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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신작시/나금숙/기도 레슨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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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855회 작성일 16-12-31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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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나금숙




기도 레슨



두상만 커다란 동상 위로
비둘기가 날아온다.
새에게는 물결처럼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이나
반듯한 코가,
열매가 출렁한 나뭇가지이다
휴식이 끝났는지
선한 일로 분주한 날개가 햇빛을 싣고
어둑한 창문을 기웃거린다
새와 눈이 마주친 여인은
황급히 새를 잡아두려 한다
그러나 새는 두상만 있는 동상을 넘어
구름을 넘어
불을 잘못 피워 죽은 아들을 둔 어미나
형들에게 버림받은 동생이나
간음으로 낳은 아이가 한 달 만에 죽은 아비나
실수로 연인을 수장시킨 벌목공이나
쓰레기 같은×이라고 애인에게 욕을 먹은 여자나
다 메고 가서
서쪽 하늘에 버리고 온다
날개가 싣고 돌아오는 것은 바람 냄새뿐이지만
실은 하늘 끝을 당겨오는 것이다






청동 여자



그 도시의 중심에 가면 표지석이 있다
수국꽃 아래에서 여자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
서고에서 갓 나온듯 묵은 종이 냄새가 나는 여자였다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가 잃어버린 언어 몇 개를 찾아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넣어둔지가 언제였는지 모른다고 했다
어디서 샀는지도 모르지만 잃어버린 것만은 확실하다고 했다
향기가 우물처럼 고여있는 꽃나무 아래
등받이 없는 의자를 가리키며 앉았다 가라고 했다
그녀는 내 트렁크 속에
자신이 잃어버린 언어가 있는지 아주 긍금해 했다
미래에 올 언어 같다고도 했다
소각장 가는 길을 내게 묻기도 했다
누가 다 끌어 모아다가 태워버린 것 같다고,
재가 되었어도 뒤져봐야 한다고 했다
그 도시는 길이 온통 울퉁불퉁해서 낮과 밤, 월요일과 화요일,
일상적인 시간들이 오가다가 자주 넘어지곤 한다고,
동전이 주머니에서 튀어나갈 때, 그 언어들도 튀어나갔나 보다고 했다
여자는 실은 죽어가고 있었고
잃어버린 그 언어들이 자기를 회생시키는 묘약이라고 믿는 눈치였다
내가 다시 길을 물으려는데 바람에 주소를 쓴 종이가 날아가 버렸다.
나야말로 이 말씀 몇 개를 찾지 않으면
오십년 만에 도착한 이 도시에서
오늘 밤 당장 어디 묵어야 하는지 모른다







**약력:200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시집 『레일라 바래다주기』외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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