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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특집/나의 시, 나의 생활/김상미/시와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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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나의 시, 나의 생활
김상미
시와 생활
1.
내 생활은 아주 단조롭다. 이것도 ‘생활’이라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단순하고 소박하다. 내가 살고 있는 집으로 들어오면 부피가 큰 물건은 책장과 크고 작은 책꽂이와 책상 두 개, 식탁, 옷장, 냉장고뿐이다. 그것도 모두가 오래된 것들이라 많이 낡고 닳은 것들이다. 우리 집에 놀러온 사람들은 내가 옷이 너무 없어서 참 많이 놀란다. 티셔츠나 간단한 옷을 제외하면 옷들의 거의 대부분도 30년 가까이 된 것들이다. 나는 물건을 잘 사지 않는다. 우리 집에 있는 자잘한 소품들은 거의가 선물 받은 것들이다. 그 흔한 푹신한 소파도 침대도 없다. 나는 침대에서 자는 것보다 바닥에서 자는 것을 더 좋아한다. 더 솔직히 말하면 태어나 지금까지 침대 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 하여 나는 침대가 좋은지 나쁜지도 잘 모른다. 그런 걸 갖춰 놓고 살 여유를 지닌 적이 없어 사실 어떤 게 더 편한 생활인지도 잘 모른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내 능력 밖의 일이므로 그 이상을 탐하지도 욕심내지도 않는다. 그런 나를 보고 내 동생은 전혀 발전이 없는 성격이라고 투덜대지만, 나는 다른 훌륭한 사람들처럼 그렇게 악착같이 발전을 지향하며 사는 성격도 못 된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어쩌다 조금 열심히 공부해 1등을 해도,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더욱 열심히 노력하는 그런 학생이 못 되었다. 아, 1등을 하니 이런 기분이구나,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 뒤로 2등 3등… 10등까지 내려가도 크게 걱정되거나 심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운 좋으면(?) 또 다시 1등을 하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내 행복은 결코 성적순에 있지 않았으니까.
그만큼 나는 천성적으로 내기나 승부 같은 것엔 관심이 별로 없었다. 재미가 없었다. 그래도 책읽기와 글쓰기만은 결코 질린 적이 없었다. 재미있었다. 그 때문에 초등학생 때부터 ‘글’과 관계된 일은 모두 내 차지였다. 학급 문집, 학교 신문, 교실 뒤편의 게시판 꾸미기, 교지 만들기, 심지어는 교무실 일지와 선생님들 일지까지(글씨를 반듯하게 잘 쓴다는 이유로) 도맡아 했다. 공책 검사를 할 때마다 선생님들은 놀라워했다. 진짜 네가 쓴 글씨냐, 아님 인쇄한 것이냐고. 그만큼 나는 반듯반듯 큰 글씨 쓰기를 좋아했다. 글자 읽는 걸 좋아하고 좋은 글들은 공책에 베껴 쓰는 걸 좋아했다.
지금의 내 생활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크게 발전한 것도 없고, 크게 변한 것도 없다. 글자를 좋아해 글 쓰는 일을 하고, 글자를 수정해주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 어쨌든 내 곁에는 늘 글자들이 포진해 있었다. 어떤 면에선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고 재미있는 일을 하며 살아왔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정규직일 때보다 비정규직일 때가 훨씬 더 많아 늘 주머니는 텅텅 비어 있었다. 겨우 내 입에 풀칠이나 하는, 제대로 갖춰진 ‘생활’이 없는 ‘생활’이었다.
2.
