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61호/신작시/정선희/사진 찍는 집 외 1편
페이지 정보

본문
신작시
정선희
사진 찍는 집
문이 열릴 때마다
그곳엔 눈이 내리고
벚꽃이 피어나지
눈 한 번 깜박이면
낮에도 달밤을 데려오고
밤에도 무지개를 피워내곤 하지
문을 열고 닫는 것으로
계절은 봄에서 겨울로 가고
가을 지나 여름이 오기도 하지
기다리는 게 일이 되어버린 주인은
유리창에 붙은 사진처럼 빛바랜 얼굴
사진 속 벤치에 구름이 우산을 씌운 표정,
도시의 한가운데서
보름달은 가로등이 되고
하수도는 계곡 물소리로 흐르는데,
문이 닫힐 때마다
그곳엔 눈이 그치고
벚꽃은 더 이상 꽃을 피우지 않네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계절을 살다 가는 주인은
더 빨리 나이를 먹고
미래의 옷을 입고
과거에서 현재로 출근한다네
고양이는 호랑이
걸레를 던지면
고양이가 되고
새를 받으면
털뭉치가 되고
공을 떨어뜨리면
달걀이 깨져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호랑이를 좋아하기로 했어
살점 떨어져나간 핏자국으로
팔뚝 반점으로 남은 고양이
유리테이프 찢는 비명소리로
귓속에 집을 지은 고양이
시위를 당긴 눈빛
어둠 속 획을 긋는
발사 직전의 발톱
개는 훈련시킬 수 있어도
고양이는 훈련시킬 수 없다고 해
개는 사람에게 충성해도
고양이는 주인을 생각하지 않지
호랑이를 닮은 고양이
고양이 속에 살고 있는 호랑이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호랑이를 좋아하기로 했어
내 속에도 살고 있는 고양이
길들여지지 않는 것은 전부 호랑이
**약력:경남 진주 출생. 2012년 《문학과의식》으로 등단. 2013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푸른 빛이 걸어왔다』.
추천0
- 이전글61호/신작시/박은형/플라타너스 우체국에서 외 1편 16.12.30
- 다음글61호/신작시/이진욱/꽃낙지 외 1편 16.12.3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