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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호/신작시/서수자/민들레가 무섭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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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529회 작성일 16-12-3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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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서수자





민들레가 무섭다


첫 꽃을 받쳐 들고 감격해 있는 민들레와
첫 아이 생일 밥을 먹고 나온 내가 딱 만났다
난산 끝에 태어난 아이를
축하해주듯 그날도 이 꽃은 우리 언저리에 이렇게 피어있었을까
한 여자 아이가 그 꽃을 꺾었다
예쁜 아이의 봄나들이는 더 화사해졌고
꽃을 잃은 계절은 담박에 무채색의 겨울로 바뀌었다
외출했다 돌아오니 꽃은 그 자리에 버려져 있었다
불과 서너발짝 저 쪽의 제 꽃대궁을 민들레는
종일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던 게다
 
열흘이 더 지난 어느 날                          
키를 젖히고 잎 뒤에 숨어있는 봉오리를 보았다
꽃은 활짝 피지 않고 나 예쁘지 않아요 언청이에 못난이에요
쳐다보지도 말아주세요
낱 꽃 몇 개 피우고 지나가는 사람 보고
낱 꽃 몇 개 피우고 다가오는 하늘 보고
마침내 고개만 까딱 들고 늦둥이처럼 꽃은 피었다
아! 그는 그날을 잊지 않고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밖에 달리 생각할 수 없었다
무섭다
스스로 불구가 된 그가 무서워졌다






매화 일기



경칩 사날 앞두고 폭설에 나뭇등걸 검게 젖더니
3월 5일 경칩
녹두알 크기로 부풀어 거친 결이 땡글땡글 뽀루지져 근지럽기도 하겠다
경칩 지나 닷새
곱게 내린 비에 매화나무 아랫도리 한 번 더 젖더니
이틀 지나 봉오리들 쥐눈이 콩만큼 부풀었다
봉오리 안에 누가 촉수 낮은 불을 켰나 푸른빛을 자꾸 헹구더니
안에서 스믈스믈 흰빛이 새어 나온다
심지를 돋우는지 불이 더욱 환하더니



3월 17일
기울어지는 바람을 디디고 한 송이 매화가 피어났다
석달 열흘 헤매 다닌 칠흙 뚫고 무사히 정박한 그 첫 번째 꽃
잡고 있던 것 금방 놓아버린 아쉬운 손으로 꽃은 피어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가지 뒤에 얼굴을 돌리고
곁가지에 또 한송이 봉오리가 오 하고 한숨보다 작은 입을 벌리자
농협 성남지점의 플래카드를
풀떠덕 풀떠덕 못살게 잡고 흔들던 바람이
삼나무 가지를 이리저리 밀치고 내려와
그 입술을 허겁지겁 빨고 있다 그 최초의 숨결을



춘분을 이틀 앞둔 3월 18일
매화나무 다섯 그루 중 가운데 세 그루가
한 송이 혹은 두 송이씩 첫 꽃을 달았다
그 중 한 그루는 딱 한 장만 펼친 꽃잎으로 우스꽝스런 덧니 같다
해거름에 가보니 덧니 옆의 꽃잎도 열리고 있는지 꽃잎 아래
하얀 그늘이 내렸다
덧니 나무 맨 꼭대기에 하늘 끌어안고 활짝 누운 꽃잎하나
그렇게 샅샅이 뒤져도 눈에 띄지 않았는데 꿈인양 오늘 선명하게 피어있다
나무도 자기 첫 꽃은 그렇게 꼭꼭 감추어 두나 보다
사람 발걸음 횟수를 헤아리며 각도를 재고 신중하게 꽃을 피우고 있다
나중에 꽃이 한꺼번에 피어나면 나도 그 꽃 다 헤아릴 수 없어
전체로 야 꽃이다 하고 한꺼번에 봐 버리듯
나무도 나중 피는 꽃은 일일이 다 감추고 헤아리지 못하고
꽃들 제 마음에 맡기고 전체로 꽃피우고 전체로 떠나보내는
그런 무슨 깜냥이 있는가 보다



20일 춘분 오전 10시 30분
첫 테이프를 끊은 나무의 조심스런 꽃들은
오 보다는 크게 감탄보다는 작게 아 하고 벌어졌다
꽃잎 열리는 모양을 순서대로 고속 촬영사진처럼 본다
꽃을 살피는 내 눈을 향해 접근 금지 날카롭게 벼린 나뭇가지 하나
금방 찌를 태세다 작년인가 크게 손상된 가지다



꽃 피워내는 속도에선 가운데 선 나무들이 으뜸이다 망설임이 없다
북쪽 코너에 선 제일 키 큰 나무가 오늘 한 송이 꽃을 달았다
아직 어린 꽃봉오리들 부풀리느라 온힘을 다해 꽈리는 불지만
다시 봐도 맨 앞줄이라는 자리와 맨 뒷줄이라는 코너 자리가 수상하다
그 자리가 무엇에 건 시달리는 자리임에 틀림없다







**약력: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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