺨치는 실력으로 흘러간 옛 노래를 구성지게 흥얼거리며……. 이병초 시인의 새 집 『까치독사』는 세월과 함께 ‘사라져가는 것들’과, 가물가물 스러져가는 ‘엑스트라들’에 대한 안타깝고 ‘절박한’ 헌사다. 새 집 기둥이며 대들보 석가래, 벽에 바른 흙 등 모두 그를 키워 낸 고향의 것들이다. 쇠잔등처럼 어깨 굽은 오래된 이웃이 걸쭉한 고향 사투리를 섞어 쌓았을 것만 같은 옹벽은, 오롯이 그만의 것이기에 충분하다. 그 말고 누가 있어 고향 뒷동산 다복솔밭을 쏘다니던 동무들을 호명해주겠는가? 그는 세상이 몇몇 주인공의 것만이 아니라고 웅변한다. 땀내 섞으며 어우러졌던 갑남을녀, 장삼이사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준다. 엔딩 크레딧에 그들의 이름을 새겨준다. 그가 다문다문 호명하는 옛 이름들이 스러져가는 고향을 조금은 더 지켜 줄 것이다. 그가 추억하는 옛일들이, 돌과 풀과 이름 모를 꽃들이 우리를 아득한 고향에 오래 머물게 할 것이다.
   추억과 기억의 차이는 그리움이라고 한다. 이병초 시인은 하잘 것 없을 기억에 추억의 옷을 입혀 우리를 아득한 꿈속 고향으로 이끈다. 그의 새 집『까치독사』는 기억을 추억으로 만든 그만의 처소다. 굳이 밀란 쿤데라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병초의 시는 ‘존재의 한순간을 잊을 수 없는 것이 되게 하고 견딜 수 없는 향수에 젖게’ 한다.
   그가 대접한 막걸리 두어 병으로 나는 얼근히 취했다. ‘그래, 그땐 그랬지!’ 맞장구치듯 나는,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 감자 심고 수수 심는 두메산골 내 고향으로, 유정천리 길 떠난다.






**약력:2009년<전북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 『몸붓』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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