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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연재산문/이경림/5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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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산문
이경림
50일
메트로 마켓에서 돌아오는 길, 계단 옆 우편함을 확인하는데 우편함 문 에 #205라고 붉은 글씨로 쓴 메모지가 붙어 있다. 뒤집어 보니 동글 동글한 필기체로 ‘Dear kyeongim Lee’ 라고 흘려 쓴 글이 눈에 들어 온다. ‘트레이드 죠에 들렸다가 궁금해서 들렸어요. 한국으로 돌아 가셨나요?’ 간단한 문구 밑에 ‘from Mariann’ 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지난 주 한 번도 도서관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는 정말로 내가 궁금한 것일까? 이상한 감동에 가슴이 뭉클한다. 아무 도 아는 이 없는 異域의 한 마을에서 20여일, 그 짧은 시간, 연극의 한 장면처럼 흰 벽에 붉은 지붕을 한 나지막한 도서관을 배경으로 두 늙은 여자가 만나고 몇 번 차를 같이 마시고 기적처럼 마음이 통 해 기차를 타고 짧은 여행을 한 일이 전부인데 그 사이 서로를 기다 리고 궁금해 하게 된 일들이 마치 지나간 어느 생의 再演같기도 하 다. 주방 아일랜드 식탁 위에 세워져 있는 손바닥 만한 달력을 속 날 짜들을 눈으로 가만가만 짚어보며 그녀가 궁금해 하는 지난 한 주일 을 돌이켜본다.
월-전철로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할리우드의 거리를 어슬렁거 렸다. 코닥 극장 입구 마당에서 수레에 가방 좌판을 하는 한국여자 를 만난 것이 생각난다. 많이 풀죽고 지쳐 있었다. 햄버거 가게, 선 물용품 가게, 피자 가게, 옷가게, 모자가게 그리고 종류를 나열하기 도 힘든 수많은 가게들 그리고 꼬마 점멸등으로 휩싸인 극장이 있는 골목, 줄지은 게임방, 또 인공 바람으로 사람을 띄워 올려 슈퍼맨처 럼 날게 하는 원기둥 모양의 통. 그 속에서 두 팔을 벌이고 즐거워하 는 사람들, 그리고, 허공에서 바람을 타고 어슬렁거리는 킹콩모형의 대형 구조물……. 뭐 그리 화려할 것도 없는, 오히려 조금 번잡한 한 국의 거리만도 못할지도 모르는 그저 그런 거리. 그러나 할리우드라 는 이름이 주는 호기심 때문인지 언제나 관광객들로 우글거린다.
나는 헴버거 하나를 사먹고 스타의 거리에 손도장으로 남은 스 타들의 이름을 밟고 간다. 험프리 보가드, 게리쿠퍼, 짐 케리, 마릴 린 먼로, 록 허드슨, 잉그리트 버그만……들이 구두발에 깔려 지나 가고 있다. 그들은 한 생 가로 새로 몇 미터의 흰 스크린에 갇혀 가 짜 울음과 웃음으로 생을 소모한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을 하니 씁 쓸하다, 그러나 그때 그 허상들과 울고 웃었던 단발머리의 소녀였던 나는 실제였을까? 그들의 생이 규정된 흰 스크린의 속이었듯 모든 존재들의 생 역시 규정된 투명한 어느 스크린 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할리우드라는 거리도 그저 사방 몇 킬로미터의 스 크린 속이 아닌가. 그리고 그날 그곳은 내게 부여된 그날치의 내 방 황의 스크린 속이 아니었을까? 그날 나는 그 속에서 가도 가도 되돌 아오게 되어 있는 이상한 미로 속을 다섯 시간 가량 헤매며 헴버거 를 먹고 30불짜리 노란 가방을 사고 마릴린 먼로의 조각상 어깨에 손을 척 얹고 사진도 찍었다. 그것이 그날치의 나의 생이었다. 사실 삶이란 시작도 끝도 없는 방황에 지나지 않는지 모른다. 이 알 수 없 는 헤맴의 소용돌이 속에서 울고 웃고 사랑하고 병들고 죽고 태어나 는 것이 존재들의 운명이라니! 그러나 그 때 한 점 한 점의 시각들은 그지없이 느리고 혹은 빠르고 지루하고 소란스럽고 고요하다. 잠깐 산등성이를 물들이며 사라지는 노을처럼 신비롭고 아름답고 처연하다.
