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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기행산문/유시연/올리브나무 사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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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069회 작성일 16-12-31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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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산문

유시연





올리브나무 사이로……




  지난 시월 중순,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을 돌아보며 느낀 감회 는 남다르다. 구도시는 천 년에서 이천 년 된 다리나 건물이 남아 있 는데 석조건축양식이기에 가능했다. 산악지대로 둘러싸인 우리나라 는 목재를 써서 건물을 세웠는데 이것 역시 자연환경에 따른 부득이 한 선택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궁전 건축물이나 대성당을 둘러싼 담장의 돌 이음새에서 태고의 향기가 느껴졌다. 신도시가 이삼백 년 되었다 하니 얼마나 많은 문 명의 바람이 이들을 스쳐지나갔을까. 회교사원 위에 세워진 가톨릭 성당이나 회교성전을 그대로 살려서 내부 제단을 가톨릭 전례에 맞 게 고친 건축물이나 모두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 고 있었다.

  세비야 대성당에는 제국의 시대를 연 모험가 콜럼버스의 관이 보관되어 있다. 그의 관 네 귀퉁이를 떠메고 서 있는 황제들의 조각상 에서 앞 다투어 미지의 자원을 향하여 기세 좋게 출항의 닻을 올리 던 해상왕국들이 차례로 스쳐갔다. 그 순간 우리는 바다를 끼고 있 으면서 안으로 웅크린 채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살았는지 이해할 수 가 없었다.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이들은 자국의 어려움이 나 정치적인 위기가 올 때마다 먼 바다 건너로 눈을 돌렸다. 콜럼버 스가 포르투갈 여왕이나 스페인 정치인들에게 항해의 필요성을 설 명할 때 황금이라는 매개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호기심과 모험 의 이면에는 이를 이용해 정치적인 어려움을 타개하려는 국내 환경이 조성됐다. 그의 개인적인 욕망은 몇몇 야심가의 탐욕에 불을 붙 였고, 본격적인 노예산업이 시작된다. 노예들은 야만이고 짐승이며 문명과는 대척점에 서 있는 이들이라고 여긴 유럽의 몇몇 나라들은 노예뿐만 아니라 자원 수탈에도 더욱 열을 올린다.   

  콜럼버스로 인해 바닷길이 열리게 되자 유럽의 각 해상강국들은 경쟁적으로 아프리카로 눈을 돌리고 노예무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다. 우리에게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를 발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콜럼버스가 발견한 것은 인도라고 생각한 쿠바이며 이후 쿠 바는 스페인의 식민지로 살게 된다. 서쪽에 존재하는 인도로 착각한 쿠바, 서인도 제도. 그가 좀 더 항해를 계속 했더라면 큰 대륙인 아메리카를 발견할 수 있었지만 그의 운은 여기에서 그 치고 만다.

  꼬르도바에는 독특한 양식의 건 축물이 눈에 띈다. 대표적인 회교사 원 건축물인데 안 으로 들어가면 편 자 모양의 기둥들 이 즐비하게 서 있 는데 아치형 이중 구조를 띄고 있다. 문헌에 의하면 그 곳은 다른 문화집 단들에 의해 기도 장소로 사용되었 는데 오렌지 정원 에서 발견된 고대 기둥들은 로마신전이 있었다는 증거이고 솔로몬 왕 시대 유대신전의 존재를 뒷받침할만한 자료 또한 찾아 볼 수 있 다. 유대 신전 자리에는 이미 켈트인들이 룩Luc신에게 바친 신전(제 대)도 존재했음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신앙행위가 이루어진 장소에 700여 년 간 회교 사 원이 들어서고 이후 다시 가톨릭 세력이 들어오면서 건축은 해체될 위기에 처했으나 다행스럽게도 원형을 유지한 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회교사원 건축양식으로 남아 있다. 내부에는 가톨릭 전례를 행하는 제대가 꾸며져 있다. 그 긴 세월동안 끊임없이 종교를 회복하고 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종교든, 어떤 신이든 배척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지닌 우리 조상들과 비교되는 순간이다.

  스페인의 구도시 꼬르도바 시가지에서 길을 건너자 사진관 앞에 서 있는 로만칼라를 한 젊은 신부神父가 눈에 띈다. 독실한 가톨릭 신 자인 지인이 그에게 다가가 질문을 한다.

    “혹시 가톨릭신부님이세요?” 

