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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집중조명/손현숙/詩, 영혼이 대답을 시도하는 행간!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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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조명
손현숙
詩, 영혼이 대답을 시도하는 행간!
― 정미소 시인의 작품론
들어가며
시인이 주체가 되는 사색의 대응물에 대응서명은 시인의 감각에 의존한다. 행간 속에는 모든 예술이 집중되어 있고, 시인은 그 속을 신처럼 드나든다. 그렇다면 역으로 시인에게 가장 큰 불행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신체화 된 오감의 불통, 겪어보지 못한 불행에 대한 회한일 것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누구나 피하고 싶어 하는 불행이나 불화에 대해 이렇게 맞서는 시인의 운명이란. 그렇게 시인이 이해하는 이 세계의 모습은 적어도 감각기관 즉, 환경 속에서 조응하는 상호작용과 같은 것들에 의해 작용된다. 그것은 종종 상황 속에서 재현되는 신체화 된 이해에 의존한다. 결국 시란, 불화에서 오는 것이고 감동은 열정에서 오는 것임을 부인할 수 없겠다. 그 긴장을 견디는 순간, 시는 불쑥 뇌관 속으로 날아드는 것이고, 시인은 다만 대응서명의 수순을 따르게 된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모든 진리는 신체화 된 감각의 이해에 의존하는 것처럼 시란, 시인의 감각기관의 조응에 의해 형성된다. 여기, 그렇게 충실하게 삶을 바라보았고 그 삶의 감각에 온전히 몸을 맡겼던 정미소인의 시가 있다. 결국 감각이란, 시인이 몸으로 세계를 느끼는 방법이다. 감각적인 세계 안에 기꺼이 몸을 기입하는 것. 정미소 시인은 그런 세상 속에서 때로는 바람처럼 흔들리면서, 전화를 걸고, 어느 먼 과거의 유배지를 드나들면서 기억을 회기하기도 하면서, 더러는 자연 속에 자신을 기입한다. 그런 그녀를 붙들고 이 글을 쓰는 내내 바람 불고 비는 허공을 긋는다. 하늘은 무슨 사연으로 하루 종일 짐승의 울음 같은 천둥과 번개를 몰고 다니는가. 정미소 시인의 시를 읽어가면서 그 질문에 답을 구하기로 한다.
그와 나란히 흔들그네를 타고 있지요 흔들그네는 죽은 듯 수평선에 정
박한 배를 보고 있어요 오후의 파도가 바위벽을 오르려고 안간힘을 써요
미끄러지며 무너지는 파열음이 바다 쪽으로 사라질 때 그의 침묵이 또박
거려요 그는 서운한 게 많아요 그의 새 여자에게 줄 진주반지는 이미 헌
여자가 된 제가 꿀꺽 삼켰지요 우울증은 고르지 못한 일기가 준 선물이에
요 그는 집채만 한 판돈을 싹쓸이 할 거랬어요 미끼로 쓸 함선을 보내 달
래요 그의 절박한 울음을 귓등으로 흘린 건 제 탓이지요 그는 갑자기 그네
를 버리고 백사장을 마구 달려요 분풀이 할 물때를 만났나 봐요 그를 보내
며 나는 수평선에 정박한 배를 보아요 죽은 듯이.
