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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책 크리틱/김유석/외눈박이 견유犬儒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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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크리틱
김유석
외눈박이 견유犬儒의 시선
― 왜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반복해서 울먹이려 하는가 강시현 시집『 태양의 외눈』
스티브블래스 증후군SteveBlass Syndrome이란 말이 있다. 메이저 리그 피츠버그 구단의 스티브블래스란 투수의 사례에서 나온 용어 로 야구에서 투수가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19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초까지 정상급 투수였던 그는 어느 날 갑 자기 제구력 난조에 빠지며 최악의 성적을 기록한다. 스트라이크를 넣지 못해 극에서 극으로 추락한 그는 다음해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만다. 당시 그의 신체적, 정신적 이상은 나타나지 않았으며 갑자기 제구력이 떨어진 이유도 밝혀지지 않았다. 컨디션이나 신체에 이상 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써 자기가 항상 하던 일이 갑자기 제 뜻대로 안 되는 상태를 비 유한다.
그는 왜 ‘갑자기’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했을까. 사실 스트라이 크를 전혀 던지지 못한 것은 아니다. 예전과 달리 스트라이크에 비 해 볼의 빈도가 훨씬 많아졌을 뿐이다. 일종의 슬럼프일 수 있다. 아 무런 이상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나 추측해 보건대, 맘 먹고 스트 라이크를 던져도 볼이 되자 점점 자신감을 잃게 되었고 나중엔 스트 라이크를 던진다는 것 자체가 두려움으로 변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경기장 밖에선 멀쩡하지만 마운드에만 오르면 자신감을 잃는 공황 장애에 빠져 필경 선수생활을 접었을 수도 있다. 야구뿐 아니라 일상적 개인의 삶에 있어서 일시적인 제구력 난 조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스트레스와 강박관념 등에 의해 의 지와는 무관한 행동을 취하거나 자기침체에 빠져들 때가 종종 있다. 문제는 스티브블래스처럼 될 경우다. 추측이 맞다면 부조리와 모순 의 구조물인 인간의 삶 속에서 유사한 예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상사에게 자주 구박을 받는 사람은 그 회 사는 물론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도 자신감을 잃기 쉽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만 봐도 놀라고 한창 인기를 타는 가수가 사소 한 계약상의 문제로 도중하차 하는 일도 곧잘 벌어진다. 그렇다 해 도 이런 개인적인 문제들은 그 대상이 드러나 있어 해결책이 가능하 다. 성격의 차이나 응변 여하에 따라 여러 양상을 띠지만 쉽게 스티 브블래스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대상이 모호하거나 보이지 않 는 것일 때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정치적·사회적, 그리고 경제적 조건에 의해 간섭을 받는 인간의 삶은 공명과 평등의 전제하에 이루어진다. 한 사회가 정의롭다는 것 은 그것을 최대한 추구하며 그 길의 걸림돌들을 가차 없이 들어내는 사회를 말한다. 한 사회가 병들었다 함은 그 장애들을 감추거나 부 당하게 이용하는 세력들의 기득권적 권위가 세습되는 것을 가리킨 다. 그런 사회는 엘리트 위주의 차별, 조작, 소외, 빈익빈貧益貧 등의 현상이 두드러진다. 배후의 힘에 억압되고 자본의 탐욕으로 망가지 는 개인의 삶은 스트라이크를 던지고 싶어도 자꾸 볼이 던져지는 것 이다. 이 말의 개입은 강시현에게 다소 엉뚱할 수 있다. 그의 시의식을 자칫 부정적이고 자학적인 면으로 편애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편들은 크게 자의식과 현실의식의 갈래로 땋아 읽을 수 있는 데 그 두 개의 의식이 섞이는 텍스트를 끌어가는 바탕을 얼추 설정해 본 것에 다름 아닐 뿐이다. 강시현의 바탕에는 불우와 소외가 있다. 유년, 가족, 고향 등 기 억과 현재 사이를 오가며 잔잔히 풍기는 그것은 한 편의 시 속에 고 여 들지 않고 여러 시편들 사이사이를 떠돌아다닌다. 가족에게서 우 러나는 그것은 일종의 정서이고「 상엿집」,「 겨울 홰나무」 등에서 맡 아지는 그것은 자의식이랄 수 있는데 이런 냄새들은 그의 현실의식 을 보다 적극적이고 투철하게 만들고 있다. 배경을 깔 듯 시집 한 권 을 관통하는 바탕을 형성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으며 얼기설기 서로 연관된 듯한 시의 질감 또한 그렇다할 만하다. 한두 편의 시로 강시 현의 세계를 엿보기 난감한 이유는 텍스트가 난해해서가 아니라 작 품들이 옴니버스처럼 서로의 꼬리를 물고 끌리기 때문이다.
