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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호/집중조명/전다형/도마와 왼손의 자세-사람책 외 4편/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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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088회 작성일 17-01-03 00:07

본문

집중조명

전다형





도마와 왼손의 자세




박달나무 도마 위에 하현달이 떴다 
칠흑 어둠이 고인 도마의 움푹 파진 등은
한바탕 난타 극을 올리기 좋은 무대  
수많은 칼끝 받아낸 절창의 흔적이다
양 어깨 수많은 바퀴를 받아낸 진창길이다
무른 도마 순한 결도 숨겨둔 한 수는 있는 법
어진 결을 움켜진 옹이가 여문 칼 이빨을 뺀다


오른손이 칼집에서 잘 벼린 칼을 꺼내들었을 때 
칼끝 앞에 왼손은 오른손을 향해 다소곳해진다
단단한 무가 깍둑깍둑 썰어지는 것도
재깍재깍 일정한 거리의 유지도
한 발 먼저 나서준 왼손의 배려다
입은 비틀어져도 장구는 바로 쳐라 


잘근잘근 혀로 써는 착착 채 이구동성도 
나무 그늘 아래 늙수그레한 사람들 몇도 
점심내기 바둑판 열기가 대국 저리 가라다
한 집과 반집을 주고받는 돌들의 팽팽한
접전도 한 판 승 세상 크고 작은 놀이판
온통 힘 자랑 판이다
판짜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헤게모니를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도마 위 날카로운 칼끝 앞에서
칼끝의 보폭을 잡아준 왼손의 몫
수저를 들 때도 다림질을 할 때도
악수를 건넬 때 손매 끝을 잡아줄 때도
가위질 톱질 바느질 올곧은 방향을 잡아줄 때도
다정한 왼손은 언제나 묵묵한 그늘의 자세
오른손이 세운 탑신의 높낮이는
왼손 기단석에 달렸다
개미구멍에 둑 무너진다
무딘 칼이 피를 부른다
지금은 뜸의 시간 무딘 정신을 벼릴 때,







감꽃나무*의 전언
-사람책




백곡리 537번지에 가면 반쯤 주저앉은 사랑채가 있다 대나무가 에워싸고 동네방네 무성한 소문을 부풀리기에 안성맞춤이다 아버지 갑자년 심장마비로 세상 뜨자 독립자금으로 일평생 모은 문서 사랑채에 딸린 헛간 어디쯤 꼭꼭 묻었을 것이라는 소문만 떠돌았다 전문 도굴꾼이 다녀갔다는 억측만 난무했다 사랑채 머리채를 잡은 불신이 우후죽순으로 돋아났다 실밥 터진 우애는 근심으로 우거졌다 끼리끼리 편을 가른 피붙이들끼리 멱살을 잡았다 오른쪽 왼쪽 뺨을 주고받기도 했다 뜬구름이 생사람을 잡았다


  발굴의 목록은 맹자공자 사상 농자천하지대본에나 나오는 호미 낫 삽 쟁기, 이 구간은 구름의 문양을 닮았다 으흠, 으흠 사랑 놀음에 빠진 헛기침이 후렴구로 남았다 안채를 향해 뻗은 담쟁이 넝쿨손이 바깥으로 통하는 출입구를 걸어 잠갔다 사람을 품지 못한 빈집은 저 홀로 폭삭 늙었다 눈 어둡고 가는 귀 먼 일가친척들이 마을 어귀에 이 빠진 그릇으로 띄엄띄엄 나앉아 그해 겨울 아버지가 쓰다만 자서전을 줄줄 읽어줬다 그 때 마침 6.25 동란 때 생매장터였던 애장골에서 풀국새가 청승스럽게 울었다


  절골 삼박골을 벗어나는 게 소원이었던 큰오빠 대처로 떠돌다 아버지 나이 겨우 넘기고 감꽃나무 아래로 한 줌 재로 지나쳤다 팔순 줄 가무실 오라버니 열 천 번도 더 시래기 같은 가문을 줄줄 주워섬겼다 출세했다 추켜세우는 입치레에 배추이파리 몇 장 술값으로 내고 작은오빠는 은근슬쩍 마을을 빠져나갔다 남은 가족들 대소사가 둘러앉은 자리 마음 깊숙이 묻어둔 숫돌을 꺼냈다 할머니는 만세를 부르다 끌려가 돌아오지 않은 삼촌을 끌어안고 눈사람으로 서서 절대로 녹지 않은 자식이라 하셨다 이 빠진 가문을 개발새발 엮어 난전에 팔았다 시시껄렁한 바람마저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펄펄 슬픔이 살아 날뛰는 날이었다


   *천연기념물 492호,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백곡리 576-1번지 소재.






