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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호/미니서사/박금산/순정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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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서사
박금산
순정한 사랑
―안나의 사진을 보며
인간에게 남아 있는 엑스레이 사진 중에서 제일 오래 된 것은 안나의 손이 찍혀 있는 사진이다. 안나는 반지를 두 개 끼고 있다. 두 개를 쌍으로 끼는 쌍가락지는 같은 모양을 두 개 끼는 것인데 안나의 손가락에 걸린 반지는 제각각이다. 안쪽 반지는 실처럼 가늘고 바깥쪽 반지는 뱀처럼 두툼하다.
방사선과의 베테랑 촬영기사 이 과장이 안나의 사진을 보다가 자신의 아내에게 묻는다.
“이 사진 이상하지 않아?”
“뭐가?”
“젊었을 때는 눈이 안 갔는데 요즘은 반지에 자꾸 눈이 가네.”
이 과장은 안나의 손을 가리킨다. 안나는 단단한 판 위에 손을 얹고 있는 것 같다. 이 과장은 그녀의 뼈가 취하고 있는 형태에서 체념한 환자의 자포자기식 이완이 느껴진다고 말하고 싶은 것을 참는다. 반지는 세 마디 중의 두 번째 마디에 끼어 있어서, 손을 털면 금방 빠질 것 같다. 아내가 말한다.
“신경선이 심장으로 연결 되니까 그 손가락에 반지를 끼는 거잖아. 가슴 아플 때 거기 주무르면 좀 나아.”
“손가락이 문제가 아니야. 마디가 좀 독특한데, 여기가 아니고 여기잖아.”
이 과장은 반지가 들어 있는 손가락 마디를 가리킨다. 아내가 말한다.
“살이 찐 거야. 젊었을 때는 안쪽에다 꼈겠지. 마디가 굵어지고 살이 붙으니까 반지가 안 들어간 거야.”
이 과장이 말한다.
“그런데 여보. 자기 아내한테 방사능을 통과시킨 게 사랑인가?”
“무슨 뜻이지?”
“뢴트겐이 최초로 찍은 사진이라고 해서 유명해졌는데, 그게 아내의 손이야. 사람들은 멋있다고 하지만 난 끔찍한걸? 끔찍하지 않나? 사랑하는 아내를 그래도 되는 건가? 촬영기가 그때는 안전하지 않았어. 아내한테 독극물 실험을 해도 돼?”
아내가 대답한다.
“뢴트겐은 기뻐서 그랬던 거야. 위대한 과학자는 자기가 발견하고 싶은 걸 찾아냈을 때 제일 소중한 사람한테 먼저 알리고 싶어 한다고 해. 뢴트겐이 실험실 조교 손이나 고양이 발을 찍었다면 지금 우리가 얼마나 불행하겠어? 사진을 볼 때마다 불쾌할 거야. 당신이 그랬다면 나는 당장 이혼이야.”
이 과장은 아내의 손을 바라본다. 어제 찍은 손가락관절염 환자의 흰 손을 떠올린다. 뢴트겐은 최초의 기념사진 이후로 아내의 뼈를 찍지 않았다. 세월이 흘렀으므로 안나도 죽었는데 그녀가 방사능 피폭 병으로 죽은 것은 아니었다. 방사능이 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뢴트겐은 알지 못했다. 그는 다만 살 속의 뼈를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진한 흥분을 느꼈을 뿐이었다. 그 사진에 들어 있는 것 중 살 바깥의 세상 풍경은 사랑의 징표인 반지밖에 없었다.
**약력:소설가. 여수 출생. 《문예중앙》으로 등단. 서울과기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소설집 『생일선물』, 『바디페인팅』, 『그녀는 나의 발가락을 보았을까』. 장편소설 『아일랜드 식탁』, 『존재인 척 아닌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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