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63호/신작시/최정/고추를 심으며 외 1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203회 작성일 16-12-31 21:25

본문

신작시

최정





고추를 심으며



고추 심는 주말이면 심부름하는 척 하다가 가방 싸들고 텅 빈 학교로 도망치곤 했지. 흙투성이 낡은 작업복처럼 살지 않겠다고 영어 단어 줄줄 외었지.



자루가 미어지도록 고추를 머리에 인 엄마를 따라 나선 것은 소풍 때 입을 옷 한 벌이 필요해서였어.



장사꾼과 흥정하는 엄마를 멀찌감치 쳐다보던 사춘기의 나는, 엄마가 창피했었던가. 고추 값이 떨어져 속상했었던가.



이젠 중년의 내가 고추 농사를 짓는다.
고추를 심고 흙을 덮어주면서 학교로 도망치던 내가 덮여졌으면,

엄마를 쳐다만 보던 내가 덮여졌으면.



허리가 뻐근해지도록 내가 덮여지지 않아. 새옷 입고 브이 자 그

리며 신나게 웃던 소풍날 사진이 지워지지 않아.



무섭도록 푸르러지는 봄날 한 가운데, 흙투성이 일 장갑처럼 널브러진 날.





먹이 사슬



나는 독해졌다.



감자밭에 똬리 튼 독사 한 마리
쇠스랑으로 죽여 버렸다.



뱀만 보면 뒷걸음질 치던 내가
난생 처음 뱀을 죽였다.



알 굵어지라고 웅덩이 물 끌어다
긴 가뭄에 지켜낸 감자



여기서 물러설 순 없다.



내장이 터지고 머리가 납작해지도록
내리치고 또 내리치다가
등에 소름이 돋는다.



축 늘어진 독사의 주검이 되어 슬퍼졌다.








**약력:2008년 시집 『내 피는 불순하다』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산골연가』.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