나는 왜 한 때 내가 엄마라고 불렀던 여인이 아직도 나의 기억의 한 귀퉁이에서 산꼭대기 루핑 지붕집 마당에 놓인 작은 들마루에 앉 아 구슬을 꿰고 있는지 모른다. 왜 여전히 그녀의 등뒤에는 분홍 노 을이 흐르고 분홍 산 아래 분홍의 집들은 끝없이 분홍의 길을 만들 고 있는지 모른다. 후미진 골목 옆 구멍가게는 여전히 분홍으로 환 하고 연탄가게에는 죽어도 분홍이 될 수 없는 연탄들이 시커멓게 쌓 여있는지, 양은 그릇 몇 개가 엎어져 있는 부엌 시렁 옆 시멘트벽에 는 왜 아직도 국자 서넛이 걸려 있고 그 아래서 밥솥은 죽은 듯 끓어 오르는지 모른다.
그리고 어느 쓸쓸한 날 ,그것들은 그 기억의 한 고리를 붙잡고 소 용돌이친다. 아아 그 때 분홍의 하늘을 흔들며 날아가는 분홍 새는 어디로 간 것일까? 그날 나는 분홍이 아닌 할리우드의 잉걸 빛 노을 에 쫓기듯 지하철을 타고 돌아왔다.
화-스튜디오 시티 스테이션에서 레드라인의 끝인 유니온 스테이션까지 갔었다. 유니온 스테이션은 일테면 종합 터미널 같은 곳. 그 곳에서 많은 지역을 육로로도 암트렉으로도 갈 수 있는 환승역. 많 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암트렉을 타고 센디에고나 산타바바라 센프 란시스코 등 소문난 관광지로 간다. 나의 헤맴이 시작되기에 적합한 곳. 어디를 가겠다는 계획 따윈 없었다. 그저 집에서 복잡한 환승 없 이 단번에 갈 수 있는 곳이라는 게 그곳을 택한 이유라면 이유가 될 수 있겠다. 간단한 점퍼 차림으로 여권, 100불이 조금 더 들어 있는 포켓용 얇은 지갑, 그리고 셀폰만 들고 집을 나선다. 내려가는 지하 철 에스컬레이터가 유난히 깊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흉흉한 소문 때문인지 이곳의 지하철은 좀 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다. 기분 나쁜 공포 같은 것이 언제나 전철 안 을 휘돌고 있다.
내 곁에는 회색 곱슬머리의 흑인 노파가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 다. 그 곁에 키가 천정에 닿을 듯한 북유럽계의 백인 남자가 선 채로 책을 읽고 있다, 히잡을 쓴 아랍계의 여인이 아이의 어깨를 토닥이 며 앉아 있고, 일본이나 중국 혹은 한국인일 지도 모르는 동양계의 젊은이 몇, 지독한 곱슬머리의 맥시칸 소년……들이 흔들리는 전철 에 함께 몸을 맡기고 있다.
전철이 vermont/sunset 역을 막 떠날 때였다. 검은 수트에 잿빛 바지가 핸섬해 보이는 동양계 청년이 막 전철에서 내린 듯 천천히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돌아서는 것이 보였다. 순간 나는 하마터면 자 리에서 벌떡 일어설 뻔하였다. 분명 15년 전에 죽은 동생 진의 옆모 습이다.