사람들은 아직도 내가 혼자인 것을 반 놀림, 반 걱정 삼아 너는 문학과 결혼하지 않았느냐, 시에 모든 걸 걸지 않았느냐… 함부로(?) 말하지만, 그건 절대 오해다. 나는 독신주의자도 아니고 시에 목숨 건 사람도 아니다(목숨을 걸었다면 이것밖에 못 쓰겠는가!). 어쩌다 보니 혼기를 놓치고, 우물쭈물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나는 어릴 때부터 결혼에 대한 환상이 없었으므로 딱히 이 생활이 싫은 것도 아니어서 계속 이대로 산 것뿐이다. 문학에 목숨 건 것은 아니지만 문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계속해서 손에서 놓지 않았던 문학. 그러다 보니 문학에 대한 들끓는 열정이 나도 모르게 생겨나고, 다른 건 몰라도 문학만은 제대로 해보자는 소명의식이 마음 깊이 뿌리내리게 된 것이다. 그중에서도 시를 특히 좋아하게 된 것은 시를 읽을 때마다 온 마음, 온 영혼까지 휘감아 올리는 멋진 단어들의 울림과 쾌감, 그 매력 때문이었다. 그 맛은 정말 황홀하고 근사했다.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은밀한 매혹! 시에는 그런 매혹적인 빛들이 숨어 있었다. 그 빛을 발견하고 찾아내려는 힘이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내가 혼자서도 이 세상을 잘 버틸 수 있는 포스를 만들어 주었다. 나는 그 백으로 너 참, 거지 같이 산다는 말도 하하, 웃어넘길 수 있었고, 세상으로부터 받는 부당한 불이익도 굳세게(?), 능히 받아넘기고 대처할 수 있었다. 문학의 힘은 그만큼 강하고 놀라웠다.
3.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를 썼다. 재학시절, 시로는 장원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지만 산문 대회는 나가기만 하면 장원으로 뽑혔다. 그런 내게 모두가 시 말고 소설을 쓰라고 했지만, 나는 시가 더 좋았다. 시를 배반하고 싶지 않았다. 33세만 되면 그 나머지 생은 시를 쓰며 시인으로 살 거야, 다짐했다. 하여 조바심 내며 남들처럼 습작시절, 문청시절도 가지지 않았다. 대신 끊임없이 독서를 하고 메모를 하며 33세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33세에 나는 시인이 되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나이. 인생의 방향을 틀고 바꾸기에 가장 적절한 나이. 나는 그 나이에 내 인생을 시인으로 바꾸었다.
4.
어제는 존 쿳시와 폴 오스터가 2008년에서 2011년까지 서로 주고받은 편지글을 묶은 책, 『디어 존, 디어 폴』(열린책들)을 읽었다. 둘 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라 아주 부러워하면서 재미나게 읽었다. 그리고 그들의 생활, 습관, 성격, 글쓰기 징크스, 세계에 대한 인식과 문학에 대한 열정 등을 엿볼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 그들은 편지를 통해 우정, 스포츠, 여행, 세계 금융 위기, 글쓰기, 휴대전화, 독서, 독자, 불면증, 권력… 등등에 대해 정말 허심탄회하고 솔직하게 서로의 견해를 털어놓았다. 그중에서도 나는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세계 금융 위기, 디지털 문화, 불과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책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1935~2003)의 『말년의 양식』에 대해 거침없이 논하는 부분들이 가장 흥미롭고 인상 깊었다. 미디어를 통해 한 번 걸러진 것들이 아니라 솔직한 두 작가의 펜 끝에서 흘러나온 심중의 말들이라 깊고, 진지하고, 꾸밈이 없었다. 그리고 무척 부럽기도 했다. 이 시대에 메일이나 휴대전화기를 사용하지 않고 한 사람은 육필로, 한 사람은 옛날 타자기로 그 오랜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게 참 신선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게다가 그들의 책을 읽으며 내가 상상했던 그들의 모습이 편지글을 통해 더 생생하고 정답게 다가오는 것도(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들처럼) 그 책이 주는 빛나는 백미였다. 역시 글과 사람은 거의 똑같거나 비슷할 수밖에 없구나… 무릎을 치게 되는 그 유쾌함!
5.
