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64호/특집/우대식/‘내면에서 내면을 사유한다
페이지 정보

본문
특집
우대식
내면에서 내면을 사유한다
ㅡ허림, 「거기, 내면」
생태적 인간들이 내면에 산다
탱가리나 꺽지 뚜구리 같은
길순이는 가덕에 살고 종복이는 절애에 산다 영만이는 귀향하여 집을 지었고 지은이는 성을 지겠다고 날 풀리길 기다린다 다들 성 하나씩 차지한 셈인데
성 생활이 어떤가 내면에 들면
춘하는 족대질을 한다 텡가리 뚜구리 꺽지 깔딱메기 모래무지 정도가 내가 아는 내면의 물괴기들이지만 갈겨니 쉬리 개리 어름치 열목어 묵납자루 돌고기 미꾸리 기름종개 붕어 장어 메기 돌무지 무지하게 많다
길순이는 불을 땐다 마른 낭구 젖은 낭구 가리지 않고 기막히게 불을 잘 넣는다 아궁이에 앉아 거들라치면 ‘그 뭐시냐 좀 때봤냐 쑤석거리지 마라 불 꺼진다니 마누라 도망간다니’
비료푸대에 담긴 괴기들이 장난이 아니다 어린 새끄래기들 놔주고도 댓 사발이다 노강지에 무꾸를 삐져 넣고 막장을 풀고 종복이네 집에서 따온 표고에 만삼도 좀 늫구 대파도 어슷어슷 썰어 늫구 참낭구 장작에 불을 댕겨 설설 끓두룩 우려낸 뒤 그 국물에 서너 사발 괴기를 늫구 달치도록 끓여내면
맛이랄 게 있나 ‘좀 먹을 만 하다니’.
내면에 들면 여태 저런 얘기가 이 계절 눈처럼 내리는데
내면하고도 웅숭깊은
고로쇠낭구 같은 원주민들
내 시는 여직 거기, 내면에 머물러 있다.
― 허림 시집, 『거기, 내면』, 시와 소금, 2016.9.30.
강원도 사내의 시를 읽는 일이란 틉틉하면서도 쓸쓸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 것. 강원도 홍천군 내면 산골에서 화근내가 몸에 오른 사내가 투박한 손마디로 예리한 정신의 세계를 열어 눈길을 나선다. 자꾸 뒤를 돌아본다. 그는 웃고 있다. 눈이 얼굴을 때린다. 그는 자꾸 웃는다. 허림의 시를 읽을 때마다 자족과 쓸쓸함 사이의 거리를 측정해보곤 한다. 내가 짚은 그 거리는 늘 허방이었지만 어떤 충만함을 느끼곤 한다. 눈 때문인가? 혹 칼국수 때문인가? 후동리 어개 동갈나무 때문인가? 동송장 피안의 절간 때문인가?
너무나도 수상한 시절, 그나마 허림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큰 위안이다. 지긋이 웃다가 스리슬쩍 슬퍼진다. “어머이는 멀미가 나려하면 흙내를 맡으라 했다/서울 흙내를 맡으면 더 멀미가 나요 하면/비싸서 그럴 게야/하하 웃으신다”(「귀여운 농담」 부분)와 같은 시를 만나면 슬며시 웃음이 나오다가 “고도를 기다리며를 다시 읽다가/등이 가려워 혼자 긁지 못해 애쓰다가/결국 곰처럼 기둥에 등을 긁는다”(「먼 곳」 부분)를 읽으며 11월의 강원도 산골바람을 만나게도 되는 것이다.
「거기, 내면」에서의 내면은 공간으로서의 의미와 내면적 인지라고 하는 의미를 포함한 중의적 표현이다. 공간으로서의 내면은 백석이 추억한 어린 시절의 고향과 동급의 의미를 띠고 있다. 사람과 자연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그 무엇도 부족한 곳이 없는 공간이 내면이다. 인물들의 서사를 풀면 다음과 같다. 길순이는 내면 가덕리에 살고 종복이는 절애리에 산다. 영만이는 집을 지었고 지은이는 성 같은 집을 짓겠다고 봄을 기다리고 있다. 춘하는 족대질을 잘하고 길순이는 불을 잘 땐다. 내면의 생태적 구성원들은 이 점점의 인간들이다. 그들은 ‘텡가리나 꺾지 뚜구리’ 등의 물고기와 같은 존재들이다. 시적 화자는 그 내면에서 내면의 시를 쓴다.
강원도의 방언은 억양에 그 특별함이 있다. 어쩌면 강원도 방언으로 이루어진 시집이 많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 터이다. 허림의 시에서 만나는 강원도 방언은 특별하고 따뜻하다. “쑤석거리지 마라 불 꺼진다니 마누라 도망간다니”. 종조사 ‘니’는 강원도 지방에서 두루 나타나는 방언이다. 말을 맺는 서술격조사 ‘다’가 가지는 명료함과 단호함에 비해 말은 끝났지만 이야기가 열려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현대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나친 배려를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어눌한 열려있음이야말로 이 시의 분위기와 너무도 잘 맞아 떨어진다. 그가 말하는 ‘생태적 인간들’의 살림살이야말로 집짓고 고기 잡고 밥 먹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고 그것은 어떤 특별함이라기보다는 일상의 연속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매운탕을 끓이는 장면은 이 시의 압권이다. ‘노강지에 무구를 삐져 넣고’, ‘대파도 어슷어슷 썰어 늫’는 장면은 어린 날의 음식에 대한 추억으로 우리 시의 한 확을 그은 백석을 다시 연상케 한다. 이럴 때 친구 가운데 누군가 한 말. “맛이랄 게 있나 ‘좀 먹을 만 하다니’”. 대수롭지 않다는 어조 속에 밴 자존이 고스란히 드러난 말투. 어쩌면 이것이 강원도 방언의 특성이며 나아가 강원도 사람들의 모습은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그가 그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살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내면하고도 웅숭깊은’ 사람들이라는 시구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의젓한 사람들”이라고 백석이 「국수」에서 쓴 시구절을 또 다시 떠올리게 된다. 산골 깊은 마을에서의 긍정과 자존은 시집 『거기, 내면』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내 시는 여직 거기, 내면에 머물러 있다.’고 그는 겸손하게 말한다. 그가 사는 곳이 내면일 터이니 그렇다손 치더라도 기실 그렇게만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시적 화자의 내면이 무엇일까 하는 자연스러운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내면에서 내면을 사유하겠다는 태도가 이 시의 요체이다. 시인은 눈, 봄, 용서, 웃음 등을 통한 내면적 사유를 스스로 둥글게 말아 내면에 사는 모든 것들에게 따뜻한 눈빛을 보내고 있다.
이런 태도 혹은 이런 삶의 방식 때문에 겨울에 내리는 눈은 여전히 따뜻하고 고향은 아직 산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세상을 만든다는 의미는 단순히 건물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이 세계가 살만한 곳이라는 믿음을 준다는 뜻일 것이다. 허림의 시는 그러한 의미를 우리에게 준다.
**약력: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 『단검』, 『설산 국경』. 산문집 『죽은 시인들의 사회』.『죽에 죽고 시에 살다』 등.
- 이전글64호/특집/김중일/‘진흙탕 속의 꽃 17.01.02
- 다음글64호/특집/박완호/‘나비’의 이름으로 태어나는 ‘詩’ 17.01.0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