몇 년 전 그의 무덤을 아버지의 산소 곁으로 이장했을 때 그의 마 지막 모습이 생각났다. 이장을 하기 위해 몇몇의 인부들이 그의 무덤을 파고 있었다 삽 날의 모서리에 아침나절의 햇살이 부딪혀 날카롭게 반사되고 있었 다. 질척한 흙들이 수북이 쌓이고 이윽고 십 수년간 다만 기억으로 만 남아 있던 그의 관이 열렸다. 관 속에는 물이 가득 차 있었다. 그 는 그 위에 둥둥 떠 있었다. 거무튀튀 변색된 그의 몸은 아직도 육탈 되지 않은 채.
그 때 그는 서른 아홉이었다. 약간 좁은 이마와 진지한 코, 그리 고 무엇보다 형형한 눈빛을 가진 멋진 젊은이였다. 그의 판단은 단 호했고 그의 유머는 잘 닦인 놋쇠처럼 반짝였다. 그는 수많은 책을 읽었으며 가난한 사랑 때문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밤을 불면으로 보냈다. 그의 짧은 생은 가난으로 점철되었으나 가난 때문에 괴로워 하지는 않았다. 그는 시끄러운 세간의 소리들을 사랑했으며, 이따금 거짓말처럼 찾아오는 고요를 사랑했다. 어두운 골목과 긴 담장들, 그 위에 피어 있는 덩굴장미를 사랑했다. 담쟁이로 뒤덮힌 낡은 집 을 사랑했으며 그 속에서 지즐대는 가족들을 사랑했다. 그 때 그는 어떤 빛나는 眼光이었다. 딘도처럼 단호한 판단이었다. 잘 닦인 유 머였다. 불면이었다. 사랑이었다. 그러나 어느날 문득 그것들은 그 와 함께 사라졌으며 다만 어둠이 되었다. 허공 위를 하염없이 떠도 는 어른거림이 되었다. 그의 안광은 나뭇잎을 뚫고 오는 햇살이 되 었으며 단도 같은 판단은 이따금 퍼붓는 장대비가 되었다.
그러나 전철은 순식간에 그를 지우고 캄캄한 터널 속을 달리고 있다. 곰곰 생각해 보니 내가 탄 칸의 끝에 검은 수트의 청년이 돌아 서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는 누구였을까? 그는 어디서 와서 이 시간 이 전철에 올랐다가 또 어디로 가는 길이었을까? 그가 서 있던 자리에 눈이 부리부리한 백인 청년이 서 있다. 그 자리가 몇 세기 후 의 어느 날처럼 아득하였다.
그가 서울의 한 여학교 국어선생으로 있을 때 일이었다. 부근에 서 누군가와 약속이 있어 갔다가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생각지도 않 게 나는 그에게 전화를 하게 되었고, 전화기 저쪽에서 그는 마침 수 업이 없다며 ‘누나, 잠깐 들렸다 가세요’ 했다. 생각해 보니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직장에 있는 그를 본 기억이다. 한여름이었다. 매미 소리가 구호처럼 운동장을 가득 메운 날이었다. 운동장 귀퉁이 등나무 그늘에서 앉아 나는 그가 종일 어른거릴 교실들을 보았다. 수업이 막 시작된 교실은 죽은 듯 조용했다. 그 때 소매를 조금 걷은 검은 여름용 수트에 잿빛 바지를 입은 그가 쏟아지는 햇빛이 눈부 신 듯 손차양을 하고 뽀얀 운동장을 가로질러 오고 있었다. 그 때 언 듯 그가 어느 먼 星間을 걸어오는 듯 아득하고 작아 보였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몇 달 후, 그는 마치 중요한 약속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급작스레 우리 곁을 떠났다.
