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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호/특집/인공지능 시대의 시/박태건/인공지능 시대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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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997회 작성일 16-12-31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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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의 시

박태건





인공지능 시대의 시



1. 기계도 사랑을 할까? 깨달음은 언제나 늦고 후회는 반복된다. 인공지능AI시대에서 시의 미래를 상상하라는 편집자의 주문은 처음부터 받지 말았어야 했다. 어쩌면 이 글은 AI가 쓰는 것이 적절할지도 모르기 때문. AI라면 명 쾌하게 썼겠지. 물론 마감을 못 지키는 일 따윈 하지 않을 거다. 나 는 얼마나 후회했던가. AI의 문학성(?)을 판단하기에 나는 어리석다. 몇 가지 조건을 입력하면 맞춤형 글을 쓰고, 이를 바탕으로 영화도 제작해서 보여주는 기계에 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 것일까? 먼 저 문학의 정체성이 고민된다. 사용자 상태에 따라 그 인간을 위로 하는 반응형 문학기계가 있다면, 나도 하나쯤 구입하고 싶다.

   AI이 만든 ‘위무 문학’(AI의 글을 편의상 이렇게 부르자)은 VR 기기와 결 합하여 집에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4D와 결합되면 실감이 장난 아니겠지. 야한 장면에는 흐~ 정말 느끼게(?) 해줄까? 상업자본의 요구 에 따라 제작되는 문학 콘텐츠는 불가능의 세계를 가능케 한다. 그 런데 뭔가 허전하다. AI가 보여주는 불가능의 세계는 원래 문학이 꿈꿨던 해방을 목적으로 하는 건 아닐 테니까. 사~랑이 눈물의 씨앗 이라면 AI는 분명 사랑을 할 수 없을 테고. 그러면 AI가 만들어 내는 위무라는 것도 인간 육체와 현실의 한계를 만족시키는 것에 치중될 테니까.

   따라서 AI의 위무 문학은 친절한 문학 기계의 장점이자 한계가 될 것이다. AI가  제작하는 제품들의 세계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 룰 수 있는 아~아 대한민국’ 어쩌고 하는 노래를 듣고도 왠지 실감나 지 않던 ‘88 올림픽’ 때를 떠올리게 한다. 그게 언제적 이야기냐고 묻 는다면 어쩔 수 없다. 원래 나는 촌스러움이 문학의 본질로 생각하 니까. 문학평론가 정은경은 ‘문학은 세상이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AI의 문학은 ‘그럴법한 세계’를 그 리는 데 맞춰져 있을 것이기에 한계가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위무문 학의 ‘사랑스러움’도 궁극엔 자본가의 호주머니에서 비롯된 것이다.


   2. AI 문학의 출현 인류가 지구의 우월한 종이 된 것은 도구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수 레바퀴의 개발 이후, 인류세는 이제 AI의 시대를 열었다. ‘왓슨’이라 는 똑똑한 AI는 IBM에 2007년 입사했다. 지치지 않는 ‘스스로 학습’ 이 그의 취미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 TV 퀴즈쇼의 챔피언을 꺾었 다. 최근엔 의료계에 진출해 ‘인간’보다 암 진단을 잘한다. 내년(2017) 이면 우리나라 경기도 판교로 이사 온다. IT문화가 활성화된 우리나 라에서 소비자 응대나 전문적 상담을 맡을 거란다. 이 글을 쓰는 동 안에도 미국 법률회사에서 AI 변호사를 채용(사용)한다는 실시간 보 도가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인간이 AI과 의사소통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 현실인가 보다. AI과 인공심장을 연결하면? 와! ‘88 꿈나무’ 들이 텔레비전에서 봤던 인조인간의 시대다.

    AI는 인간보다 뛰어난 자료 분석과 판단 능력을 기반으로 사회 각 분야에서 점점 놀라운 성과를 보일 것이다. 이렇게 산업적으로 활용 하는 기술의 발전이 지속되는 반면 사회정치적인 인간의 판단 능력 은 답보하거나 오히려 퇴보한다. 인류 문명을 발전시킨 학습 역사를 이제 기계에게 물려주는 걸까?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갑을관계는 점점 노골적이고 사회 민주화가 흔들릴 때 나타나는 이 현상. 문학 이 데이터의 조합을 통해 제작될 수 있다는 생각. 이 결과도 생존을 위한 끝없는 학습의 결과일까?

   AI은 진화한다. 불과 5개월의 ‘깊은 학습’을 통해 프로기사와 승부 하는 기계는 인간에게 두려움을 주었다. 복잡해지는 시대에 판단 능 력이 불안정할수록 인간의 두려움이 커진다. 인간의 직관 능력도 이 제 기계의 판단력에 못 미치는 걸까? 기계의 판단이 비록 데이터에 근거한 확률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인간이 잠든 시간에도 ‘깊은 학 습’을 지속한 기계에 패배한 프로기사가 한 말이 무척 문학적이었다 는 것만 기억에 남는다.

