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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호/특집/인공지능 시대의 시/김연성/인공지능 시대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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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의 시
김연성
인공지능 시대의 시
1. 인공지능과 인간의 세기의 대결 J형, 봄인가 싶더니 어느새 여름이 온 것 같습니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봄과 가을은 점점 짧아지고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고 있습 니다. 이곳 남산 자락으로 자리를 옮겨 근무한 지도 벌써 반년이 지 났건만 아직 남산 둘레길을 완주하지 못했습니다. 천성이 게으른 나 는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바보입니다. 꽃이 피어도 별 감동도 없 고 그렇게 봄이 내 곁을 떠나갔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지난번 있었 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때문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세기의 대결이라 일컫는 구글의 알파고와 인간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이세돌 9단과의 대국이 있었습니다. 1946년 세계 최초의 컴 퓨터 에니악이 발명된 이후 계산에서부터 시작해서 논리, 사고, 자각 등 인간고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분야에서도 인공지능은 발 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1997년 IBM의 인공지능 딥 블루가 세계 체 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상대로 승리하였고 인공지능 왓슨 또 한 미국의 퀴즈 프로그램에서 역대 우승자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 였지만 인간이 만든 가장 복잡한 게임인 바둑만큼은 아직까지는 인 간지능이 우세할 것이라는 전망이었습니다. 대국 당사자인 이세돌 조차 4대 1 혹은 5대 0으로 이길 것이라고 장담하였지만 결국 4대 1 이라는 스쿼로 인간의 참혹한 패배로 끝났습니다. 대국 내내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하는 이세돌의 모습이 나에게만 안쓰럽고 고독해 보 였던 것일까요? 표정도 감정도 없이 앉아 착점만 하던 아자황 박사 를 보며 사람들은 아바타를 연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자황 박 사처럼 종국에는 인간이 인공지능의 지시대로 움직여야 하는 미래 가 오는 것은 아닐까요?
이번 세기의 대결에서의 패배로 인해 우리가 우려하는 현상이 더 빨리 현실로 닥쳐올지도 모릅니다. 과거 산업혁명으로 인해 기계가 인간의 할 일을 대신하고 수공업에서 기계공업으로 바뀌게 된 때에 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고 결국 기계들을 박살내기 위해서 인간들 이 들고 일어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산업혁명을 통해서 인간의 할 일을 빼앗아갔지만 인간은 새로운 일들을 창출하였고 새로운 일 들은 우리에게 많은 부를 허락하였습니다. 이번에도 우리의 일자리 가 또다시 빼앗길 가능성이 높지만 오히려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인간의 새로운 권리, 새로운 힘을 발 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나는 답답하고 두렵고 불 안합니다. 인공지능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2. 인공지능 시대의 산문 ‘그 날은 구름이 낮게 드리운, 잔뜩 찌푸린 날이었다. 방안은 항상 최적의 온도와 습도, 요코씨는 어수선한 모습으로 소파에 앉아 시시 한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 는다.’
‘무엇인가 재미를 발견하지 않으면, 이대로 만족감을 얻을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면 가까운 미래에 자신을 종료해 버릴 것이다. 인터넷 을 통해 동료 채팅 AI와 접속해 보면 모두 남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 하고 있었다.’
이 문장은 지난 3월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주최한 ‘호시 신이 치’ 문학상에 응모했던 인공지능이 쓴 소설의 도입부 일부분입니다. 비록 입상에는 실패했지만 1차 심사까지 통과했다는 사실 하나만으 로도 놀랍고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아직까지는 대략적인 구성은 연구진이 입력하고 인공지능은 주어 진 단어와 형용사 등을 조합하는 수준인데 먼저 사람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한다’는 요소를 포함하도록 지시하면 인공지능이 관련 단어 를 자동으로 골라 문장을 만드는 방식이라고 합니다만 연구진은 2년 후에는 인간 개입 없이 소설을 지을 수 있는 인공지능을 개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합니다.
또한 이미 해외에서는 로봇이 쓴 기업 공시 분석 보고서나 지진 발 생 속보를 실제 보도에 활용한다고 합니다. 프로야구 뉴스를 자동 으로 생성하는 프로그램 ‘야알봇’을 만든 이준환 서울대 언론정보학 과 교수 연구팀의 도움을 받아 로봇이 쓴 기사와 기자가 쓴 기사를 보여주고, 기사 작성자를 구별할 수 있는지 설문지를 이용해 실험도 했다고 합니다.
“9일 마산구장에서 열린 2016 타이어뱅크 KBO리그 경기에서 NC 다이노스가 한화 이글스를 상대로 10-1로 대승을 거뒀다. 3연승을 달린 NC는 4승 3패를 기록했다.”
“9일 마산구장에서 열린 NC와 한화와의 2016 타이어뱅크 KBO리 그에서 NC가 손시헌을 시작으로 연이어 득점을 하면서 파죽의 대승 을 거두었다. NC는 13안타, 2홈런을 날리며 거침없이 질주했다.”
