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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호/권두칼럼/장종권/참담한 겨울로 들어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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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칼럼
장종권 (시인·본지 주간)
참담한 겨울로 들어서며
가을이 가고 있다. 단풍철도 지나고 거리에 낙엽이 떨어져 쌓인다. 낙엽들이 바람에 날려 어디론가로 사라진다. 금방 겨울은 올 것이다. 견딜 수 없으리만치 추운 겨울이 올 것이다. 그 다음 봄이 다시 올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겨울에서 세상이 혹시 정지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공포로 인해 더 이상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일터에 나가 뼈 빠지게 일하다가 밤늦게 곤죽이 되어 집에 돌아와 꿈도 꿀 수 없는 잠에 빠지는 것이 고작인 개인에게, 미래의 희망이라는 것이 있으니 포기하지 말고 더 열심히 땀을 흘리라고 말한다면, 이제 그것은 설득도 아니고 대화도 아닌 거짓말이다. 적어도 2016년 이 가을에는 그렇다. 그렇게 낙엽은 의미 없이 떨어져 어디론가로 사라진다.
그녀는 별나라에서 왔다. 그러니까 애시당초 지구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지구와는 다른 상식과 지구와는 다른 질서 속에서 살다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지구로 옮겨왔을까. 궁금해 해도 소용이 없다. 지구에서 그녀가 하고 있는 일은 그녀의 별나라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판단으로 미루건대 지구인들은 알 수 없는 존재들이다. 도무지 상식이 통하지 않는 무지한 종족에 지나지 않는다.
이 시대에 시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시는 세상을 읽을 만큼의 눈을 가지고 있을까. 시는 세상을 바꿀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을까. 시는 세상의 공포를 풀어줄 만한 가슴을 가지고 있을까. 개인의 세계에 갇혀 세상으로 나가는 통로를 스스로 막아버리지는 않았을까. 개인의 세계를 뚫고 나와 무섭게 타오를 수 있는 에너지는 정말 없는 것일까. 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 그 시가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리토피아는 종이 속에 갇힌 들국화일지도 모른다. 종이 속에 갇힌 이 들국화가 종이 뭉치를 뚫고 나와 세상에 나름의 향기를 만들어 내는 일이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아름다운 가을에는 함께 아름다운 척이라도 할 수 있었다. 썰렁하여 공포스럽기조차한 이 가을에 들어서며 시와 잡지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리라는 예감에 추위는 더 먼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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