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62호/소시집/김유석/명사鳴砂 외 4편
페이지 정보

본문
소시집
김유석
명사鳴砂
산山 아래 월아천月牙泉 있다.
사막 한가운데 고인
모래의 울음
더 잘게 부스러지는 모래알의,
울음을 쓸어
그렁한 눈썹달에 담고
모래 위에 세운 반백半百의 몸 천 년을 지워내는,
고사목 그림자에 목젖 축이고
짚던 길 잠시 놓치는 낙타의 행렬
울음이 길고 붉다
는개에 젖어 우는 이가 있더라
마른 곳 다 두고 하필 진 데만
나아가는 것인지 뒷걸음질 치는 것인지
늘였다 줄였다 색연필처럼 몸 붉혀
제 몸보다 무른 흙살 위에서나
기어서 남기는 그 한 획 뿐,
는개가 묻혀 온 허공 땅 밑으로 끌고 내려
쩌르르, 초저녁 뒤안 지렁이는 울더라
나선螺線의 형식
느릅나무 배배 감아
흔들림으로 세운 느릅의 공중을 힘줄 돋우고 따라 오르며
느릅의 나이테처럼 넝쿨손을 말아 보는 호박넝쿨
껍데기 속에 연한 살을 태엽처럼 감았다가
천천히 풀면서 나아가는 고둥들
회오리는 횡으로만 불던 바람이 갑자기
수직으로 내려꽂히다가
제 몸을 감아 돌며 상승하는 바람의 중심
19층 그녀의 계단은 용수철이 감겨 있다.
꾹 꾹 눌러 밟고 한 칸 한 칸 올라야 한다.
그 한 칸을 뛰어넘는 내가 곧잘 튕겨지는 이유다.
개구리가 뛰는 방향을 바꿀 때
멈춰 있는 것은 보지 못하고 움직이는 것들만 쫓는 그의 눈은 활성 난시,
흐릿함을 먹고 살아가는 망막에 하루살이 모습이 또렷이 맺힐 때
꼬리를 뗀 후 뛸 수 있었다는 사실은 기억조차 없는데 이따금 꼬리를 달고 있는 느낌에 끌릴 때
살아오는 동안 무감각해진 것들이 뱀 눈초리처럼 되살아나다 다시 무감각해져 갈 때
실컷 울다가 무엇 때문에 울고 있는지 잊어버렸을 때
아무 짓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저지르고 나서 후회하는 것이 낫다 생각들 때
눈 꽉 감고 뛴다. 방향을 바꾸는 줄도 모르고 뛴다.
참을 수 있을 만큼의 가벼운 예우
나는 동거 중, 나는 징그러운 애인들과 한방에서 혼숙한다.
거미, 삭은 실밥 같은 줄을 치고 날아다니는 내 기억들을 잡아먹는 첫사랑
개미, 작은 활자처럼 기어 다니다 때때로 생각을 꼬집어 어딘가 가렵게 하는 외사랑
돈 돈 돈 돈벌레, 너무 밝히다 쫓겨났다 깜짝 나타나 내 지난한 감정을 덮어쓰는 소박데기
쥐며느리, 불륜인지 막연한 일탈을 꿈꾸는 헛 사랑의 화신일지
하루살이, 생이 무어냐 딱 하루 드난살고 빗자루에 쓸리는 풋사랑
귀뚜라미, 울음도 노래도 아닌 타령조로 지난 일들 귀 뚫어 홀리는 작부 같으니
바퀴 너만은 제발, 넌 이름부터 시끄러운 만인의 스토커
에프킬러를 뿌린다. 얼마 후 다시, 본처보다 시샘 많은 첩 노릇이 좋다 구석에 한 살림 따로 차리는 거미
<산문>
정情, 그놈 참
개구리 운다.
배꽃처럼 이우는 스무날 달 그늘 쓰고 조잘조잘 들창을 두드린다. 마당귀에 딸린 조브장한 텃밭, 어깨 높은 서너 채 느릅 사이 끼워 앉힌 배나무의 희끗한 그림자를 밟으며 해묵은 기별인 냥 흘러든다. 멀리서 차츰 가까이 밀리다가 멀어지고, 뚝 그쳤다 홀연 들 메아리처럼 어디메쯤 되돌아오는 밤 개구리 울음.
