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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신작시/유안나/벽돌을 쌓듯이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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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신작시/유안나/벽돌을 쌓듯이 외 1편
유안나
벽돌을 쌓듯이 외 1편
둘이 사는 동안
당신 옆에서
당신이 멀리
가지 않도록
치맛자락을 펴 바닥을 만들고
마음이 드나들도록
미간에 쪽문을 열어두고
진달래꽃 위에
콩새의 노래 쌓고
콩새 노래 위에 나비 비단옷 쌓고
나비 비단옷 위에 바람의 눈물 쌓고
눈물 위에서 기우뚱 허공을 짚을 뻔
몇 번의 엇갈림을
통과하는 동안
담은 조금씩 두터워져
고인 어둠에 한 줄기 햇빛을 부양하며
세상 모든 검은 비
세상 모든 불온한 구름
밖에 세워두고 싶어
벽돌 한 장씩 올리는
참 아슬한
당신이라는 역
짐은 무겁고 다리가 아팠네
고즈넉한 어느 마을이
그대의 다정한 무릎 같아서
내 짐을 잠깐 내려놓았네
어디선가 기차가 지나가고
어디선가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네
상처 입은 짐승처럼 헤매다 돌아와
그대 옆에 누워 잠 들었을 때
그대는 내 잠을 지켜 주었네
그러나 다음 역에서 부르는 소리 급하게 들려와
서둘러 떠나가느라
부르다 만 당신의 이름을 떨어뜨렸네
당신은 그 이름을 주워서 주머니에 넣고 기다렸다 하고,
가슴에 노오란 물집이 생겼다 하고,
햇빛이 덧문 사이로 끼어들고
참새들이 은사시나무에서 재재거릴 때
어떤 한없이 여리고 한없이 아파하는 이에 대한 생각이 났네
그에게로 흐르는 수문을 열어
연한 버들잎 하나 떠나보내네
진흙땅 건너면서 내게 마른 발자국을 남기는 사람이여
영혼이 찢겨 돌아오면 자리 내어줄 역이여
*유안나 2012년 《애지》로 등단. 시집 『당신의 루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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