전철은 여전히 캄캄한 터널을 통과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sunset이라는 지명이 새삼 섬뜩하다. 해지는 곳……. 심근 무력증이 악화되어 열흘 가량 입원해 있을 때 그는 매일 서쪽으로 난 병실 창 으로 보이는 언덕을 붉게 물들이며 지는 해를 보며 누워 있었다. 인 공호흡기를 달고 있어 말을 하지 못하면서도 노을 쪽으로 눈짓을 하 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가 간 뒤, 나는 오렌지 빛 혹은 분홍빛으로 한 등성이를 물들이며 사라지는 노을 속에서 언듯언듯 그의 실루엣 을 느끼곤 했다. 그 때 그가 그리도 서둘러 돌아 간 곳이 방금 지나친 <sunset>은 아니었을까? sunset이란 마을이 어떤 곳인지 문득 궁금 하다. 어제 할리우드에서 본 잉걸의 속 같은? 아니면.
전철이 막 벌몬/산타모니카 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뚱뚱한 은 발의 노인이 프렛폼 밴치에 앉아 있다가 느릿느릿 걸어와 뒤뚱, 전 철에 오른다. 그는 왼 손에 낡아 쭈글쭈글하고 여기저기 헤진 가방 을 들고 있었다. 그 속에, 지나온 그의 시간이 다 들어 있는 듯 그것 은 묵직해 보였다. 전철이 출발했다. 배경 따윈 돌아볼 사이도 없이 몇 세기가 캄캄하게 밀려오고 밀려가는 동안 전철은 각양각색으로 제 생각에 빠진 사람들을 싣고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베버리, 윌셔, 웨스트레이크/멕아더 파크, 세븐 스트리트, 메트로 콘트롤, 펄 싱 스퀘어, 그랜드파크……. 마치 앞섶에 이름표를 붙이고 서 있는 초등학교 신입생처럼 그 자리에서 꼼짝 앉고 서 있는 이름들. 아아, 그곳들은 모두 실재하는 곳일까. 그러나 대답처럼 정거장마다 누군 가 타고 내리고 다시 출발하며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이윽고 전철 이 유니온스테이션에 들어섰다. 짙은 wood톤으로 마감된 실내조명 이 마치 중세의 건물처럼 중후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둥근 아취 형의 반투명 창으로 정오 무렵의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나는 스페 인 풍의 무늬가 새겨진 대리석 바닥을 지나 열차 시간표가 붙은 곳 으로 갔다. 가장 먼저 당일치기로 갔다 올 수 있는 곳으로 눈에 띄는 곳이 산타바바라다. 왕복 62$! 꽤 비싼 여행이다. 시간은 한 시 반,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 내친 김에 표를 사고는 희고 둥그런 기 둥을 애워 싸고 있는 둥그런 벤치에 앉아 생각해 본다. 에스컬레이 터 쪽으로 급히 걸어가던 sunset역의 그가 또 떠 오른다. 그는 누구 이며 어디로 가는 길이었을까? 십오 년 전 그가 그리도 급히 떠난 곳 이 그 sunset이었을까? 종착역도 환승역도 아니었던 그저 지나가는 수많은 역 중 하나였던 그곳에서 그는 잠깐 또 다른 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그는 볼일이 있어 우리가 사는 마을에 잠시 내렸다 가 자신이 살던 이곳으로 돌아왔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 다. 그렇다면 그는 무슨 볼일이 있어 우리 마을에 내렸던 것일까? 온갖 이름을 달고 역사가 끝이 없듯 레일 또한 끝이 없는데.
