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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미니서사/박금산/외계 존재와 키스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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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미니서사/박금산/외계 존재와 키스한다면
박금산 소설가
외계 존재와 키스한다면
키스를 하면 성별이 바뀌는 존재가 있었다. 외계의 존재였다. 남자는 여자가 되었다. 여자는 남자가 되었다.
어느 날 지구 존재가 외계 존재와 사랑에 빠졌다. 지구 존재는 지구 식으로 사랑하고, 지구 식으로 그리워하기를 원했다.
지구 존재가 말했다.
“키스해도 됩니까?”
외계 존재가 말했다.
“저는 키스를 하면 성별이 바뀝니다.”
지구 존재가 말했다.
“정말입니까?”
외계 존재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지구 존재가 말했다.
“왜 그렇게 됐습니까?”
두 존재가 대화를 나눴다.
“지구에서 있었던 일 때문입니다.”
“무슨 일 말입니까?”
“먼 옛날 지구에 우리가 여자로 갔을 때, 지구 존재들이 우리를 폭행했습니다.”
“못된 남자 몇 명이 그랬겠죠.”
“아닙니다. 모든 남자가 그랬습니다.”
“모든 남자가 그랬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모든 남자가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조사해 보세요. 가담하지 않은 선량한 남자도 있었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조사해 보지 않아도 압니다. 지구상의 모든 남자가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모든 남자가 그랬다고 말하십니까?”
“우리를 폭행한 모든 존재는 남자였습니다.”
“…….”
“우리는 폭행을 막을 방법을 찾다가 유전자 변환을 결정했습니다. 우리는 성별을 우리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유전자 변환을 거치는 과정은 간단합니다. 우리가 폭행을 당한 후 남자로 변하자 가해자 지구 존재는 정신병자가 되고 자살을 했습니다. 가해자의 죽음을 보면서 우리는 웃었습니다. 뜻하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우리의 성별이 회복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해자가 스스로 죽기를 기다리거나, 남자가 된 피해자가 그 남자를 죽인 후 성별을 회복했죠.”
“그래서 지구에서 남자의 개체수가 줄었군요. 당신들이 떠난 후 지구에 남자들의 시체가 천지에 널렸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키스는, 제가 당신에게 허락받은 후 하고 싶은 키스는 폭행이 아니잖습니까. 사랑입니다.”
“키스도 그렇습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처음에는 강제적인 폭행 때에만 변환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지구 식으로 살다 보니 사랑도 폭행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랑으로 시작했다가 폭행으로 평생을 보내는 삶을 많이 보았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몸으로 표현하는 지구식 모든 사랑은 변환의 방아쇠가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지구가 불행을 만들었군요.”
“지구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요?”
“지구의 남자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지구의 남자입니다.”
“그래서 저는 키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당신과 키스하면 저는 성별이 바뀝니다. 성별이 바뀐 저를 사랑하시나요? 당신과 키스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성별을 찾기 위해 당신을 죽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법칙입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대로의 당신.”
“저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대로의 당신.”
지구 존재와 외계 존재는 서로의 입술을 만졌다.
외계 존재와 지구 존재는 영원히 키스하지 않고 사랑했다. 지구 존재는 가끔 사랑을 의심했다. 외계 존재는 의심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다. 지구 존재는 바뀌지 않는 외계 존재의 성별을 보면서 자신과 상대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박금산 소설가. 여수 출생. 《문예중앙》으로 등단. 서울과기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소설집 『생일선물』, 『바디페인팅』, 『그녀는 나의 발가락을 보았을까』. 장편소설 『아일랜드 식탁』, 『존재인 척 아닌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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