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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신작시/김유빈/구름의 이동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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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김유빈
구름의 이동
오늘은 배내옷 몇 벌
한가한 하늘에 걸렸다.
구름은 옥상에서 옥상으로 이동한다
가늘고 긴 빨랫줄에도 펄럭이며 내 걸린다.
오늘은 평행의 긴 줄이 모처럼 가볍다
훌라후프 돌리는 빨래집게 옆에 매미소리는 걸어두고 줄넘기하는 아이들은
폴짝폴짝 내일의 키를 센다.
파란물방울 무늬에 젖는다,
어느 날은 양떼가 빨랫줄에 걸려있다
모자가 침대가 걸릴 때도 있지만
하얀 컬리풀라워 색색의 파프리카가 한 상 차려질 때도 있다.
구름 카페는 손님도 없이
한낮에만 열려 있다.
너무 높게 걸린 저 빨래들은 누가 걷을 것인가
흐려지는 기미를 응원하는 빈 팔 두 짝이 펄럭거린다.
물구나무 서있는 바짓가랑이는
자칫 빗방울을 걸을 수도 있겠다.
장마철에는 장롱 속에
눅눅한 구름이 몇 벌 걸려있다
오늘은 아기 구름 거풍擧風하는 날
반듯하게 개서 장롱 속에 넣는다.
매화나무에게 듣다
봄 매화나무에 기대고
온순해진 가시들의 뾰족한 전언傳言을 듣는다.
눈밭을 헤친 손톱엔 양지가 자란다.
매화나무는 까칠한 내 친구
겉의 가시란,
속의 가시에 비하면 온순하다고
다독다독 알려주는 봄의 친구
얼음을 파랗게 다듬고
휘파람으로 불어오는 바람의 친구.
매화나무에 귀를 대고 듣는
겨울의 우화羽化
한 그루 봄을 옮겨온 꽃들의 굴뚝에서
매서운 향기가 피어오른다.
벌들을 모아들이는 봄의 이마 같은 꽃
겨울 숲은 뭉클뭉클 꽃들을 만들어 내는 수공예단지다.
매화는 낮은 온도의 꽃
그 미적지근한 온기마저 나누어 주고
꽃들 다 허물어질 때까지
기둥을 두지 않는 집
몇 개의 꽃잎사귀로
하르르 불 밝히는 산의 셋집이다.
**약력:서울 출생. 2014년 《다층》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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