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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신작시/김은옥/재건축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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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김은옥
재건축
메타세쿼이아 그늘이 되어
노인이 홀로 앉아있다
할머니는 어디 갔을까
지나간 사십 년이 눈을 뜬다
아파트 마당 가득 잠자리 날개 무늬 닮은 것이 아롱거린다
잔물결들이 춤을 추는 것이다
고개 들어 보니 먼 위쪽 나무 꼭지에서
유도등 같은 햇살이 쉴 새 없이 쏟아진다
위로 옆으로 부풀어가던 나무가 아파트 벽을 짚으며
깊은 문신까지 새겨놓았다
이삿짐을 풀며 들떠있던 목소리들
창문마다 가득하던 웃음소리들
물결을 이루던 수많은 계절이 이삿짐을 싸서
부르릉 떠난 뒤에 남은 정적이
푸른 정수리에 황혼이 되어 스며들고
거센 바람에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무는
몸부림치며 길게 울곤 한다
나무는 지금 햇살과 바람으로 활동사진을 돌리는 중이다
전 생애를 펼쳐 반추하는 활동사진 속에서
나무와 노인이 함께 어깨 사이로 흰 이를 드러내기도 하는 것이다
까치 한 마리
메타세쿼이아 드높은 정수리에 솟대처럼 앉아 있다
어느 83세의 좌우명
‘나는 항상 자살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자살도 타이밍이다. 배고프다 항상’
-자살방화 가능성-*
새벽, 사이렌이 깨워놓은
독신자아파트 불타버린 창문 너머 동굴 하나가 뻥 뚫렸다
컴컴한 입으로 퀭한 눈으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저 아가리에서 끌려 나온
불탄 집기들을 쓸어 담아놓은 화단을
다시 한 번 뒤돌아서 아, 저곳이구나 확인하듯
짧은 길이 자꾸 비틀거린다
여든세 번째의 정월
그의 아침을 견디기에
새장은 너무 낡아있었다
날개도 깃털도 울음소리도 없이 부서진 새장 안으로
배고프다 배고프다 크게 벌린 입과 눈이 보인다
* 뉴스/낙서들.
**약력:전북 김제 출생. 2015년 《시와문화》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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