물집 한 채
-사람책



수삼 네 채를 단숨에 썰었다
소매보다 더 비싸게 구매한 직송거래
눈 뜨고 코 베인 씁쓸한 뒷맛,
어금니 꽉 깨물고 뒷다마도 깍뚝
깍뚝 칼을 쥔 검지가 잡은 물집 한 채
올해 받은 가을 제일 큰 선물,
투명한 대답에 오래 머물다 얻은 햇살이
햇살 좋은 베렌다에 토막 낸 삼을 널면서
싸고 싱싱하다 입에 발린 입술도 널었다
수삼이 건삼이 되는 동안 그와 나 사이
그늘진 물기도 꾸들꾸들 말라갔다
그녀 제 그늘 내 그늘에 떠넘기고
돌아 세운 마음인들 오죽했을까
때린 놈은 서서 자고
맞은 놈은 다리 뻗고 잔다 했다
뒤가 마려운 건 그쪽이겠지
이런 저런 마음을 햇볕 쪽으로 돌아 누이다
올 가을 남는 장사다 알고도 속이 털린 셈법
곡간 가득 투명한 대답이 넘쳐났다
수삼 네 채로 산 물집 한 채
투명한 물 가족이 사는 어리숙한 집에
막막한 어둠도 조금씩 묽어졌다
굳은 표정도 시간을 살살 굴리자
차츰 말랑해졌다
구김살 없는 햇살이 서먹한 두 사이를
구석구석까지 공평하게 펴 바르자
그늘이 바짝 줄어들었다







검문소
-사람책
                 




참, 나를 증명하란다


이 구간은 투명인간의 세계
일방통행, 청맹과니들의 관할 구역
시퍼렇게 날 선 거수경례가 목덜미 바짝 조였다 
이 순간 울컥, 오장육부 속 뒤집어 내용물 게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우겨다짐으로 먹은 마음 지퍼 내릴 수도 없는
이 난감 이 속수무책을 건너뛸 방책은 더더욱 없었다공명정대한 법치의 손아귀가 볼 따귀를 올려붙일 기세였다
미투리 발싸개보다 낮은 포복 자세로 엎드린
지금 여기에 기투企投, 호모 사케르가 되어
거듭 차연과 거듭 리좀과 거듭 미끄러짐으로
한없이 연기되는 생, 생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과 학생생과 출입증


플라스틱 마그네틱에만 존재하는 가엾은 나,
증들의 지배하에 기호로만 통용, 거래 되는 세상
철커덕 검문소 차단기 오르고 통과된 육체
지금地今止禁 여기 있는 나는 증證에 먹히고
그 밖 어디에도 없다



                            


종지기
-사람책




우리 모두는 종種鐘鍾從終이다 범종에밀레종성당종학교종알람, 순종잡종희귀종, 조계종천태종태고종, 종의 차이만 있을 뿐 차별은 없어야 한다 종종, 종적縱的을 둘러싼 고래 등 싸움에 죄 없는 새우 등 터진다 약한 자에 한없이 약해지고 강자에게 한없이 강해지는 자, 가장 낮아서 가장 높이 오른 종지기는 십자가에 못까지 박혔다


  산골 성당 푸른 종소리가 줄줄 기도문을 외웠다 학교 종이 땡땡 치면 지각생 사타구니 불알은 요령 소리가 났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만장 앞세우고 저승길 앞장서는 요령소리는 종種의 기원,    종이 오래 울었다 자신을 더 세게 때려 더 멀리 보낸 울음이 있다 나비 한 마리 날개 접었다 폈을 뿐인데 토네이도가 일고 일가를 앗아갔다 누군가 장난삼아 던진 돌멩이에 지나가는 개구리 돌 맞아 죽는다 순환선, 삽자루에 오종종 매달린 종들, 뫼비우스의 띠를 벗어날 길 없다 넥타이에 목을 매기도 하는 그날이 그날인 우리는 다 같은 종種鐘鍾從終자,  우리는 태생부터 을이다





