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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특집/제3회 전국계간지 우수작품상/시와정신/도복희/조련사 외1편/수상작/신작/선정평/수상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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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제3회 전국계간지 우수작품상
시와정신
도복희
<수상작>
조련사
무화과 숲을 통과하여 왔어요
첫날은 검은 우산 속으로 장대비가 들이쳤죠
나는 까마귀 조련사로 이직을 신청했구요
신종직업으로 분류 된 상태에서
칠일 만에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죠
십칠층 계단을 오르며서
깃털 고르는 방법에 대해 정리했어요
운전면허 이론시험처럼 정답만 달달 외우기 시작했죠
위로 오를수록 바람이 무성해지더군요
정오에 도착해서 초인종을 눌렀어요
고압전선에 앉아 있던 까마귀들
이주한 십칠층 허공이 내 일터입니다
도착한 후, 창문을 떼내어 바람을 교체하는 일이 첫번째 과제죠
검은 날개의 상태와
눈빛의 밝기를 체크하여
알맞은 먹이를 곳곳에 놓아 두어야 합니다
둥지 곳곳을 살펴
깃털이 상하지 않도록 모서리를 다듬는 과정도
빠뜨려선 안되요
나는 훈련 받은 까마귀 조련사입니다
새롭게 시작한 일이어서
계단을 줄이는 것이 뜻대로 안되지만
새로 돋아나기 시작한 날개가 적응해 나갈 거예요
난간을 붙드는 일이
무료를 견디는 오전보다 휠씬 수월하다는 걸 알아요
서해, 그곳
퇴락한 어촌의 끝 집,
바다로 난 뒷방을 얻어 우리, 숨어 살까
저녁에 묻어온 해풍이 창문을 들썩거리는 동안
누구도 발견 못한 백골처럼 누워 있을까
폭우가 휩쓰는 백사장에서 맨발로 지탱하는 밤
손과 손만 남아 서로를 끌어잡는 온기에 기댈게
괭이 갈매기가 바람을 가르는 해변
무리지은 새떼에 갇혀 몇 개의 계절을 그려낼게
둥글게 말린 오후가 바닥을 굴러다니며
쏟아내는 소리에는
퇴화한 물고기의 눈이 떠다닐 거야
수평선이 달빛을 품는 동안
잠들지 못한 우리의 호흡은 하나로 엉키겠지
<신작>
그러니까 생활이란
돼지우리의 오물이다
치우고 치워내도 사라지지 않는 냄새다
게걸스레 넣어도 금세 텅 비는 위장이다
오직 먹는 거에 집중하는 요란한 식사시간
빠져 나오려는 어떤 시도도 없이
먹고 다시 먹는 11시다
잠든 돼지 꼬리에 비치는 달빛, 달빛에 흐르는 구름이다
어느날 끌려가는 버둥거림이고
허공을 찢는 오후 5시의 비명이다
불판 위에서 구워지는 냄새다
그러니까 말이다 우리를 붙들고 있는 생활이란
술술 넘어가는 우리 속의 시간이다
<선정평>
넓고 큰 상상력의 폭
도복희의 시는 상상력의 폭이 대단히 넓고 크다. 또한 언어의 운용도 비유 영역이 매우 높고 활달하다. 이러한 장점은 그의 등단작에서부터 나타나온 바, 최근에 이르러서는 그 흐름이 더욱 증폭되어가는 느낌이다. 그의 시는 무엇보다 나태하고 진부한 현실을 뛰어 넘으려는 의지의 산물로 요약된다.
작품상에 선정된 「조련사」와 「서해, 그곳」에서도 그 점은 잘 나타나고 있다. 우선 「조련사」에서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통해 현실을 견인해가는 시인의 상상력이 다채롭다. 기실 까마귀를 조련하는 일이란 시에서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 바로 그러한 비현실성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려는 자세가 매우 신선한 것이다. 또한 「서해, 그곳」에서는 가능한 현실을 통해 현실을 초월하려는 상상력이 작동한다. 그의 내면에 살아 숨 쉬고 있는 낭만성에 기대어 우리의 각박한 현실은 새로운 시간으로 거듭 태어난다.
이상의 서로 다른 두 세계는 상대적으로 서로를 보완하고 끌어당기면서 도복희의 시세계를 탄탄하게 열어가고 있다. 앞으로도 이러한 호흡을 좀더 강화하고 변화를 꾀하여 한층 신선함과 긴장감이 살아 숨 쉬는 시세계를 열어가기를 기대한다./김완하, 송기한
<수상소감>
시인이 된다는 것은 끝까지 가보는 것
시인이 된다는 것은 끝까지 가보는 것을 말하지 행동의 끝까지/희망의 끝까지 정의 끝까지 절망의 끝까지 그 다음 처음으로 셈을 해보는 것, 그 전엔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 왜냐하면 삶이라는 셈이 그대에게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게 계산될 수 있기 때문이지 그렇게 어린애처럼 작은 곱셈구구단 속에서 영원히 머뭇거리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지 시인이 된다는 것은/항상 끝까지 가보는 것을 의미하지
밀란 쿤데라의 시이다. '끝까지 가보는 시인의 길을 겁도 없이 들어섰구나' 나는 수시로 스스로에게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끝으로 가기 전에 적당히 타협안을 내놓고 싶었다. 절망의 언저리에서 절망과 화해하고 열정의 시작점에서 생활에 대한 계산을 했다. 그러니까 나는 시인과 생활인의 경계에서 늘 주춤대고 있었는지 모른다. 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며 시를 놓치고 산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 어린애처럼 작은 곱셈구구단 속에서' 시는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이 시를 나는 정말 사랑하나 보다. 극한으로 몰아가 외로움의 땅끝에 서게 해도 나는 시인으로 살아가고 싶은가 보다. 비록 이곳과 저곳의 경계에서 머뭇거릴지라도 한 사람의 시인으로 희망의 끝에 닿고 싶은 건 아닌지. . . 이런 바람이 아직까지 시를 내 가까이 두는 이유일 것이다.
시 쓰는 일에 대한 절망이 익숙해지고 있을 때 '계간지 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다. 끝까지 분명하게 가라는 격려로 받아들인다. 눈물겹게 감사하다. 진짜 시인이 되는 멀고 가파른 길에서 물러나지 않아야겠다. 열정의 끝이 어디인지 궁금하다./도복희
**약력:2009년 《시와정신》으로 등단. 2011년 《문학사상》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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