눈발 같은 귀밑머리 몰래몰래 어둠 속에 물들이는 여자여
우리가 지내온 날들에도 시간의 비늘이 촘촘히 자랐구나
창녕 오일장의 붕어나 미꾸라지 내장에도
복통이 있고, 순한 개처럼 나는 누구라도 핥는다
비린내는 비늘의 오래된 암각화,
정중한 江, 물결은 비늘을 타고 지느르미 휙휙 내지른다
민망하게 꼬리는 아무에게나 친절하다
비늘에는 푸른 물의 행방이 묘연하고, 검붉은 기억이 소문으로 파다하고,
액기스나 탕이나 몇 천원의 결제로 비늘의 암호는 해독될 것인가
─「 비늘 속의 여자」 부분
젊은 가수는 푸르게 나뭇가지에 걸려서 죽고
정지된 표정으로 곡절曲折만 앙상히 남아
이국異國의 지평선은 쓸쓸해서 둥글고
가을의 토실한 눈알도 가진 것 상관없이 그저 둥글고
굴리고 굴려도 순환의 그 궤도 안,
확인되지 않은 약속만 탈색된 낙엽 속에 갇혀 아무데나 휙휙 흩날렸다
오색바람은 가을을 거둬가려는지 흰 밤부터 검은 낮까지 뒤섞여 놀았다
멜랑콜리를 낳은 국경의 노을 붉은 테라스엔
무산된 혁명의 사금파리들이
피 적신 미이라로 붕대에 친친 감겨져
부러진 시간의 완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둠에 저며진 물살 차갑고 숲마저 하나씩 목숨을 지웠지만
─「 불안한 가을」 부분
시어詩語에는 표정이 있다. 고유한 뜻을 가진 낱말들도 시에 묻히 면 조금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 어떤 말은 의미 이상의 강렬한 인상 을 띠고 또 어떤 말들은 각별한 뜻 없이 부드러운 어조를 이루며 끼 어들기도 한다. 문장 속에서 낱말들은 시인의 변주에 따라 조금씩 다른 표정을 띠게 되고 그러한 표정들은 한 편의 시 속에 은근한 감정 을 안친다. 그러므로 시는 어떤 의미에서 메시지의 전달이라기보다 그런 방법으로 형성된 감정의 전이일 수 있다. 그러나 강시현의 언어는 자못 단호하다. 언어의 알레고리나 표정에 신경 쓰지 않고 낱말 자체의 뜻에 사유를 넣는다. 낱말들을 거침 없이 활용하는 시작詩作은 매우 활발하고 담백하다. 미학적 관점으 로 보자면 거친 감이 있고 진술에 치우치는 느낌은 경계해야 할 부분 이지만 꾸밈없는 낱말들의 배열과 ‘~하고’ ‘~하고’ 하는 반복적인 문 장의 나열 속에 힘을 비축해 나가는 작법이 그의 개성일 수 있겠다.
언어의 표정에 치중하는 전통적 시와 의미의 알레고리를 쫓는 현대 시의 흐름에 구애 받지 않는 직설화법이 오히려 그의 시의식을 도드 라지게 하고 있다. 문장 속에 감정을 얹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낱말 들이 뻑뻑하지 않은 것은 묘하게도 앞서 말한 그의 본질적 바탕이, 감정의 복선伏線이랄까? 드러나지 않고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위 인용한 시에서도 알 수 있듯 강시현의 의식은 긍정적이지 않 다. 가족은 물론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쓸쓸하고 차갑다. 대 상들이 처한 현실을 에둘러 얘기하거나 오히려 따뜻이 감싸는 역설 적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보이는 그대로 느끼고 얘기하며 살짝 비 튼다.