<시론>



1.
나는 아직 시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시를 모르는 애송이 시인에게 시론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겨우 시집 한 채를 지어본 시력詩力으로 시론을 말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이미 훌륭한 시론들은 서점에 다 나와 있다. 나도 습작기에는 이 시론, 저 시론 많이도 기웃거렸다. 그러나 시론을 읽으면 읽을수록 자기 검열에 걸려 넘어지기가 일쑤였다. 이러다 시를 버릴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시는 배워서 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직·간접적 체험을 통한 깨달음, 즉 통찰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무식한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눈으로 읽지 않고 손끝으로 읽기 시작했다. 끌리는 시집을 대상으로 필사를 시작했다. 이 세상에 먼저 나온 시집이 다 내 스승이었다. 시인마다 자주 쓰는 형용사, 부사, 명사가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는 숨은 보물을 찾은 것처럼 기쁘기도 했다. 필사 시인의 시집에서 저마다 고유성을 엿볼 수 있었다. 나에게 시 공부는 필사만한 스승은 없었다. 장지 끝마디에 펜 혹이 생길만큼 필사를 했다. 연필 깎기 칼로 펜 혹을 잘라내기도 했다. 무소의 뿔처럼 뚜벅뚜벅 혼자만의 긴 습작기를 거쳤다.


2.
들뢰즈가 한 말 중에서 “이 세상은 거대한 병원이고 우리 모두는 거기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이다”라고 했다. 내 안에 ‘상처받은 내면 아이’, 자라지 않는 아이가 살고 있다. 골방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아이, 벌벌 떨고 있는 아이, 이 아이를 세상 밖으로 불러내는 일이다. 내 안을 쥐락펴락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이별에 대한 그리움, 고통과 좌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불러내어 한 바탕 놀아주는 일이다. 막스 프리쉬에 따르면, “기억은 현재로부터의 배열이자 지금의 경험에서 본 서술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과거의 기억 속에서 이야기를 끌어낸다. 우리의 상처는 모두 어린 시절의 체험이나 정서의 장애에서 나온다. 현재의 시점에서 표현하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다. 습작은 상처를 위로한다. 시적언어는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아준다. 월리엄 세익스피어가 말했듯이 “시는 슬픔을 표현한다.” 우리는 슬픔을 인식하고 그 슬픔을 해방하기 위해 쓴다. 상처라는 패인 홈을 기록으로 채워 넣는 과정이다. 그 상처에 사탕을 물리는 일이다. 레이첼 나오미 레멘 의학박사는 “시는 치유의 기능이 있다”고 말했다. 시 쓰기는 치유의 첫 걸음이다.


3.
나에게 시는 사탕이며 독이다. 이 사탕은 달고 짜고 맵고 시고 쓰다. 인생의 희노애락이  다 녹아 있다. 시의 씨를 하나 물면 입안에 사탕처럼 물고 혀끝으로 가장자리를 굴리고 논다. 서서히 녹아 내 몸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기다린다. 사탕의 단물은 상처와 슬픔과 좌절의 속살을 어루만지는 손길이기도 하다. 내 안의 상처받은 어린 나에게 ‘그래그래’, 지지와 위로의 말을 건네는 방식이기도 하다. 한 번도 끄집어내지 않았던 최초의 말은 매혹이며 전율이다. 들뢰즈가 말하는 탈주의 시선이다. 억압의 해방구이다. 이 사탕은 나를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야누스적 얼굴을 하고 있다. 약인 동시에 독인 사탕이 입 안에서 사라지고 내 몸은 사탕을 모신 신전이 된다. 사탕이 죽고 시의 싹이 트는 순간 죽음이 연기延期 된다. 나는 내게 독을 입에 물리고 있을 때 펄펄 살아있다. 내 입에 사탕을 물리지 않으면 금단 현상처럼 온 몸이 벌벌 떨린다. 한 편의 시를 만나기 위해 독을 물고 빤다. 사탕과 혓바닥이 뜨겁게 뒹굴고 놀게 내버려둔다. 얼마나 오래 놀아나나 방관자 자세를 취한다. 어금니로 사탕을 깨물기도 하고 사탕이 혓바늘을 돋게도 한다. 이럴 때 나는 내 무능을 탓하기도 한다.
 