실은 세레나데라 그랬다. 울음이 아니라 짝을 부르는 청량한 노래란 말, 맞다. 한 마리 한 마리의 목청을 땋자니 울음 같지만 서로서로 섞으면 합창이 된다. 세레나데라 하기엔 좀 뚝뚝하고 어설퍼 보이는 구석이 있지만 노래 사이사이 놓는 정적 속에는 보다 은밀한 낌새가 돌아 노래로 알을 품는 개구리들의 사랑법은 그 어느 족속보다 세련된 듯싶다.
푸른 멍울을 새기는 울음이든 낭만적인 세레나데든, 하물며 떠들썩한 소음이든 듣는 이에 따라 다른 개구리소리에 삼경三更을 홀린다. 세레나데보다 울음이 더 가까운 가슴이 한동안 먹먹하다. 내일은 비, 달무리처럼 나를 에워싸고 줄창 목젖을 불어대는 사월 밤 개구리 울음만 천지간에 자욱한데 혼자 듣기 외딸고 함께 듣자니 사람이 멀다.
보리목이 패고 개구리가 울기 시작하면서부터 들판은 바쁘다. 아직은 모를 내기 전, 본격적인 농사철을 맞기 직전 먼저 마무리해야 할 자잘한 일들이 많다. 봄바람에 부풀어 허물어진 논두렁을 쌓고 물꼬를 손보는 일, 꽃 쇤 장다리를 뽑아내고 궁둥짝만한 어머니 텃밭을 채비해 주는 일, 두렁에 돋아나는 잡풀들에 제초제를 치는 독한 노릇 등이 발에 흙 묻히고 사는 사람의 일거리들이다. 그것 말고도 패는 보리이삭 유심히 바라보아 주는 일, 첫물 터진 도랑에 맨발을 담가보거나 장끼 울음에 가끔 먼 곳을 흘기는 일들도 딴엔 다 품삯 없는 이맘때의 일들이다.
오늘은 귀배미에 딸린 들밭에 고추모를 놓고 왔다. 밭이랬자 겨우 내 먹을 푸성귀나 뜯을 정도지만 유난히 잦은 봄비에 쫓기는 탓인지 삭신이 뻐근하다. 작년에 칠십 근을 땄으니 금년엔 좀 더 따 나눠 먹어야지, 붉고 굵은 고추들을 떠올리며 공연히 헛물부터 켜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비 오기 전 볕이 구름을 뜸 들이는 이런 날은 온몸이 나른히 내려앉아 서둘러 저녁 물리고 자리를 펴면 그만이거늘 나는 어이 등을 끄지 못하는가. 길들인 짐승마냥 엎드린 들마을 잠을 지키며 동구洞口 가등처럼 자물거려야 하나.
이슥토록 불을 켜 두는 일은 몸에 익은지 오랬다. 날밤을 새우는 날도 잦고 불을 켠 채 꿈을 꾸는 일도 적지 않다. 농한기엔 아예 낮과 밤을 바꾸어 살면서 토막잠을 들르곤 하는 편이다. 바쁜 한철마저도 남들보다 한참 늦게 들판으로 나가는 내게 언제부턴가 ‘잠꾸러기’, 혹은 ‘올빼미’란 별명이 붙었다. 잠자는 시간만을 따지자면 조금 억울하기도 하지만 ‘올빼미’는 썩 걸맞은 느낌이어서 스스로도 그렇게 여겨질 때가 많다.
