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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신작시/김정아/장지葬地에서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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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김정아
장지葬地에서
굴삭기로 판
네모 반듯한 묫자리로
한 주검이 서서히 내려가자
무릎 꿇고 엎드려
오열하는 식솔들
그리 쉬 갈 순 없다는 양
잠시 주춤거리고
새벽이슬로 말갛게 헹군
황토 더미 사이로
다시 올려지는 나무관
겹겹 내려앉는
솔바람 새소리 넉넉히 깔고서야
이제 폐암 같은 건 아무렇지도 않다며
제자리에 든 듯 편안해진 죽음 위
봄햇살 한 자락 그 생을 다독인다
점등點燈
대상포진에 걸렸다네요
몸살쯤이야 여기며
며칠 끙끙대다 못해
병원에 갔더니
살다보면 명징한 것보다
흐지부지 흘러가는 게 하 많아
지레짐작 일삼으며
늘 분명한 걸 원했지요
이토록 꼼짝없이
녀석의 수하手下에 놓이리라곤
전혀 예기치 못했기에
산다는 건 그렇잖아요
새끼 굴비 한 두름처럼
한 손으로 들 수도
만만히 풀어헤쳐 프라이팬 가득
튀겨낼 수도 없을진대
안개 같은 우리네 삶
가슴 옥죄며
쉬 놓아주지 않잖아요
도리 없이 녀석에게 순종하기로 하자
어쩌면
흘러가는 대로 두어야 했던
지난날들이
기둥과 서까래로 뼈를 세워
마음속 깊이 초라하나마
오롯한 집 한 채,
짓게 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른쪽 등 날개죽지로부터
앙가슴을 관통하는
더할 수 없이 확연한 통증 앞에
속수무책인 채
때때로 힘에 겨워 물리치고 싶었던
마음 안에 떠도는 마음의 것들에게
환히 불 밝혀 주고 싶은
저녁 한때랍니다
**약력:2000년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갠지스강 모래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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