   “예, 제가 로마가톨릭 신부입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저희는 한국에서 왔는데 신부님 축복해 주세요.” 

  로마가톨릭 신부가 손을 들어 혼잣소리로 중얼거리며 축복을 해준다. 그러면서 자기는 마드리드에 있는데 이곳에 잠시 들렀다고 반가워한다. 얼떨결에 영문학을 전공한 지인 덕분에 나까지 축복을 받고는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기꺼이 축복을 해줄 준비가 되어 있는 겸손한 사제와 헤어졌다. 차량과 사람들이 바쁘게 오고가는 거리에 서였다. 

  세르반테스 소설『 돈키호테』는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작품이다. 군인으로 종군했던 세르반테스는 전장에서 왼손이 잘리는 상처를 입게 된다. 스페인 무적함대는 승리했으나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남 달랐던 그는 서서히 몰락의 단초를 보이는 조국을 안타깝게 바라보 다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촉구하는 차원에서 소설을 집필한다. 돈키 호테는 왕을 향해 귀족들을 향해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기득 권층은 그것을 알아듣지 못한다. 밀 보리가 풍요롭게 널려 있던 들 판은 이제 포도와 올리브로 바뀌어 풍차가 움직임을 멈춘 채 식당 한 구석에서 낡아가는 풍경은 오늘날 위기를 겪고 있는 스페인의 모 습을 보는 듯하다. 국내의 우려와 달리 그들은 아직도 건재하다. 느 긋한 국민성과 한국보다 높은 국민소득, 오랜 기간 풍요를 누리며 살아온 넉넉함과 여유가 겹쳐 스페인은 우리가 우려하는 만큼 위태 로워 보이지 않는다. 빵가게에서는 맛있는 빵이, 농장에서는 고소한 우유가, 시장에는 싱싱한 채소가 여전히 생산되고 있으며 광장에는 각종 퍼포먼스를 하는 행위예술가들로 넘쳐 도시는 활기가 흐른다. 남서유럽은 아직도 인간이 살만한 환경을 지닌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반도의 2.5배, 남한 면적의 대여섯 배에 달하는 스페인의 황량 한 고원지대에는 올리브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가도 가도 끝없는 올리브나무길. 메마르고 황량한 흙에 잘 자라는 올리브의 풍경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대서양 끝에서 지중해 기후가 풍부한 농산물을 선 물하는 동남쪽, 말라가에서 다시 방향을 틀어 북동쪽에 있는 마드리 드와 사라고사를 거쳐 바르셀로나에 이르는 길은 멀고 먼 여정이었 다. 하루를 꼬박 길에서 보낸 시간은 자연풍경 만큼이나 건조하고 단조롭다. 단풍색이 짙어가는 한국의 가을산이 그려졌다. 다양한 종 류의 나무들이 사시사철 옷을 바꿔 입는 한국의 들과 산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마도 사계절이 뚜렷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에 맞 게 우리 국민의 성격이 형성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종교다민족국가. 우리나라가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까. 고래로부터 우리는 다양한 신, 그리스 로마나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보다 훨씬 많은 신 들을 받아들이고 섬겼다. 무생물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신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신이 존재하는 이유는 샤머니즘이나 토템신화를 믿는 정서가 내재되어 있음이 아닌가 한다.

  불교가 전래될 때 이차돈의 순교 외에 기존 종교와 충돌한 양상 은 없었다. 불교는 처음부터 토속신앙을 포용해서 산신각이니, 칠성 신이니 독성신이니 모두 불교 안에서 융합을 꾀했다. 그래서 별다른 민중의 저항이나 기존 종교와 충돌할 이유가 적었다.

  서양에서는 종교 때문에 전쟁을 치르거나 몇 백 년을 두고 갈등 과 분열을 겪으며 스러진 문명 위에 새로운 문명이 들고 남을 반복 해 왔다. 우리 민족성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불교적인 정신이 내 재되어 있다. 어떤 문명, 어떤 종교보다도 위대한 조화의 정신이 아 닌가 한다. 멀리 스페인에서 우리나라를 바라보며 우리의 넉넉하고 너그러운 종교관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 시간이다.

 
 

 




**약력:2003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알래스카에는 눈이 내리지 않 는다』,『 오후 4시의 기억』. 장편소설『 부용꽃 여름』『, 바우덕이전』『, 공녀, 난아』 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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