4.
강은교 시인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게 하라.”고 했다. 이는 은유의 형식이다. 사물과 존재의 입을 통해 말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말 할 수 없는 것을 말하게 하는 것이다. 그들이 하는 말을 ‘받아쓰기’ 하는 일이다. 달을 말하려면 달무리를 말해야 한다. 말하지 않은 부분이 달이다. 북을 치려면 북의 테두리에 가장자리를 잡아당겨 매야한다. 팽팽한 긴장이 소리를 낸다. 말하지 않고도 다 말해지는 것,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지게 하는 것, 추상적인 것은 구체적인 사물에 빗대어 진술하고 구체적인 것은 추상적으로 진술해야 한다. 나는 지렁이와 굼벵이와 거미와 뱀을 쓰고자 하면 이들을 입에 물고 다닌다. ‘입아아입入我我入’이라는 생각의 뼈대를 세울 때까지 혓바닥으로 물고 빤다. 맹독성을 입에 물고 서서히 죽어가는 육체의 소진을 지켜보며 고통을 즐긴다. 이 집요한 근성, 고통의 탐닉, 카니발적 상상력의 끝은 어디까지 일까? 펜촉에 치명적 맹독성을 찍어 시를 쓰리라. 내 시는 내 혀를 마미시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으로 숨통이 죈다. 옥타비오 파스는 “시는 앎이고 구원이고 혁명”이라고 말했다. 나는 내게 날마다 묻는다. 앎이고 구원과 혁명인가?


5.
시를 포함한 예술은 규범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며 일탈이다. 이 ‘규범’은 이상으로 ‘상승’하려는 것이다. 예술가는 어떤 판에 박은 틀을 떠날 때 이루어진다. 즉, ‘상승-일탈-벗어나기’이며, ‘벗어나기 위한 -벗어나게 하려는-구체적 형상을 찾기’ 위해서 장애요인이 있을 때, 진정한 예술적 창조가 이루어진다. 이카루스의 아버지 다이달로스가 절대로 높이 날지 말라고 한 당부를 깬 이카루스는 하늘 높이 날다 밀초로 붙인 날개가 불에 녹아 추락한다. 밀초로 붙인 날개를 가진 이카루스가 시인이나 예술가이다. 시인은 장애의 요인을 거느릴 때, 장애효과를 거두기 위해 전율과 일탈을 꿈꾼다. 당부를 어긴 금기는 ‘장애효과’를 낳는다. 이 장애가 유토피아를 꿈꾸게 한다. 들뢰즈는 “우리를 묶는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이라고 한다.


6.
어둑한 바늘귀 바깥으로 어눌한 시어가 겉돌기만 했다. 비틀비틀 바늘땀은 자주 바른 길을 놓치기도 했다. 가장자리만 에둘러온 실밥이 미어터지기도 했다. 이러한 상처들을 어루만지며 놀았다. 지금부터 나는 시의 퇴고 과정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부자간의 짚신 장수 이야기를 할까 한다. 이야기는 이렇다. 옛날 짚신을 삼아 장에 내다 판 부자지간이 있었다. 짚신의 겉모양은 똑 같았으나 아버지 짚신은 해가지기 전에 다 팔렸다. 그런데 날마다 아들의 짚신은 해가 다 지고도 남아, 아버지가 아들의 남은 짚신을 팔아주기도 했다. 아들은 아버지께 그런 까닭을 물었으나 절대 가르쳐주지 않았다. 야속한 아들은 아버지를 늘 원망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아들에게 그 비법을 말해 주었다. 아들과 아버지의 짚신은 겉모습은 똑 같았으나, 신어본 사람은 발이 편한 것을 찾게 된다. 단골이 많은 아버지와는 달리 아들이 삼은 짚신은 안쪽 까칠한 부분을 자르지 않았음을 일러주었다. 아들이 삼은 짚신은 발에 물집을 잡았기 때문이다. 내 시도 이와 같을까 두렵다.







**약력:2002년 〈국제신문〉신춘문예로 등단. 부산작가상 수상. 시집 『수선집 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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