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62호/추모특집/이가림 시인 타계 1주기/정남석/가장 먼 여행 떠나신 이가림 선생님
페이지 정보

본문
추모특집
정남석
가장 먼 여행 떠나신 이가림 선생님
내 가장 먼 여행은
무덤자리 하나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네
저 페당크 놀이의 쇠공처럼
우주의 배꼽에 최대한 가까이
나를 붙여 보려는 안타까움이라네
어머니의 아늑한 어두운 자궁 속으로
한사코 되돌아가려는
오래된 맹세라네
―「귀가, 내 가장 먼 여행·1」 부분
시단의 선비이신 이가림 선생님이 떠나신지 어느새 1년이 되어 간다. ‘내 마음의 협궤 열차’로 ‘소금창고가 있는 풍경’을 지나 ‘바람개비 별’로 ‘물총새잡이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림자를 낚는 사람’이었 다가 ‘순간의 거울’로 ‘둥그런 잠’을 자는, 진정 저 혼자 피었다 지는 오동 꽃이었을까.
선생님의 작품 하나를 열어본다. “비록 지금 그대의 이름을 알지 못해 부를 수 없다 해도, 그대의 눈빛과 웃음소리와 머리칼 향기를 기억하는 한, 그대는 내 안에 생생히 살아있고, 그대 안에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오. 우린 ‘안녕히’ 란 차디찬 작별의 말을 입으로 말한 적이 없으므로 결코 헤어진 것이 아니오, 서로 다른 시간을 가 리키고 있지만 누구도 틀린 것이 아닌 아르망 페르낭데즈의 ‘모두를 위한 시간’ 앞에서 난 기어이 오고야 말 이 세상 기적의 순간을 한사 코 기다릴 것이오.”「( 투병통신·2」) 부분이다. 정말 기적의 순간을 애 타게 기다리신 건 아닐까, 몸이 점점 안 좋아지는 상황에서도 의식은 명료했기에 눈을 마주칠 때마다 나는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느라 애 면글면하던 기억이 있다. 선생님은 평소에도 ‘삶과 죽음은 하나being is not being다. 있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없는 것이 없는 것이 아 니다. 어차피 인간은 허무한 존재로서 발버둥 친들 1세기를 넘기지 못하는 것이다.’ 라고 하시며 시작과 끝, 삶과 죽음, 안과 밖, 천국과 지옥 이들 모두 하나다, 즉 상반 합일의 우주적 교감을 강조하셨다.
‘선생님이 존경하고 따르던 상상력의 형이상학자 가스통 바슐라 르의『 순간의 미학』, 수직적 시간은 미끄러지듯 흘러가는 일상생활 의 수평적 시간과는 달리, 높이와 깊이가 있는 수직성을 지닌 시간 을 가리킨다. 수직적 시간이란 그야말로 “삶을 부동화하고, 기쁨과 고통의 변증법을 그 자리에서 사는 것에 의해 삶 이상의 것”이 되게 하는 창조적 생성의 용솟음치는 시간, 즉 포에지의 시간인 것이다.’ 처럼 선생님의 시적 시간은 물론 삶의 시간도 수직성을 띄지 않았나 싶다. 선생님이 빚어놓은 순간의 항아리 속에서 우리는 영원히 꿈꿀 권리를 누리게 된 것이다.
‘나는 죽음 앞에서 비굴한 사람들을 보면 측은한 생각이 들어요, 나 같으면 그렇게 두려워하지도 연연해하지도 않겠어요.’ 시인의 삶 을 이야기하는 시 창작시간이었다. 그러고 보면 선생님은 이미 바람 의 방향을 읽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 ‘
‘자연은 불가시의 가용물’ 이라 말한 보들레르Boudelaire, 그의 상 응의 미학에서 죽음은 곧 최고의 명약이라 했다. 권태Ennui와 우울 Spleen에서의 탈피, 즉 이상의 세계에 이르는 길은 첫 번째는 詩에 의 탁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관능적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에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고. 세 번째로는 술, 아편, 대마초를 꼽 았다. 네 번째는 죽음을 떠올렸다. 죽음은 대 여행大旅行 곧 절대의 세계, 피안의 세계이다. 결국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다. 이제 선생님 은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다. 어차피 영혼은 우리 곁에서 떠나지 못 할 것이다. ‘순간의 거울’로, ‘바람개비 별’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풀은
죽는 법을 모르는 자이기에
작별의 인사도 하지 않는다.
―「저무는 풀」부분
곁에서 성한 지팡이가 되어주지 못한 시간은 아직도 한구석이 먹 먹하다. 병상에서 문자로 보내온 글을 타이핑 해드리곤 했는데 그 중 한 편이다. 어느 지면에 발표됐는지 모른다.
**약력:2012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검정고무신』.
- 이전글62호/추모특집/이가림 시인 타계 1주기/이가림 시인의 병상시/잊혀질 권리 외 6편 16.12.31
- 다음글62호/추모특집/이가림 시인 타계 1주기/이경림/우리들의 가림스키, 이가림 시인을 추억하며 16.12.3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