여동생의 도움으로 여태껏 살던 북촌을 떠나 홍제동으로 이사를 했다. 서재와 침실이 분리된, 훨씬 넓고 편한 공간으로. 그리고 이곳은 정말 순수한(?) 서민들이 사는 서민동네라 제법 큰 재래시장도 있고, 산책하기 좋은 홍제천과 안산이라는 아주 예쁜 산이 있어 혼자 돌아다녀도 심심하지 않은 동네다. 창문이 크고 많은 집이라 창문을 열어놓고 있으면 세상 소음들이 그대로 내 방으로 다 들어온다. 그리고 밤에는 달빛이 방으로 쏟아져 들어와 나는 거의 창문을 열어놓고 자는 편이다. 이곳에서 나는 4시집을 준비하고 있다. 시력에 비해 나는 시집을 많이 내지 못했다. 워낙 과작인 데다 많이 게으르고 느린 탓이다. 하지만 이제부턴 좀 더 부지런해지고 싶다. 좀 더 열심히 속력을 내어 이곳에서 4시집도 내고 5시집도 내고 싶다. 그래야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모여 사는 하늘나라에 가서도 그들 속에 끼여 그들과 함께 즐겁게 놀 수 있지 않겠는가. 아마도 지금쯤 보르헤스는 그곳에다 도서관을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죽어서도 도서관 관장이 되고 싶다고 했으니 지금쯤 근사하게 도서관을 짓고는 도서관 관장이 되어 내가 오기를 반갑게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단테는 『신곡』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대부분을 천국으로 보내지 않았지만 지금쯤은 단테도 마음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했으니까. 그 분노와 한탄으로 아마 단테 역시 그곳에서 『신곡』을 다시 써야 하나, 아님 수정만 해야 하나, 갈등하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사실 지옥이든 연옥이든 천국이든 그게 뭐 그리 대수인가. 이곳에 살면서 우리는 그보다 더 심한 지옥을 무수히 보고 무수히 겪지 않았는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옥에 있든 천국에 있든 상관없이 그들 사이에 꼽사리 낄 수만 있다면, 하여 그곳에서도 매일매일 그들을 읽고, 그들의 음악을 듣고, 그들의 그림을 보고, 그들의 영화를 즐길 수만 있다면, 그게 바로 천국이 아니겠는가. 이곳은 점점 더 삭막해지고 있다. 중년의 나이를 훌쩍 넘고 보니 이제는 이미 이곳도 내가 청춘을 지나온 그런 추억의 장소들이 아니다. 많이 변하고 많이 낯설어졌다. 진짜 내가 이민자가 된 것 같고, 어쩌다 젊은이들의 나라에 잘못 표류한 난민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많다. 그래도 나는 내가 늘 해오던 대로 나이를 먹어갈 것이고, 늘 내 곁에 세워둔 카프카의 그 빛나는 도끼날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내가 사는 모습은 별 볼일 없이 단순하고 소박하다. 조금 먹고, 조금 입고, 조금 벌면서 무모하리만치 엉뚱한 꿈이나 꾸는 생활. 별다른 욕심도 탐욕도 집착도 없는 생활. 누가 봐도 훔쳐갈 것 하나 없는 생활이다. 그 때문에 나는 시를 통해 남보다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고, 조금 더 관대할 수 있고, 조금 더 많이 웃을 수 있고, 조금 더 많이 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한 가지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키고 싶다. 철저히 시와 함께 가는 것. 시인이란 시와 인간이 함께 있는 장소이며 함께 가는 길이라는 것. 그러니 시와 생활, 시와 나를 따로 떼어놓아선 안 된다는 것.
그리고 나는 시인이 되는 순간, 시를 쓰든 안 쓰든 상관없이, 다른 모든 시인들처럼 시를 위해 밥을 먹고, 쇼핑을 하고, 뉴스를 보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운동을 하고, 등산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여행을 하고, 사랑을 나누고, 정원을 가꾸고, 취미생활을 하고,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하는 시인공화국의 시민이 되어 버렸다는 것. 시인 이상이 “문을 암만 잡아다녀도 안 열리는 것은 안에 생활이 모자라는 까닭이다.(「家庭」부분)”라고 한, 그 문 안의 슬픈 사람, 슬픈 숙명이 되어 버렸다는 것. 그 한 가지 주파수만은 늘 내 심중에 맞춰놓고 싶다. 그래야만 하늘 위도 땅 밑도 늘 겨울인 이 세상을 시로 접수하고, 받아들이고, 살아낼 수 있을 테니까. 일반인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그 미친 생활 태도를 계속 진행할 수 있을 테니까. 오늘도 어김없이!
**약력:1990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 『검은, 소나기떼』, 『잡히지 않는 나비』. 박인환 문학상, 시와표현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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