산타바바라로 가는 열차는 한 시 반에 있다. 한 시간 반가량 기다 려야 한다. 혼자 멍하니 기다리기에는 지루한 시간이다. 길 건너 마 을이나 돌아볼까? 생각하는데 누군가 불쑥 코앞에 빵이 들어있는 봉 투를 내민다. 놀라 돌아보니 곁에 앉아 있던 중년의 멕시칸 여자다. 내가 싫다는 시늉을 하며 고개를 흔들자 그녀는 씩 웃으며 다시 봉 투를 거두어 간다. 자세히 보니 커다란 배기지가 옆에 놓여 있고 남 루한 차림하며 홈리스가 분명하다. 그녀는 허름한 차림으로 손가방 하나 없이 벤치에 앉아있는 나를 홈리스로 본 것임에 틀림없다. 슬 그머니 웃음이 난다. 생각하니 그녀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그곳 에서 나는 홈리스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지상에 잠 시 나투었다 사라지는 온갖 존재는 모두 홈리스임에 틀림없다. 그러 나 시간은 쉬지 않고 흐른다. 나는 벌떡 일어나 대합실 문을 밀고 나 간다. 길 건너 쪽에는 멕시칸 전통마을 올베라스트릿이 있다. 멕시 코의 어느 마을을 그대로 떠다 놓은 듯한 마을은 이곳의 원주민이었 던 멕시칸들의 마을이라 한다. 화려한 색상을 한 맥시칸 전통양식 의 건물들과 27동이나 되는 화려한 역사적 건물들 사이로 아기자기 한 가게들이 특색 있는 상업지구를 형성하고 있다. 몇몇의 관광객들 이 타코나 타퀴로 등 멕시코 음식을 손에 들고 상점들을 기웃거리고 있다. 내 눈에는 화려한 멕시코 전통 수공예품들이 눈이 들어온다. 주말에는 아즈텍 인디언들의 포크덴스와 마리아치 생음악도 감상할 수 있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보니 기차시 간이 거의 되어 급히 역으로 가니 산타바바라행 열차가 대기하고 있다.
이곳 암트렉은 좌석표가 따로 없다. 일층이든 이층이든 마음에 드는 좌석에 앉아 갈 수 있다. 기차역 주변으로 베이지색 벽에 붉은 지붕을 인 나직나직한 집들이 눈에 띈다. 마당에 잔디가 안온하고 집 주변을 지키고 있는 동글동글한 나무들이 정겹다.
산타바바라까지는 두 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되어있다. 켈리포니 아의 암트렉은 거의 바다를 끼고 달리는 코스가 많다. 기차에 앉아 키 큰 야자나무들이 줄지어 있는 에메랄드빛 해변을 달리노라면 그 저 아름답구나 하는 단순한 단어 외에는 달리 생각나는 것이 없다. 여기저기 혼자 혹은 두셋이 앉아 창밖 풍경에 넋을 빼앗긴 사람들을 싣고 느릿느릿 기차가 달린다. 평화롭고 안온하다. 안온한 차내 공 기, 안온한 날씨, 안온한 풍경들에 취해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사람 들 술렁이는 소리에 잠이 깼다. 연미색 회벽, 붉은 지붕의 스페인풍 의 건물이 아취형 창들을 달고 서 있는 산타바바라 역이 눈에 들어 온다. 출구 기둥에 달려 있는 엔틱한 유리등이 따뜻하고 이국적 분 위기를 자아낸다. 역 구내에 예술적인 장식들이 무슨 아트 겔러리 같기도 하다. 벽에 붙은 산타바바라 관광 안내판을 본다. 걸어서 3킬 로 쯤 떨어진 곳에 법원 건물이 있다. 걸어서 다녀올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관광지를 본다. 올드미션과 법원이 눈에 띈다. 우선 두 군데를 목표로 하고 역을 나와 걷는다. 인상적인 것은 역에서 45분 거리에 있는 올드미션 까지 걸어가는 동안 신호등이 없었다는 것이다. 인 도에서 차도쪽으로 사람이 다가가면 차들이 서서 먼저 가라고 손짓 한다. 건널목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오고 있는 사람도 차가 기다 려 주는 것은 놀랍다. 20여 년 전 포르투칼 리스본을 여행했을 때 생 각이 난다. 리스본은 우리나라의 부산처럼 바다를 끼고 언덕에 길게 조성된 도시였다. 자연히 찻길도 언덕길이 많았고 동글돌글한 자갈 돌로 포장된 길 위로 전차와 버스 함께 다녔다. 전차가 오면 버스나 승용차들이 일제히 서서 기다렸다가 전차가 지나간 뒤에 천천히 갔 다. 또 승용차나 버스들은 원칙적으로 행인을 우선으로 생각했고 언 제나 충분히 기다렸다가 지나가곤 했다. 그 모든 것이 최소한의 법규 속에서 평화롭게 이루어지고 있어 놀라웠던 것이 생각났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어느 마을을 떠다 놓은 듯 아기자기 멋진 마 을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으며 그 속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사람 들의 집을 구경한다. 따듯한 기후 때문인지 사람 키 만한 선인장과 팜트리 몇 그루를 정원수로 심은 집이 많다. 그것들과 흰 벽에 붉은 지붕의 집들, 그리고 눈부시게 푸른 하늘이 너무 잘 어울렸다.