―「흔들그네」전문
화자는 지금 그네를 타고 앉아 흔들리는 중이다. ‘흔들그네’ 역시 나와 함께 제 스스로를 들어올린다. 그런데 그 옆에서 또 함께 흔들리는 존재는 다름 아닌 화자가 시의 첫 연 첫 행에서 언표하는 ‘그’다. 따라서 한 장소, 한 프레임 안에서 흔들리는 사색의 대응물은 ‘나’와 ‘그’와 ‘흔들그네’로 시선의 혼용을 도모한다. 그렇게 “죽은 듯 수평선에 정박한 배”를 보고 있는 시선의 주체는 “오후의 파도”를 응시한다. 파도가 바위 절벽을 “미끄러지며 무너지는” 바다의 “파열음”을 화자는 “그의 침묵이 또박”거리는 것으로 감식한다. 여기서부터 시는 시적 화자의 사색 속으로 독자를 끌고 간다. 새 여자에서 헌 여자로 기표가 드나들고 파도는 “집채만 한 판돈”으로 은유적 의미의 전환을 한다. 그것은 다시 울음으로 현실과 병치되면서, 감각된 이미지는 모두 화자의 내면세계로 귀환한다. 그러자 갑자기 그는 “그네를 버리고 백사장으로 마구 달”리는 행동으로 묘사가 된다. 그것은 “분풀이 할 물때를 만”나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울음을 귓등으로 흘”려 버린 화자에 대한 반사 행동이기도 하다. 시의 마지막 행에 이르러 “죽은 듯이”의 울림이 큰 이유는 결국 화자로 치환이 되는 나의 선택은 “그를 보내며”에 있다. 그것은 흔들렸던 그 모든 것들에 대한 회한으로 “수평선에 정박한 배를”바라보는 것으로 시인의 대응서명은 여전히 흔들린다.
유배살이 하던 초가에 들어선다
마당 가득
붉은 맨드라미가 꽃대를 흔든다
어긋나게 달리는 잎 새 뒤
막 붓을 놓은 먹물이
붉은 획순마다
우국충정이다
혈서로 적어올린 상소문이 대역죄 되었다
파도에 갇힌 초가의 붉은 한낮
곡기 끊긴 마당에 엎드려 올리는
맨드라미의 혈서를 읽는다.
―「맨드라미 혈서」전문
지금 시인이 사색하는 시적 주체는 ‘맨드라미’이다. 시인이 감각하는 ‘맨드라미’의 알래고리는 “붉은”에서 서성거린다. 화자의 시선 속에 포획된 맨드라미는 ‘붉은’이 상징하는 ‘피’로 이미지의 전환을 시도한다. 그것은 다시 시인의 시 속에서 비극의 상징인 “혈서”로 치환이 된다. ‘초가’와 ‘초가을’의 음운 현상에서도 고독과 고립의 자태를 상징하면서, 자연스럽게 맨드라미의 고유 형상을 응시하게 한다. “마당 가득/붉은 맨드라미 꽃대가 흔들린다”의 의미 영역은 ‘가득’ ‘붉은’ ‘흔들린다’에 시선을 집중하게 한다. 결국 화자가 감각하는 맨드라미의 기표는 “혈서로 적어올린 상소문”이다. 그것으로 시의 정황은 첫 행 첫 연에서 시작하는 화자의 행보를 이해하게 된다. “유배살이 하던 초가에 들어서는” 화자는 결국 ‘대역죄’로 유배를 살았던 ‘우국충정’의 한 인물로 감정이입을 한다. 결국 ‘혈서로 적어올린 상소문’이 원인이 되어서 맨드라미의 “어긋나게 달리는 잎새”처럼 뜻은 나라에 전해지지 않았고, 화자는 ‘대역죄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시공을 초월한 화자의 시선은 “파도에 갇힌 초가의 붉은 한낮”처럼 유배를 살게 되었던 한 때를 떠올리게 된 것이다. “유배살이 하던 초가에 들어선다”의 서슴없음은 꽃대가 흔들리는 맨드라미의 꽃술, 즉 “막 붓을 놓은 먹물이/붉은 획순마다”에 서려있는 “우국충정”을 상기한다. 이 시는 화자로 분한 시인의 한낮, 어느 먼 곳에 위치한 초가의 맨드라미를 향한 시적 깊은 사색에서 출발을 한다. 맨드라미에서 붉음으로, 다시 울음으로, 다시 우국충정으로 가지를 뻗는 상상력은 혈서로 마감을 하면서 맨드라미에서 혈서까지 화자의 비극적 충정을 묘사한다.
