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63호/특집/제3회 전국계간지 우수작품상/미네르바/윤은영/고향에 가고 싶다 외1편/수상작/신작/선정평/수상소감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920회 작성일 16-12-31 19:33

본문

특집

제3회 전국계간지 우수작품상






미네르바

윤은영





<수상작>
고향에 가고 싶다*

 



    자주, 여객기가 내 심장 속으로 활주해 왔어 매서운 진동은 내 꿈을 오려내어 머리맡에 붙여두곤 했지 땅속으로 떠밀린 지하수처럼 깊숙한 어둠으로 파고든 날들에게 수여된 상장이야-꿈은

   결심했어! 시큼한 하루를 견디며 빈 반찬통에 구차하게 달라붙은 배추쪼가리 같은 육체만으로 남지는 않겠어 앙상한 손가락에 남은 힘을 믿어 컴퓨터 키보드 위에서 주테 그랑주테**

   거꾸로 세운 모래시계처럼 통제 불가능한 환각이 미끄러지고 있어 그걸 꽉 쥐었지 좋아! 에베레스트 꼭대기에 맨몸으로 서 있게 되더라도

   꿀통은 랜딩기어박스에 있어 내 도시에 봄은 쉬이 오지 않아

   이곳에서 피는 꽃들은 모두 가짜야, 벌이 달려들지 않아, 꿀은 랜딩기어박스에 있다니까

   목이 따진 꿀벌이 되어도 좋으니 귀에서 찐득한 실패가 흘러나와도 좋으니 자카르타 달달한 태양을 삼킬 수 있게 자카르타 알을 깼던 그곳으로 자카르타!



*랜딩기어박스에 숨어 1,500km를 비행한 인도네시아인 스물한 살 마리오 암바리따 씨의 이야기.


**발레에서, 점프 용어.







베이비박스



어느 교회에선 벨이 울리면 또 다른 아기가 들어온대 간헐적으로 울리는 울컥의 벨



양육을 포기하는 양육권자의 비뚠 획들이 외치는 소리
나중에 꼭 데리러 오겠습니다
토마토가 설탕으로 맛을 수혈하듯
그들은 세상과 적당한 키스를 한다



꼭 문을 열어보고 싶은 세계 아니 어쩌면 다녀온 것처럼 연민을 느끼는 세계
 


버려진 아이는 차츰 차츰 깨지는 낙타가 되어 혈투를 지속할 것이다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기 위해 블랙홀 같은 기억을 파헤치거나
때론 갑갑한 그리움들이 성냥갑 속에 갇혀 있다 가끔씩 불을 댕기러 나오겠지

 


  그럴 때마다 본차이나, 하고 중얼거려 보아
  단단한 뼈를 섞어 만드는 그릇처럼 이내
  쉽게 깨질 일 없는 훌륭한 찻잔이 될 수 있을 거야

 


  데리러 온다는, 약속을 지키러 올 엄마를 산타클로스처럼 여기고 살 어느 아기가
  또또 들어와 울컥의 벨을 울리며







<신작>

능수버들



매일 식당에 나가는 우리 엄마는 머리를 기르라고 하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대충 생각해 보면
아빠가 긴 머리 여자를 따라갔기 때문인 것 같지 그래서



내게 놀이를 하자고 한다면 항상 귀신놀이
햇빛이 무서워 침침한 곳에서만 하는 놀이
밥 때가 되어도 우두커니 골목에 서서 혼자 하는 놀이
빗질해 주어야만 할 것 같은 배고픔을 참아야 이기는 놀이
아빠가 생각날 때마다 실룩이는 입술에 케첩을 바르는 놀이
간혹 저물녘을 어스름하게 밟는 한 행인이 까무러친다면 헬헬헬 쓰디쓰게 웃는 놀이
어른을 이기는 더 어른스러운 놀이



둑방에 쭈그려 앉아 떠내려간 조각배를 생각한다
작은 돛대에 어른들이 모르는 말들을 써놓고
스스로 밥을 지어먹을 수 있을 때까지 머리는 계속




희망이 와 비로소 단정하게 잘라줄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선정평>

쉼 없이 무언가를 길어 올리는 시




   회의하고 절망하는 가운데 시는 태어난다. 내가 불러낸 무수한 언어들이 소용돌이치며 날아오를 때 불확실한 생은 까닭 모를 떨림으로 설레게 된다.  
   윤은영의 「고향에 가고 싶다」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랜딩기어박스에 몸을 숨겨 아찔한 비행을 하는, 인도네시아 청년의 이야기다. 고향은 청년에게 단순한 향수의 차원을 넘어 영원에 도전하는 강렬한 생명의 의지가 되고 있다. 강을 거슬러 위태로운 여정에 몸을 맡기는 연어의 모습을 닮았다. 고향이라는 말은 그곳을 떠난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아련한 탄식 같은 말이다.
 「베이비박스」에서 시인은 태어난 즉시 ‘양육을 포기하는 양육권자’에 의해 버려져 고된 역경을 감내해야 하는 아기의 운명을 읽고 있다. 쉽게 포기하고 버리는 이 시대의 모순성을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다. 빛나는 생명 뒤에 저렇게 어두운 그림자가 웅크리고 있다니. 아기가 받게 될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세상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그 착잡한 순간을 고뇌하는 중이다. ‘울컥의 벨’이 우울하게 가슴을 짓누른다. 삶의 가장 깊은 비밀은 언제쯤 알게 될까. 타인의 고통에 남달리 민감한 언어로 시의 진실을 묻고 있는 듯하다. 그녀의 시 세계는 인간의 잃어버린 본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속정 깊은 눈과 애잔한 마음으로 쉼 없이 무언가를 길어 올린다. 그것은 무의식 속의 끝없는 자기 응시이기도 하다. 누군가 겪고 있을 생의 통증을 함께 아파하므로 윤은영의 시는 언제나 뜨겁다./윤고방. 김정임(글). 이채민





<수상소감>

격려의 예쁜 목걸이에 감사



   나는 거울 보는 것을 싫어한다. 평상시에도 필요한 경우가 아닌 이상 쉽게 들여다보지 않으므로 언제나 부스스하게 산다. 외면하고 싶은 사실을 직시하여 그것을 이겨내길 바라는 것들에 대한 항의랄까. 본질에 가까워질수록 거울은 침묵하기 때문이다.
   젊음의 힘은 위대하지만 그것이 가진 폭력성의 위해 또한 예측불가다. 세상과의 싸움에서 승패의 구분은 없는 것 같다. 다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속 필요충분조건은 지독한 부정의 힘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었다.
   절망의 무게를 가늠할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난 가운데 영광스런 소식이다. 그러나 나는 한참 멀었다. 다만 ‘‘뭐든 한 가지를 오래 하면/거기 빛이 난다(문효치)’’라는 시구 참 좋아하는데, 가슴 뛰는 이 작업을 계속하라고, 꾸밀 줄 모르는 애송이에게 격려가 가득 담긴 예쁜 목걸이 채워주신 것으로 믿고 싶다./윤은영






 **약력:2010년 《미네르바》로 등단.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