일명 ‘미션의 여왕Queen of the Missions’으로 불리는 올드미션 산타 바바라Old Mission Santa Barbara는 스페인의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의 해서 지난 1786년 산타바바라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세워졌 다고 한다. 둥근 돔형의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는 성당 안에 몇몇의 관광객인 듯한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드리고 있었다 그들의 앞 한 구석에 금방이라도 길고 고전적인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낡은 오 르간이 엎드려 있다. 그 앞 연하늘색 벽에 그려진 화려한 벽화 때문 인지 실내는 신비로운 분위기로 가득하다. 그 밑의 몇몇의 사도상들 이 경건함을 더해주고 있다.
성당 앞에는 마치 피크닉을 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넓은 잔 디밭이 있다. 외광파 화가들이 이곳에 이젤을 놓고 아름다운 성당 의 종탑을 그린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성당 정원인 shcred garden에 는 아메리카 원주민인 추마슈 인디언Chumash Indians들이 좋아하던 혹은 그들에게 큰 의미가 되었을 식물들이 많이 심겨져 있다. 그 뒤 오래된 묘지들 또한 그곳의 내력을 이야기 해주는 듯하다. 성당에 서는 아직도 정기적인 미사가 집행되고 프란치스코 수사들이 머물 고 있기도 하다고 한다. 한 여행객이 후에르타 히스토릭 가든Huerta Historic Garden 투어가 있다고 슬쩍 귀뜸해 준다. 그곳에는 캘리포니아가 스페인과 멕시코의 지배 아래 있던 미션 시대(Mission era : 17691834)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고 꼭 한 번 가보라고 진지하게 말한다.
성당을 돌아나오는데 산타바바라 해변까지 간다는 시티투어 버 스가 서 있다. 타도 좋으냐고 물으니 운전기사가 ‘노 프라블럼’ 하며 사람 좋게 웃는다. 차에 오르니 문득 시장기가 몰려온다. 아까 올베 라 스트릿에서 사서 먹지 않은 타코를 꺼내 먹는다. 어떻든 혼자 먹 는 끼니는 쓸쓸하다. 이국의 냄새를 씹으며 창밖으로 이국의 거리를 본다. 가까운 곳에 있다는 법원을 향해 버스가 달리는 동안 내 안에 서 누군가가 끊임없이 다그친다. ‘너는 누구이며 왜 여기에 있는가? 그리고 너는 지금 무엇을 찾아 헤매고 있는가? 문득 금강경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모든 것이 다만 꿈과 같고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고 물에 떠 있는 달과 같고 거울에 비친 상과 같으니…….’