아버지의 살찐 악어몸피 지갑이 호시탐탐 저를 유혹해요
빨간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비단뱀도 살 수 있어요 볏이 붉은 암탉도 살
수 있어요 줄이 긴 목걸이도 살 수있어요 모이통도 살 수 있어요 후크선장
이 거느리는 해적선도 탈 수 있어요
아버지의 지갑을 열었어요 백가지의 욕망이 잘 차려진 만물상에서 신이
났지요 무지개 맛 알사탕과 구름 빵, 암탉의 먹이와 해적선 티켓을 샀지요
낮잠 속에, 악어몸피만큼 부른 배를 뉘였어요
천둥 같은 암탉의 울음소리에 눈을 떴어요 만물상아주머니와 악어이빨
을 허옇게 드러낸 아버지가 나를 보고있었어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거스
름돈, 흘려서 들통 난 열 살이에요.
―「열살」전문
화자로 분한 시인은 지금 ‘열 살’, 너무나 투명해서 아무 것도 아니었던 그 시절로 자신을 흘려보낸다. 그렇다면 시인이 감각하는 열 살은 어떤 심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시인이 언표 하는 열 살의 세상은 다름 아닌 죄의식이 없는 세상이다. 그것은 죄 이전의 삶처럼 아무 것도 거칠 것 없어서 투명한 욕구가 삶을 지배하는 시간이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시인은 화자의 나이를 열 살 안팎으로 끌어들인다. 그렇다면 시인이 간파하는 열 살의 기표란 무엇으로 대응서명 할 수 있을까. 시인은 그것을 “유혹”으로 상정한다. “아버지의 살찐 악어몸피 지갑이 호시탐탐 저를 유혹해요” 시의 첫 연, 첫 행에서 발화하는 유혹은 그래서 발랄하다. 그 발랄이 주목하는 아버지의 지갑은 어쨌거나 걱정이 상주하지 않는 열 살의 ‘살찐’ 이다. 그 살찐, 으로 열 살이 살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은 무한이다. 그 중에서도 열 살의 화자는 목걸이. 모이통, 후크선장의 해적선, 비단뱀, 암탉, 등등 동화 속에서 등장하는 그 어떤 환상의 무엇을 원한다. 그리고 순하게 욕망에 길들여진 열 살의 서슴없음은 “아버지의 지갑을 연다”처럼 별 다른 묘사나 장면의 전환 없이 순수 진술로 시의 긴장을 더한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길들여진 열 살의 손은 지갑 속에서 터져 나온 대가물로 속물이 주둔하는 세상의 주식이나 저당 잡힌 건물을 산 것이 아니라, 다만 ‘알사탕’과 ‘구름 빵’ 구멍가게에서 행복했던 “욕망이 잘 차려진 만물상” 놀이를 한바탕 했던 것이다. 그러나 꿈은 깨어나라고 있는 법. 화자의 진술처럼 이어지는 정미소의 만물상은 아버지의 호통으로 끝장을 본다. 감쪽같이 아버지를 속여먹지 못했던 열 살의 꿈장난은 어떻게 들통이 났을까. 열 살, 그것은 아이도 아닌 것이 어른도 아닌 것이, 사춘기도 아닌 것이, 소년도 소녀도 아닌, 어정쩡해서 경계인처럼 아름다운 열 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거스름돈, 흘려서 들통”이 나버린 열 살의 범죄. 사실은 아버지도 농담처럼 들통이 난 열 살을 향해 아름다운 천둥을 쳤을 뿐이다.
거북이의 등에서 피가 난다
구부정한 몸통에
당당하게 뒤틀린 가지
부드러운 곡선이 용솟음치며
다시 살아서 내달리는 쥐라기
육식공룡 한 마리가
이끼 낀 먹물을 턴다
일필휘지, 내달리는 원경의 끝
비늘마다 꽃가루 공기주머니가 눈 부릅뜨고
여의주로 번지는
붉은 낙관
노송도 8곡병풍속에 거북과 공룡이 살고있다.
