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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미니서사/김혜정/그림자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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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서사
김혜정
그림자 여자
그는 처음부터 알을 경계했다. 그가 보기에 알은 자신만의 무언가 를 확고하게 가지고 있었다. 눈은 매의 눈처럼 날카롭고 심장은 불곰 처럼 뜨거웠다. 그는 알 앞에서 수줍게 웃었다. 알도 따라 웃었다. 그 러나 그는 알의 그런 모습이 거슬렸다. 알이 하는 말과 행동이 그녀를 의식하는 것만 같았다. 알과 그는 공교롭게도 우연히 도서관에서 그 녀를 만났고 셋이서 함께 차를 마시고 밥을 먹기도 했다. 그녀는 누군 가 자신에게 다가오면 손을 살며시 들어 자신의 존재를 날려버릴 듯 한 포즈를 취했다. 그러나 그 그림자 뒤에는 욕망으로 들끓는 모습이 감춰져 있었다. 그것이 그의 마음을 끌었다. 알은 그녀의 다른 모습에 이끌렸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이를 테면, 가느다란 허리와 육감적인 엉덩이 같은 것 말이다.
어제 저녁에도 셋이 술을 마셨는데, 그는 알이 그녀에게 압도되 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알은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알의 그러한 면에 질투를 느꼈다. 알이 가지고 있는 양 면성은 중요한 때에 절묘하게 작동했다. 어느 한 쪽이 부족하면 한 쪽 이 보완해주는 식이었다. 넘치는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 모습 을 보는 것만으로도 곤혹스러웠다. 그는 알로부터 그녀를 지키고 싶 었다. 그는 그녀와 같은 학과인 마를 따로 불렀다.
“이제부터 누가 그녀 주변에 얼쩡대는지 보고 나한테 알려 줘.”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 없어.”
“정말이야?”
“누가 그런 여자에게 관심을 갖겠어?”
그는 안도했다. 그런데 마가 다시 말했다.
“그런데 좀 이상한 구석이 있긴 해. 며칠 전에 그녀를 본 친구 녀 석이 얼이 빠져 있더라고. 여자한테 그런 반응을 보이는 친구가 아닌 데 말이야. 그 친구가 뭘 잘못 먹었나 했어. 그래서 그 친구한테 따끔 하게 충고했어.”
“뭐라고?”
“숙녀를 향해서 그런 표정을 지으면 안 된다고 말이야.”
“그게 다야?”
“응.”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그 친구가 그녀에게 어떻게 하는지 알려 줘. 그리고 그녀가 누구를 마음에 두는지도 말이야.”
마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그런 걸 왜? 그녀에게 직접 고백하면 되잖아. 네가 좋으면 좋다 고 하겠지. 아니면 아니라고 할 테고.”
그는 더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일이 제대로 될 것 같지 않았다. 바로 그 시간, 알은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별 하나가 그의 눈 으로 들어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일로 인해 알은 눈을 뜨지 못했 다. 그녀가 이미 그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림자처럼 스윽!
김혜정
**약력:199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설집『 복어가 배를 부풀리는 까 닭은』『, 바람의 집』『, 수상한 이웃』.장편소설『달의 문門』,『 독립명랑소녀』 ‘제15 회 서라벌문학상 신인상’, ‘간행물윤리위원회 우수청소년 저작상’, ‘송순문학상’, ‘2013 아르코창작지원금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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