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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신작시/문계봉/너무 늦은 연서戀書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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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문계봉
너무 늦은 연서戀書
‘그때’ 내 맘에도 많은 빛들이 살았지. 내 쪽에서 등을 진 빛, 무심
하게 방치한 빛, 감당하지 못하자 스스로 나를 떠나 빛. 잃은 빛과
잊힌 빛, 나를 떠난 빛 사이에서 자주 현기증을 느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나를 떠나지 않은 채 나
와 함께 빛나온 대견하고 고마운 빛. 옹색한 그리움일망정 끝끝내
지키고 싶은, 결코 잃어서도 안 되고, 잊을 수도 없는 빛 또는 빚, 당
신.
무상無常
막 꽃이 피기 시작한 어느 봄날, 아버지는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말
없이 두 평 남짓 화단만 바라보고 있었지요. 안방에 펼쳐진 성경책
위에는 흠집 난 돋보기가 다리를 교차한 채 가부좌를 틀었고, 아버
지의 성긴 머리칼들이 봄바람에 힘없이 흔들리고 있었지요. 고치 속
웅크린 애벌레 같은 아버지의 등뒤로 야속한 시간들이 웅덩이를 이
룰 때, 아버지 생애 같은 옹색한 봄 햇살 한 줌 당신의 마른 몸을 수
의처럼 감쌌지요.
그날 저녁 아버지는 양치를 하다 삭은 치아 두 개를 잃었습니다.
**약력:1995년 계간 《실천문학》 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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