―「노송도-소치 허련의 8곡 병풍」전문
시는 구체적 세상을 묘사한다. 그리고 문학은 정신사의 기록이다. 그렇게 정미소가 바라보는 세상은 대쪽 같아서 우국충정이 넘실대는 바른 세상일지도 모르겠다. 시의 소제목에서 거론한 ‘소치 허련’은 벼슬이 지중추까지 오른 우리나라 전통 남화의 대가이다. 그는 추사의 제자로 소치란, 중국 4대화가인 황공만과 겨룰만하다 하여 추사가 직접 내린 허련의 아호다. 시인의 시선 속에 포착된 ‘산수화 8곡 병풍’은 소치 허련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시인은 모든 것을 각설하고 허련의 그림을 문자로 묘사하는 것으로 화자의 시선을 유인한다. 그녀는 허련이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또 다른 ‘노송도’를 문자로 재현한다. 그녀가 언어로 다시 보여주는 허련의 ‘노송도’는 세월을 뛰어넘어 억겁의 세월을 살아남아 마땅한 것일 텐데. 화자는 그렇게 시간을 거스르는 그 우아함과 장대함을 “노송도 8곡병풍 속에 거북과 공룡이 살고 있다”는 발화로 시의 끝을 맺는다. 그렇다면 처음 화자의 시선을 잡아 챈 소치의 그림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시의 첫 연은 노송의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소나무의 정신을 기록한다. “당당하게 뒤틀린 가지”는 곧 노송의 모습으로 “거북이의 등에서 피가 난다”로 보아 오래고 오래된 시간의 기록을 “구부정한 몸통”과 “뒤틀린 가지”로 모습을 재현한다. 그 당당함에 매료된 화자의 시선은 “일필휘지, 내달리는 원경의 끝”이라는 언술행위로 ‘노송도’의 위상을 문자로 다시 그린다. 그림 한 장으로 시공을 충분히 초월할 수 있음을 시인은 “여의주로 번지는/붉은 낙관”으로 노송도 8곡 병풍 속에서 “눈 부릅뜨고” 거뜬하게 다시 일으켜 세운다.
나가며
여전히 비는 오고, 이제 질문에 답을 내려야 할 시간이다 그렇다면 시인이란 누구일까, 가끔씩 우문에 기막힌 현답을 기다린다. 누구나 말을 하고, 누구나 시인인 세상에서 진정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마도 말할 수 없는 것을 반드시 언어로 말하는 사람을 시인이라 명하는 것이리라. 그것은 때로는 사람의 이름을 벗고 귀신이 되기도 하고, 흔들그네가 되기도 하면서, 시간을 넘어서는 타자의 개념까지 서슴없이 건너가는 감수성과 용맹성으로 무장해야 가능한 것일 터이다. 이런 사색의 방법으로 정미소 시인의 시를 읽었다. 그녀가 응시하는 사색의 대응물은 현실이었다가, 비가시권의 정신이었다가, 더러는 기억의 저 안뜰까지 서슴없이 건너간다. 시인으로써 웅혼함을 생래적으로 갖고 있는 정미소는 어쩌면 ‘맨드라미 혈서’의 화자처럼 가슴에 붉은 혈을 담은 채 곡기 끓긴 마당에서 상소를 올리는 강직한 성품일지도 모르겠다. 그 말은 즉, 나는 정미소 시인을 전혀 본 적이 없다는 필자의 화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의 시를 읽는 내내 나는 고요함과 시적 열망을 품고 사는 한 시인을 보았다. 그것은 시, 영혼이 대답을 시도하는 행간의 울음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오래 흔들렸으므로 뿌리는 단단했고, 문체는 아름다웠다. 그러니 시인이여 오늘은 슬퍼하지 말고 건강! 건필! 하시라.
**약력: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시집 『너를 훔친다』, 『손』. 사진 산문집 『시인박물관』. 2002년 ‘틈’ 으로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상 수상. 2006년 문화관광부 <시인박물관>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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