그러나 그 시간에 무얼 하느냐 물어 오면 여간 난감하지 않다. 무얼 하지? 자문을 해보고 싶을 만큼 궁금해져서 대체 무얼 하는지 자신에게 솔깃해지는 순간이 있다. 때 절은 니코틴 냄새와 식은 커피 잔으로 봐선 분명 뭔가 골똘해 한 것 같은데 그렇다 할 증거가 없다. 컴과 면벽하며 몇 줄의 문장을 쫓다 놓친 가물거리는 기억 뿐, 막간에 스쳐 본 야동의 한 장면만이 오버랩 될 뿐 도무지 별것이라곤 없는 것이다. ㅋㅋ
그래도 이제는 글쟁이란 걸 알아보는(?) 이들이 몇 생겨서 그저 그러려니 하거나 누군가 속내를 물으면 “이 친구 시인이야”, 그 한마디로 두남두기까지 하는 사람이 있어 아주 궁색한 형편은 아닌 듯싶다. 시인이란 밤새 울어대는 개구리쯤의 족속으로 여겨 줄려나, 아님 참 하릴없는 노릇이라 혀를 차려나. 어떻든,
책 펼쳐가며 뭔가 끄적이는 일은 일 측에도 들지 못한다. 적어도 내 사는 곳에선 조기축구회에 나가거나 산악회라도 들어야 겨우 명색이나마 얻을 수 있다. 쉬는 것도 일이라면 건강을 생각한다든지 여럿이 어울릴 줄 아는 취미쯤은 돼야지, 방구석에 혼자 쳐 박혀 아까운 시간이나 축내는 꼴이란 고상한 취미? 괴상한 짓거리에 지나지 않을 터이다.
그짓을 나는 왜 여태껏 내려놓지 못하는 것일까. 까짓 조기축구나 산악회는 치워라, 생색내며 살기 좋은 시의원도 조합장도 다 싫다 아직 여기 서성거리는가. 농사꾼이면 열심히 땀 흘리는 일이 우선인데 나는 지금 땀을 흘려야 하는 까닭이나 실없는 개구리 울음에 묻고 있질 않는가.
애초에 미련을 버리려 했던 적 있었다. 글판에 몸 들인 잠시 후 나는 사라졌다. 경외했던 세계가 아니고 밑천도 없음을 구실삼아 낚시와 함께 십오 년을 떠돌았다. 그렇게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물가에서 돌아올 때마다 뭔가 묻어오는 것이 있었다. 월척을 끌어올린 손맛도 놓쳐버린 허전함도 아닌, 깻묵냄새도 비린내도 아닌, 물속 같기도 하고 물위에 꽂힌 찌 같기도 한 그것의 정체는 막연한 어떤 느낌들이었다. 어떻게든 그것을 베끼지 않고서는 다시 물가로 나갈 수 없을 듯싶어 곰곰 몇 자 적었을 뿐인데 적을수록 주낙처럼 끌려나오던 생생한 느낌들. 나는 필경 나를 떠나지 못하고 낚고 낚이며 있었던 것이다.
나는 시가 뭐냐 묻는 주책없는 시인도 못된다. 시 쓰기의 괴로움도 각별한 재미도 별로 없다. 물가에서 그랬던 것처럼 어떤 느낌들이 올 때까지 기다린 뒤 몇 줄 적고 또 기다리는 것이 고작이다. 밤을 지새우고 밤낮을 뒤집어 한철을 나는 건 해묵은 습관인 셈, 뭐 그리 대단한 작품이라도 쓰는 냥 본의 아니게 남의 눈을 속이지만 실은 영화카페 같은 데 공짜로 죽치고 있거나 한다.
나의 시는 밥도 짓지 못하고 외투처럼 걸칠 수도 없으나 언제까지나 낚시터를 떠돌던 그 느낌들이 찾아들길 바란다. 종종 스스로를 속이려 드는 삶에 노여워하고 연민해주길 바랄뿐, 그저 개구리 울음에 혹하는 이 밤처럼
시는 내가 나에게 정드는 일이다.
**약력:1960년 전북 김제시 죽산에서 출생. 198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05년 첫시집 『상처에 대하여』 발간. 201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2013년 두 번째 시집 『놀이의 방식』 발간. 《리토피아》 편집위원. 《시사사》 공동주간.
- 이전글62호/소시집/안명옥/나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외 4편 16.12.31
- 다음글62호/집중조명/남승원/당신이 되는 법 16.12.3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