산타바바라 카운티 코트하우스Santa Barbara County Courthouse(법원) 는 윌리엄 무서 3세William Mooser III에 의해 디자인되어 1929년에 완공 된 스페니쉬 콜러니얼 리바이벌Spanish Colonial Revival 스타일 빌딩이 라 한다. 그곳은 같은 장소에 좀 더 작았던 그릭 리바이벌 스타일의 법원 청사를 산타바바라 지역의 스페인 건축 양식으로 새로 교체한 것이라 한다. 스페인풍의 중에서도 특히 무어 양식으로 지어진 이 코트하우스 건물은 산타바바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힌 다고 한다. 계단을 내려가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뻗은 흰 나무 둥치를 가진 열대의 나무들이 있는 정원이 있고 우아한 아치형의 기 둥들이 줄지어 있는 긴 회랑이 있다. 실내는 라파엘로의 ‘천사들’이 라는 그림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천정벽화와 고전적인 실내장식들이 관광객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이 아름다운 곳에서 누군가를 단죄하고 벌을 내린다고 생각하니 아이러니하기까지 하 다. 특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85ft(26m) 높이의 ‘엘 미라도르 El Mirador’ 시계탑은 산타바바라 시를 360도로 전망할 수 있는 최고 의 전망대였다. 산타바바라의 전경을 찍으려는 몇몇의 사진작가들 이 카메라를 들고 뷰포인트를 찾고 있다. 거기서 보니 그 코트하우 스는 총 4개의 건물로 되어 있었다 그곳에서는 많은 이벤트들이 개 최되기도 한단다. 전망대에서 보니 멀리 보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아 취형의 창들을 달고 있는 흰 벽과 붉고 둥그런 지붕들이 마치 어느 영화에서 본 프라하의 전경과 비슷하다. 이곳이 동유럽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만든 동네라는 안내판의 글이 실감난다.
옥상에서 내려와 건물 입구에 있는 coffee cat에 들려 까페 모카 한 잔을 마신다. 쓰고 달콤한 맛이 혓바닥에 감긴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검은 물이 목줄기를 타고 뜨겁게 내려간다.
아취형 창에 자주색 밑바탕 그리고 청록색의 지붕을 한 시티 투 어 버스가 떠나겠다는 신호를 보낸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버스 쪽으 로 간다. 버스가 산타바바라 해변을 끼고 달린다. 거꾸로 세워 놓은 거대한 마당비 같은 팜트리들이 바람에 휘청이고 있다. 버스와 길과 사람 사이로 옥빛 바다가 스며든다.
산타바바라 해변은 켈리포니아의 다른 해변과 별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산타모니카나, 레돈도 비치처럼 북적거리지 않고 한산해서 좋았다. 아니 쓸쓸한가? 쓸쓸함 위로 켈리포니아에서 가장 길다는 우드 브리지가 누워있다. 출렁다리 같은 그 목조의 다리를 걷다가 다리 위에 좌판을 벌리고 엄청나게 큰 굴을 파는 사람들을 만났다. 초고추장 생각이 꿀꺽 났다. 생각해 보면 켈리포니아 여행은 바다를 만나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다가 만들어 주는 바람, 바다가 만들어 주는 냄새, 바다가 만들 어 주는 파도……. 그 위로 부서져 내리는 유리부스러기 같은 햇살, 그리고 엄청나게 큰 갈매기들, 그리고…… 바로 그들이 그 시간 그 곳의 주인이었다.
그날 밤 열시가 넘어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a에게서 몇 번 전화가 왔고. 마치 철부지 딸아이를 둔 엄마처럼 그녀의 걱정은 끝이 없었다.
-왜 이렇게 늦게 다녀요? 정말 걱정되네. 엄마. 나의 얼굴을 보자 그녀는 안심이 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조금은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차라리 투어를 신청해요. 그게 편하잖아?
-응 괜찮아 뭐…… 또 아니? 돌아다니다가 근사한 남자 만나 감 쪽같이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지?
내가 낄낄거리자 그녀는,
-노인네 꿈 깨시지 제발. 하며 웃었다.
**약력:1989년《 문학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토씨찾기』,『 그 곳에도 사거 리는 있다』,『 시절하나 온다, 잡아먹자』,『 상자들』,『 내 몸 속에 푸른 호랑이 가 있다』 시 산문집『 나만 아는 정원이 있다』, 산문집『 언제부턴가 우는 것을 잊어버렸다』. 비평집『 사유의 깊이 관찰의 깊이.』 한국문학 번역원 선정 영어 권 번역시집『 A New Season Approaching, Devour it』. 지리산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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