앞발의 슬픔 위로 쏟아지던 별들
손톱으로 긁어보았네
죽어서 저 빈 곳의 별이 된다는 위로의 말들
손톱에 낀 때라고 믿었네
─「 손톱」 중간부분
밥을 먹으며
똥 생각을 하면
확실히 밥맛이 없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하도 신기한 걸 좋아한다기에
똥으로 밥을 해 먹였습니다
간이 안 맞다고 투덜대기에
풋고추에 똥을 발라 주었습니다
너무 외롭다기에
똥묻은 입술로
애잔히 키스해 주었습니다
개똥에 철학이 꽃피는 날
소똥으로 약을 달여먹는 날
인분으로 당신 낯을 씻어드리겠습니다
자꾸 신기한 것만 찾는 사람은
숟가락으로 똥을 떠서
한입 먹여보면 됩니다
그래서 나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난 어떤 인생을 원하는지,
똥밥을 두 공기나
먹어야 했습니다
씨앗을 땅에 심으면 싹을 틔우는데
음식을 입에 심었더니 똥을 틔우고
낱말을 입술에 심었더니
비겁한 변명이 되었습니다
굽신거리며 담배 한 대 빌려달라던 남자는
공중화장실 문을 열더군요
신분이 확인되지 않은 똥무덤에서
황금이 익어가고 정말이지
똥과 된장은 때때로 구별이 안돼요
─「 똥 이야기」 전문
지극히 시니시즘cynicism적이다. 통속하는 문화적, 정신적, 도덕 적 가치를 경멸하는 태도를 보이는 시니시즘은 고대 그리스에서 유 래되었다. 비도덕적이고 위선적인 인간의 행태를 익살스럽게 비틀 던 당대의 희극으로부터 연유한 것이다. 이후 관습과 규율 등을 부 정하고 자연스런 삶을 추구하는 냉소적 염세주의나 인간적 성실과 선에 대한 불신, 도덕원리에 대한 조소 등을 의미하게 된 그것은 부 조리한 인간의 삶을 질타하거나 회의하는 방식으로 통해 왔다. 또한 간접화법의 일종인 그것은 대상에 대한 연민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 을 반대로 표현하여 의미를 강화하는 역설적인 양상을 띠기도 한다. 강시현의 풍자는 냉소에 가깝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즉, 풍자를 벌이는 주체의 입장이 아니라 풍자극을 보는 객체의 반응을 작품 속에 드리우기 때문이다. 소외나 탐욕 등 인간사회의 폐단들을 야기한 근본적 문제에 접근하기보다 드러난 그 결과들을 눈에 비쳐주는 느낌이 더 많은 까닭이기도 하다. 인용 한「 똥 이야기」를 제외한 시집 속의 많은 시편들은 주체와 객체 사 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다분히 정적인 분위기가 묻어나는 「손톱」의 경우도 시 앞 뒤 부분에 ‘단심재판의 판결문’. ‘통행금지된 기억’. ‘봉인된 범죄’ 등의 동적인 구절들이 나온다. 하지만 그런 말들 의 구체적 상황은 생략되어 있다. 그것보다는 ‘허공의 혈관’ ‘뼈가 죽 은 음악’과 같은 관념들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손톱이 ‘무기’이자 ‘위 로’가 되는 시의 텍스트는 충분히 성립되어 전이된다. “신서정”이라 칭하던 시들이 선보인 것은 꽤 됐다. 당시 어떤 논 쟁이 오갔던 간에 기존의 서정에 관념을 끼워 넣는 것쯤으로 주관적 인 해석을 내리고 읽었다.
