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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호/신작시/구순희/해질 무렵의 안부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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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구순희
해질 무렵의 안부
커다란 나룻배 한 척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다
그 옆에 푸른 물살 저어가기를 포기한
기다란 노 하나가 황량한
모래밭에 처박혀
서서히 모래가 되어 간다
썰물에 밀려온 게 분명한 덩그러니 놓인 배 옆에
씹다 버린 껌이 남은 수액을 쥐어짜려는 듯
배배 몸을 꼰다
얼마를 저런 구도로 여백을 채우고
언제부터 저렇게 오래 그늘을 말렸는지
그림자를 잃어버린 등짝은
꽤 초라한 구도를 모색 중이었으리라
그 풍경을 묘사하기에 족한 때는
축축하거나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버석거리는
해질 무렵이 제격이다
원본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을 노랗게 훔친다
달걀에서 병아리가 나오면
그게 흰자야, 노른자야
그 질문에 하나같이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
당연히 노른자겠지
병아리가 샛노란 옷 입고 꼬물꼬물
개나리색 입고 태어나잖아
노랑이 원본이잖아
하얗고 매끈하고 군더더기 없는
귀족 같은 흰자가 더 좋아
아무리 억울해도 아무 말 못하게
목을 꽉 막는 답답하고 퍽퍽한 노른자
참자, 참자……
마지못해 삼키곤 했는데
그동안 먹어치운 의심스러운 원본으로
세상이 온통 노랗다
**약력:부산 출생. 198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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