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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호/산문/유시연/사랑과 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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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유시연
사랑과 야망
─장제스와 송미령의 이야기
대만 고궁박물관에는 약 67만여 점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현재 관광객을 위한 고궁박물관에는 3천여 점의 유물이 상설전시되고 있는데 3개월마다 종류를 바꾸어준다. 물론 고궁 박물관에 그 많은 수의 유물을 보관하기는 어렵고 산속에 숨겨두고 아주 조금씩 밝은 햇볕 아래 드러내는 수준인데 관련자도 평생 그 유물을 못보고 죽는다 하니 어마어마한 양이 아닐 수 없다. 고궁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유물은 명·청황조 시대의 것이 대부분이다.
국공 내전에서 패한 장제스가 자금성에서 미리 여러 곳에 나누어 대피시켰던 유물을 선박 세 척에 나누어 싣고 대만이라는 작은 섬으로 탈출할 때 마오쩌둥은 포를 발사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측근 인사가 장제스 하나를 죽이면 중국의 보물이 바다에 수장되니 참으라고 만류하자 마오는 어차피 다시 찾아올 것이니 그냥 보내주라고 최종 명령을 내린다. 이 이야기는 아슬아슬하게 피해간 소중한 인류문화유산이 인간의 욕망에 의해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2500년 된 불교 유적을 어떻게 파괴했는가를 떠올린다면 한 치 앞을 내다볼 줄 모르는 인간의 무지와 한계가 아찔하다 아니할 수 없다.
청황조를 무너뜨리고 중국대륙에 근대국가를 세우려 했던 쑨원선생은 자신의 정치 이념을 실현시키기도 전에 암으로 죽고 만다. 쑨원에 의해 우리나라 육사에 해당하는 군사학교 초대 교장이 된 장제스는 서서히 그의 정치적인 야망을 실현시켜 나간다. 그는 어릴 적 시골마을에서 부모가 맺어준 여인을 버리고 두 번째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이것도 오래 가지 못하고 다시 세 번째 여자와 결혼한다. 그러나 우연히 마주친 이국적인 마스크의 여자 송미령을 보는 순간 한눈에 반한다. 그는 송미령을 얻기 위해 고심하다가 쑨원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쑨원의 부인은 송미령의 둘째 언니 송경령으로 처음에는 장제스의 여성편력과 결혼 이력 때문에 반대하지만 이면에는 국공합작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정치적으로 분열을 조장하는 인물이라서 끝까지 반대한다. 두 자매는 결국 중국 본토와 섬나라 대만에서 각자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며 근대국가 설립에 영향력을 끼친다. 은행가이자 사업가인 남편을 둔 큰 언니 송애령은 장제스와의 결혼을 돕는다. 송가 세 자매는 재력가 아버지의 영향력으로 어린 나이에 미국유학을 하고 일찍 서양문명에 눈을 뜨게 되는데 그들은 중국의 근대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된다. 국민당과 공산당 모두로부터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던 쑨원 선생 옆에서 한창 나이 차가 나는 부인 송경령은 그의 비서이자 번역가 구미 각국과의 외교관계 수립 및 통역사 저술활동을 하며 내조를 한 것과 마찬가지로 막내인 송미령 역시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인맥과 탁월한 정치감각으로 장제스를 도와 대만의 퍼스트레이디로서 온 열정을 쏟는다.
장제스가 본토를 떠나 대만에 정착한 후 부인 송미령의 요구대로 기독교신자가 된 것과 더불어 미국의 선교사 및 학계 정치계 인사들과의 활발한 교류로 국가재건에 박차를 가하게 되는데 그는 항일투쟁을 함께한 김구 선생과도 인연이 깊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한국이 해방을 맞이했을 때 장제스는 김구를 도와 미화 20만불을 약속하지만 김구가 그 막대한 자금을 갖고 들어오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 자금은 새로운 정부를 새로 세울 수 있는 기초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장제스는 이후 48년간 대만총통의 자리에 머물렀다. 장제스 사후 차차기 총통으로 그의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난 장경국이 총통을 역임하기도 했다. 장제스가 죽자 송미령은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106세까지 천수를 다한다. 19세기에 태어나 21세기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녀는 중국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며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역사의 회오리를, 그 긴 생의 질곡을 헤쳐나간다.
한때 유엔 상임이사국의 지위까지 누렸던 대만은 중국의 부상으로 정치적으로는 국제적 고립무원 상태에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세계 최강 IT국가이며 대만 대학 출신의 물리학자가 노벨상을 받은 나라이기도 하다. 중국 관광객이 대만으로 몰려오고 정치적 입지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대만 국민은 긴 세월 계엄령을 시행하고 일인 독재를 한 장제스를 국부로 추앙하고 있다. 공과를 떠나 과거보다는 현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국민성은 그래서 우리나라의 일방적인 외교 단절 이후에도 꾸준히 무역 거래량은 늘어나고 있으며 관광객의 교류도 활발하다.
쑨원의 정치적 동지이자 후원자이기도 한 송가수는 일찍 세 딸에게 미국 유학을 시킴으로써 현대문물을 익히게 하고 독립적인 존재로서 인생을 살아가는데 일조한다. 대만은 이제 양당 체제로 선거를 통해 국민당 일당 독재의 막은 내려졌지만 장제스의 국민당 파워는 현재진행형이다.
중국은 대만을 자국의 영토로 본다. 두 개의 중국은 있을 수 없으며 대만 총통의 발언 여부에 따라 중국은 다각도로 공세를 취하게 되고 그 영향은 대만 정치 지도자들이 두 개의 중국에 대한 의견을 경솔하게 말하기를 주저하게 만든다. 자신이 죽으면 관을 땅에 묻지 말라고 유언을 한 장제스는 중국 본토에 묻히기를 희망했으나 그의 소원은 요원하다.
사원에는 다신교를 믿는 대만인의 의식이 엿보이는 건물구조가 있다. 화려한 지붕의 문양과 방마다 재력과 수명과 권력과 명예를 가져다주는 신이 모셔져 있고 그들은 모든 신의 방문 앞에 분향을 하고 소원을 빈다. 종교를 불문하고 다신교를 숭배하는 그들의 도교의식은 다분히 현실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의식과도 닿아 있다.
섬나라 대만은 남한 면적의 삼분이 일이지만 일찍이 스페인과 네덜란드 일본이 한 번씩 그들의 야욕을 드러내며 지배했던 곳이다. 동아시아 역사에서 한국은 그들과 무관할 수 없고 역사는 가정이 없지만 되돌아보라고 우리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준다.
**약력:2003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알래스카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 『오후 4시의 기억』. 장편소설 『부용꽃 여름』, 『바우덕이전』, 『공녀, 난아』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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