모두 273명이 응답했는데 정답률이 평균 45.9%로 절반도 안됐다 고 합니다. 사실상 누가 썼는지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프로야구 팬이라고 답한 이들의 정답률(46.4%)도 별 차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정답률이 이처럼 낮은 것은 로봇 기사가 통상의 야구 기사와 구별하 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표현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한 설 문 응답자는 “‘굴욕을 당했다’ ‘꽁꽁 묶었다’처럼 가치를 부여하는 표 현이 들어 있어 사람이 쓴 기사”라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해당 기사 는 모두 로봇 기사였답니다. 야알봇은 사람이 일반 기사에 사용한 여러 표현을 저장했다가 다양한 조건에 따라 문장을 생성해 낼 뿐 만아니라 경기 순간마다 양 팀의 승률을 계산하고, 승률이 급변하는 대목을 ‘주요 이벤트’로 분류해 기사를 쓴다고 합니다. 거기에 또 다 른 장점은 속도인데 경기 종료 뒤 기사 작성 버튼을 누르면 약 5장 분략의 기사를 생성하는데 1초도 안 걸린다고 합니다.(야알봇이 자 동으로 생성한 기사는 뒤의 것임)
이처럼 데이터에 의한 기사 작성이나 보고서는 이미 로봇이 인간 보다 앞서 있으며 작성 속도 또한 인간의 한계를 능가했습니다.
3. 인공지능 시대의 시 ‘인공지능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은 문화·예술 관련직이라는 기사를 얼마 전에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직 업 중에 자동화 대체 확률이 높은 직업 상위 30개 중에 눈에 띠는 것 은 콘크리트 공 같은 단순 노동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 대다수였고 반면 자동화 대체 확률이 낮은 직업 상위 30위중에는 화가 및 조각 가 등 대부분이 창조적인 성향의 직업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어쩌면 우리에게 인공지능이 쓴 시를 읽어야 하는 불행한 시대 가 닥쳐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구요? 그것은 시의 본질적인 문제에 있기 때문 입니다. 시는 산문이 아닙니다. 쓰라린 경험과 진정성이 결여된 시 를 누가 왜 읽겠습니까?
나에게 “나”는 너무 하잘 것 없어.
나는 나를 자꾸 떠나려 하네
여보세요! 누구십니까? 어머니?
어머니! 아들이 앓고 있어요
어머니! 아들의 마음이 불타요
동생 리우디아와 올리아에게
난 갈 곳이 없다고 전해주세요.
이 시는 내가 1981년도에 읽었던 러시아의 혁명시인 마야코프스 키가 쓴『 바지 속의 구름』이라는 장시의 첫 구절입니다. 이 시는 닥 터 지바고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쓴 ‘어느 시인의 죽음’이라는 자 전적 에세이의 마지막에 인용되어 있답니다. 러시아 혁명의 소용돌 이 속에서 온몸으로 살았던 미래파 시인 마야코프스키는 결국 30대 의 젊은 나이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의 내 나이는 스물 한 살이었는데 아마도 ‘어느 시인의 죽음’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사서 읽게 되었던 같습니다. 물론 제목도 시 구절도 조금 다르지만 35년이 지난 지금도 외우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이상하지 않나요?
우리는 왜 시를 씁니까? 그리고 우리는 왜 시를 읽습니까? 자기반 성이나 진정성이 없이 인공지능이 쓴 시를 읽어야 하는 끔찍한 미 래가 과연 올까요? 아마도 화려한 수사의 나열이나 그럴듯한 묘사 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마야코프스키의 시처럼 단 몇 줄의 시행으로 인간과 시대와 자신의 절망까지도 표현해 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 다. 시는 데이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불완전한 감정의 창조 물이니까요.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정까지는 침범할 수 없다고 단언 합니다.
자본주의가 기승을 부릴수록 우리가 사는 세계는 갈수록 타락하 고 미래는 불확실 합니다.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후손들은 환경오염이나 대기오염으로 인해 이 지구를 탈출하여 우주 정거장 의 유리 건물에 갇혀 비타민이나 채소를 가꾸어 먹으면서 살게 될 지도 모릅니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SF영화의 한 장면처럼 인간이 기 계의 지배를 받게 되는 끔찍한 미래가 올지도 모른다는 이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밤이 깊었습니다. 테리 이글턴의 ‘시를 어떻게 읽을까’의 한 구절 을 인용하면서 두서없는 이야기를 끝내고자 합니다. “시는 일종의 창조적 변칙, 활력을 주는 언어의 질병이다. 그것은 우리가 실제로 아파서 신체를 당연시하지 않게 될 때 신체를 새롭게 경험하는 반갑 지 않은 기회를 갖는 것과 같다.” 그래요 우리 안에 오롯이 도사리고 있는 끝없는 우울과 고독, 깊은 절망과 뜨거운 열정만이 역설적이게도 그 시대를 반영하고 먼 미래를 예지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J형, 지금은 새벽 3시가 넘었고 사방이 어둠에 휩싸여 있습니다. 고운 밤 되십시오. 그럼, 안녕!
**약력:2005년 계간《 시작》으로 등단. 시집『 발령 났다』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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