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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황진성

매스커레이드 이브*
―사월의 밤

매스크에 가려진 음모
사월의 꽃잎을
온전히 읽어 보려 한 시절을 낭비하다

어느 저녁 봄비가 길을 열어
하얀 꽃비 우르르 쏟아져 내리더니
맨땅에 내려 바람결 꿈틀댄다
아얏,
땅바닥 지천으로 깔린 꽃잎을 밟는다
잔인한 폭군 되어
매스커레이드 뒤로 숨는다

불빛에 번득이며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리운 얼굴
매스커레이드 이브, 어디에도 나는 없다
매번 박자를 놓치고 음표를 잃어버리다
허공에 주르륵 흘러내리는 춤사위
수많은 네가 나부낀다
노란 리본이 펄럭인다
한 줄기 바람을 타고 마음 저 깊은 끝까지
너를 찾아 유령처럼 화려한 봄밤을 건너간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하얀 매스크

   * 매스커레이드 이브 : 가장무도회 전야,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 소설 제목.

풀,풀의 산책
―농학교 뒷산

백리향이 백리까지 향기를 전한다
수수꽃다리, 냉이 꽃 쬐끄만 하얀 얼굴 나무계단 사이 고개 내밀고 바람결 풀풀 흔들리며 말갛게 웃는다
산 벚꽃 농익은 향기 풀풀 날리자 금낭화 사이 옹기종기 서있는 아이들 설익은 손짓이 아우성친다
풀풀 날리는 말들 숲속에 넘쳐흘러 무성하다
삐삐 삐리리퐁 삐읏삐읏 새소리 어울려 날실 씨실로 곱게 구름너울 짜내면 봄바람이 라일락 나무에 살포시 걸어놓는다
풀, 풀의 냄새가 세상을 연두무레*하게 적신다.

* 연두무레: 연두와 초록의 중간색.

**약력:2005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 시집 『폼페이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