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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호/신작시/천선자/파놉티콘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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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천선자
파놉티콘 ·13 외 1편
―동영상
여자가 똥개 한 마리 끌고 간다.
양산을 쓰고 굽 높은 구두 신고 뒤뚱거린다.
검은 털 잔뜩 엉겨붙고 배가 등가죽에 붙은 똥개,
주먹만 한 눈꼽이 말라붙어 실눈이다.
반질반질한 암캐 한 마리 지나간다.
눈을 빼앗기고 코 킁킁대며 냄새를 맡는다.
꼬리치는 암캐의 꽁무니를 졸졸졸 따라간다.
한 쪽 다리 들고 풀밭에 오줌을 눈다.
여자의 가자미눈이 목줄을 잡아당긴다.
뒤를 힐끔거리며 언덕을 오르다가 주저앉는다.
그늘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엉덩이를 걷어찬다.
꼬리를 내리고 혀를 내밀고 헉헉거리며 끌려간다.
집도 못 지키고 밥만 축내는 놈, 병신 같은 놈,
주제에 수컷이라고, 목줄을 바싹 잡아당긴다.
죽지 못해 끌려가는 축 처진 눈이 그렁그렁하다.
파놉티콘 ·14
―멀티비젼
지하철역 입구에 왕잠자리 한 마리 날아와 앉는다.
왕방울 눈이 오가는 사람들을 따라 굴러간다.
빠르게 걸어가는 여자의 뒤를 따라 또르르, 또르르,
왕잠자리는 꼼짝도 하지 않고 여자의 발걸음 수를 세고,
심장 박동 수를 세고, 엄지와 검지의 지문을 스캔한다.
여자가 걸음을 멈추고 왕방울 눈을 가만히 들려다본다.
너 어디서 왔니, 예쁘다, 햇살 담은 날개, 유리구슬 같은 눈,
왕방울 눈이 삼백 육십 도 회전하며 그녀의 동공을 스캔한다.
**약력:2010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도시의 원숭이』. 리토피아문학상, 전국계간지작품상 수상. 막비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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