   기계는 인간과 달리 과거를 잊지 않는다. AI이 축적하는 과학적 데 이터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줄여줄 것이다. 조만간 내가 좋아하는 야 구경기도 이제 감독을 AI으로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축적된 데이터 를 바탕으로 절적할 선수 운용을 할 테니까. AI의 세계는 이미 현실 이다. 20년이 안 되어 지금 직업군의 절반이 없어진단다. 휴, 다행이 다. 그때면 ‘88 꿈나무’인 나는 백수다.

  

   3. 작가의 생존 AI의 발달로 인해 가까운 미래에 사라질 직업 중에 작가가 포함될 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일부 긍정적이다. ‘문학 작품’보다 ‘문학 제품’의 효용가치가 더 높게 평가되는 시대에는 문학의 내용 역시 인 간에 대한 이해보다 판매 가능성으로 판단되니까. 생물학적 제약이 없는 AI은 도구로서의 ‘문학 제품’ 생산에 영향을 줄 것이다. 어쩌면 AI 위무문학은 인간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도와주고 삶의 질을 개 선해주는 도구로 잘 활용될 수 있을지 모른다. 더구나 전 세계의 AI 가 네트워킹을 하여 정보를 공유하고 학습하는 초연결사회에서는 창작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작가들이 밤늦게까 지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런데 우리가 지불해야할 대가는 무 엇일까? 인간 존엄 상실에 대한 집요한 분노와 작가적 열정의 상실?

   ‘스토리헬퍼Storyhelper’는 소설 쓰는 기계다. 등장인물과 성격, 시 대, 장소 등 조건을 입력하면 그와 유사한 시나리오를 찾아주고, 이 를 바탕으로 스토리를 짜준다. 고객의 소비 패턴에 따라 취향에 따 른 ‘맞춤형 작품’이 탄생되는 것이다. 더구나 국산이다. 현재는 무난 한 문장을 만드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점차 사용자의 취향에 따 라 시나리오를 수정하는 일이 수월해 질 것이다. 작가들은 기계가 찾아준 자료로 수월하게 작업할 것이다. 그런데 창작의 준비과정을 시간의 효율성으로만 따질 수 있을까? 그 소용없음도 문학의 한 특 징이라고 배웠다. 연극「 에쿠우스」의 대사를 빌려 시인과 시기계의 차이를 말하자면 “AI는 열정을 없앨 수는 있지만 창조할 수는 없다.”


   4. 문학은 후회와 갈망에서 시작한다. 얼마 전, 동료 S를 아프게 했다. 그와 나는 수많은 ‘을’ 중 하나여서 서로 잴 것도 없는 처지다. 그런데 그가 생각하는 나는 을2이며 그는 을3이다. 이런 관계는 어쩌면 폭력이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언 제나 결과는 각오보다 치명적이니까. 좀 더 슬퍼해야 했고 좀 더 경 청해야 했다. 대화가 오해를 부르는 것은 생각이 너무 많거나 침묵 하기 때문이다. AI의 위로는 S를 달랠 수 있을까? ‘을’의 대화는 우울하고 후회를 남기기에 나는 여전히 아플 것이다. 그렇게 과거는 간 신히 기억된다. 진화과정에서 인간의 뇌는 이미 답을 정해놓았기 때 문이다. 그런 거다. 문학은 후회와 갈망에서 시작한다. 인간에 대한 불가능한 이해를 꿈꾸는 것. 관계를 맥락으로 이해하는 것. 이것이 내가 AI가 만든다는 언어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다.

   폐교를 활용한 주말 농장에서 땅을 빌렸다. 풋것을 심어서 여름 밥 상에 호사를 부리려는 속셈이다. ‘제초제를 절대 치지 말라’는 주최 측의 당부를 끝으로 노동이 시작됐다. 빌린 괭이와 삽으로 내 몫의 고랑을 파니 금세 허리가 아프고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여보! 그냥 사다 먹으면 안 돼?” 옆 칸에서는 둔덕을 다 만들고 비닐을 덮는다. 고추 지주대를 세운다 해서 제법 폼이 나는데, 농사에 서툰 나는 자 주 허리를 편다. 준비한 고추와 가지 다섯 주, 상추 열 뿌리를 심어 도 대부분이 빈터로 남았다. 오늘은 일단 철수. 삽 한 자루로 할 수 있는 일은 유한하다. 기계는 편하다. 컨셉만 입력하면 문학도 제작 되는 시대에 땡볕 아래 앉아 나는 뭐하는 건가?

   풋것들을 심고 이틀에 한 번꼴로 찾아간다. 심을 땐 푸릇푸릇하던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어 죽을 지경이다. 안달하는 내게 마실 나온 노인이 한소리 한다. “처음엔 다 그러려니 하고, 좀 냅 둬유. 저 것들이 흙에 적응하면 다시 성할 것이요.” 비가 온다. 비를 맞으며 연 녹색의 잎들이 제법 짙어진다. 나의 노동은 AI처럼 딥러닝하긴 힘들 것 같다. 그러나 ‘능숙한 사랑’처럼 ‘능숙한 사과’도 못하는 것이 나의 사랑이다. AI시대에도 시인들은 나처럼 서툰 사랑을 할 것이다.  

  






**약력:1995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와 반시》로 등단. 시집『 나그 네는 바람의 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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