섬세한 묘사보다 진술 중간 중간에 오브제처럼 끌어들이는 관념이 새롭게 비치기도 하였거니와 주제에 동 떨어진 듯하면서도 묘하게 통하는 소재들의 뉘앙스가 시적 공간을 확장시키는 점이 딴엔 매력적이기도 하였다. 시가 언어의 영역에서 의미의 알레고리로 바뀐 이후 많은 현대시들이 그에 따라 써지고 있 다. 대상을 치밀하게 해체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펼쳐 보이는 시들에 익숙한 평자에 따라서는 치열성의 문제를 거론할 수도 있겠으나 그 또한 강시현의 개성일 수밖에 없다.
돌 속에 길이 있음을 알고부터
나의 길은 질척거렸습니다
나의 겨울은 돌 속에 난 길을 걸어보는 것입니다
깨진 꽃잎과
한 자락 바람보다 가벼운 애증의 지층 사이를
너무도 오래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 돌 속에 난 길」 부분
순간, 영양은 긴 뿔을 세우고 사자를 향해 돌진한다
난 너의 밥이 아니다
멈칫, 사자는 영양이 사자를 알아보길 바란다
제발 알아보길 원한다
무심한 영양은 턱을 당겨 뿔을 지평선과 평행으로 들고
마치 검의 날로 찌를 듯 달린다
─「 아프리카 영양의 뿔」 부분
순서대로 입 귀 눈을 단단히 잠그고 가슴만 남겨둔다
기쁨도 슬픔도 지나치면 눈물이 거꾸로 매달린다
─「 야적된 가슴」 부분
『태양의 외눈』을 통해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리얼리즘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감정보다 사유가 우선인 현실적 삶의 가치관은 절대기준을 이미 넘어 서 있다. 옳고 그름, 선과 악의 경계 가 모호해지고 문제의식보다 개개인의 삶에 예민해진 현실은 모더 니티를 중심으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이르러있다. 하나의 대상에 대해 다양한 가치관을 두는 오늘의 삶들을 수용할 수 있는 리얼리즘 의 대처 또한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어떤 모습으로든 인간의 절대적 가치를 고집하는 리얼리티를 외면하는 삶은 존재할 수 없다. 다만, 감정의 치중보다 사유의 다양성을 제시하는 리얼리즘을 읽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인데 강시현에게서 부분적으로 느낄 수 있는 그 점이 좋다. ‘집나온 개처럼 흘끔거리며 살아온 나이가 저물고’, ‘힘을 거세당 한 사람들은 외로움을 독립이라 불렀다’, ‘나를 버렸을 때 진정한 내 가 되었다’는 강시현의 자존의식은 쓰라리고 고독하다. 시인의 말에 서 밝혔듯『 태양의 외눈』은 비틀거린 날들의 몸부림이자 거짓의 파 편이 아닌 삶의 조각들인 까닭이다. 현실로부터 소외되거나 무방비 로 노출된 사람들과 비루한 세태를 빌어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그의 시선은 적잖이 어둡다. 마치 몸짓만을 끊임없이 반복하다 마는 마임 mime을 흐릿한 조명 아래 보는 듯싶다. 시집 가운데 밝고 따뜻한 시 를 마땅히 찾을 수 없을 만큼「 판타지 없는 세월의 주름」이 깊다. 주 름을 넘어서 죽음에 까지 닿아 있는 어떤 시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착잡한 고통을 견디게 한다. 그 씁쓸한 페이지들 가운데 구태여 몇몇 구절을 따로 들춰 읽자 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자에게 잡아먹히는 연약한 존재인 영양이 날카로운 검처럼 뿔을 세우고 사자에게 덤벼드는 장면, 사자가 자신이 사자임을 알아 달라 당황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약육 강식을 희화하는 풍자를 넘어 일말의 희망이 감돈다. 투지를 가다듬 는 강시현의 모습이 느껴지고 어쩌면 그것이 시 전체를 아우르는 그 의 정신일거란 믿음 때문이다. 그리하여 입 귀 눈 다 잠그고 가슴만 남은 그가 걸어가고 싶어하 는「 돌 속에 난길」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약력:김제 출생. 198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0년〈 서울신 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05년 첫시집『 상처에 대하여』 발간. 201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2013년 두 번째 시집『 놀이의 방식』 발간.《 리토피 아》 편집위원.《 시사사》 공동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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