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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신작시/이경욱/세련 미용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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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이경욱
세련 미용실
꾸겨진 파마 종이를 펴기 시작하면
주전부리보다 더 맛있는 이야기들이 홀hall에서 시작됐다.
파란대문 집 여자가 춤바람이 났대
남자는 직업군인인데, 훈련 때문에 집에 없으니 말이야
누가 시장을 오다가, 그 꼬락서니를 하고 무지개 캬바레에서 나오는 걸 봤다고 하더라고
남자는 그런 걸 알아?
그럼? 아이는……
파마 종이의 주름이 펴질수록
머리에 얹히는 입술의 주름이 펴지고
원색적인 이야기도 화학약품에 재워져
수다는 홀hall을 가득 채운다.
홀hall에 쏟아지는 얼음송곳이
춤바람 난 여자의 홀hole로 빨려 들어갔다
슈퍼 집 반 지하에 사는 여자 아들 말이야, 글쎄 이번에 수학경시대회 1등 했다는데……
슈퍼 집 말고 그 창고 집에 사는 그 애 말이야?
창고 집 남편이 작년에 교통사고로 죽지 않았나?
맞아, 아들이 잘나면 뭐해? 잘 난 열 아들보다 미운 서방이 최고지
홀hall에 쏟아지는 얼음송곳이
홀로 된 여자의 홀hole로 빨려 들어갔다.
쉬어버린 시간을 검게 염색하고
손상된 마음을 가위질로 정리하고
곱슬머리 같이 꼬인 마음이 화학약품으로 곧게 풀어질 때까지
끝이 없었다.
세련되지 않은 여자들이 쏟아낸 얼음송곳들이
춤바람 난 여자의 홀로
홀로 된 여자의 홀로
세련되지 않는 여자들의 홀로 빨려 들어갔다.
팽창된 블랙홀이 우주를 삼키기 전에
세련 미용실의 셔터가 닫기면,
그렇게 오늘의 우주가 지켜진다.
단상 20142910
붉게 멍든 계절을 지나
쇠락해진 시간들이 땅 위를 뒹굴뒹굴거리다가
못 위에 하나가 떨어졌다.
짙은 색 못에서 물고기 한 마리가 풀쩍 뛰어 오른다
낯선 벽에 부딪치던 물고기가 살바람 한 줄기를 타더니
비행기가 그려 논 포물선을 따라 하늘로 가버린다.
가슴 깊은 못에서 물고기 한 마리가 또 풀쩍 뛰어 오른다.
**약력:2013년 《시와사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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