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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책·크리틱/백인덕/이탈離脫과 회귀回歸의 야간비행 ―강우식의 세계여행 시집, 『白夜』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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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책·크리틱/백인덕/이탈離脫과 회귀回歸의 야간비행 ―강우식의 세계여행 시집, 『白夜』에 부쳐
백인덕 시인
이탈離脫과 회귀回歸의 야간비행
―강우식의 세계여행 시집, 『白夜』에 부쳐
1.
정보의 홍수란 말조차 구태舊態가 된지 오래고, 오늘 나는 정보의 대기 안에서 나의 감각과 사유를 의심하며 체념인 듯 불가항력인 듯 습관적으로 맨 먼저 정보의 창고를 뒤진다. ‘백야’, 하얀 밤, 밤인데 햇빛이 비친다. 사위가 어둠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정도의 이해로는 불충분하거나 만족해선 안 된다는 어떤 강박이 정작 ‘시’를 감상하기도 전에 들이친다, 몰아세운다. 인터넷 포털 다음의 백과사전에 따르면, “백야白夜는 위도 48.5° 이상인 지역에서 여름 동안 밤하늘이 밝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하얀 밤’이라는 표현은 러시아에서 쓰는 것으로, 스웨덴 등 다른 지방에서는 이를 ‘한밤의 태양’으로 부른다. 하루 중 태양의 최저 고도가 -18° 이상일 때 일어난다,”고 되어있다. 하지만 이 정의가 시집 『白夜』를 감상하고 이해하는데 전부일리는 만무하고 과연 올바른 길잡이라도 되어줄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차라리 시인의 직접 전언에 귀 기울이는 편이 낳을 것 같다. 강우시 시인은 시집 말미에 붙인 ‘여적-세계여행시를 마무리하면서’에서 “세계 여행시집 제목을 “백야”로 하였다. 원래 이 제목으로는 세계 각국의 백야가 있는 나라들에 대한 시로써 한권의 시집을 엮으려 하였으나 내 나이가 어느덧 80이다. 백야가 뜬 나라를 일일이 여행한다는 것 자체마저도 욕심이다. 그리하여 아마 백야에 대한 세계 초유의 시집이 될 강우식의 백야는 맛만 보이고 여기서 접는다. 어느 때인가 후인이 있어 백야에 대한 좋은 시를 써서 시집으로 내었으면 한다. 나의 백야에는 우리민족이 백의민족이고 흰색(밝음, 광명)을 사랑하는 민족의 시원까지 거슬러 오르는 시적 오로라 같은 상상력도 작품에 들어 있었으나 그것마저 접어야 하는 내 능력과 한계가 그저 아쉽고 아쉬울 뿐이다.“라고 소회를 밝히고 있다. 추려보면 이번 시집은 시인의 원대한 계획의 일부일 뿐이고, 그렇게 된 연유의 물리적, 심리적 요소를 담담히 밝히고 후인(물론 후배 시인이 되겠지만)이 있어 ‘한민족’과 나아가 인류의 전체(흰색)의 집단 상징, 다시 말해 ‘백야’를 소재 차원에서만 다루지 말고 인간 정신의 ‘원형archetype’으로까지 확장해 달라는 작지만 결코 소박하지 않은 바람을 피력한다.
괴테는 60줄에 <파우스트>를 쓰기 시작하여
80에 완성하였다는 말을 듣고서
내 나이 여든까지는 아직은 한 살쯤 밑이니
사는 날까지 마라톤선수는 아니지만
완보의 걸음이더라도
녹슬기보다는 닳아 없어지자며
신발짝이 해지도록 세계를 쏘다녔다.
하늘길이건 바닷길이건 흙길이건
어디든 역마살이 끼인 듯이
자고 일어나면 문을 차고 나섰다.
방구석 앉은뱅이 신세로 사는 게
마치 온몸에 좀이 슬은 것 같아서
수류화개水流花開 로 흐르듯 했다.
큰길이든 갓길이든 골목이든
살아온 인생이 그러하듯이
자기가 다녔던 길을 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래도 어느 한 순간에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스스로 지나온 길을 돌아 볼 때가 있는데
언젠가 새로운 하늘 길을 가다
내 살던 지상의 길을 내려다보니
얼기설기 나뭇가지처럼 뻗어 있는 그 끝에
집들이 열매처럼 달려 있었다.
바나나 같은 집, 망고, 두리안 같은 집,
파파야 열매 같은 집, 씀바귀 같은 집,
사과, 배, 복숭아, 대추, 밤 같은 집들도 있었다.
집들이 쓴물, 단물, 눈물, 콧물까지 다 들어 있는
열매라는 느낌이 내게 왔다.
길에 끝이 없다고 절망치 마라 머물면 길 끝이다.
내가 길을 찾아 떠나는 곳에는
언제나 길의 끝을 안다는 듯 집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서시-길의 기억」 전문
다시 시인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서시는 말 그대로 ‘여는 시’인데 시집을 열면서 더불어 ‘세계여행’을 닫으면서 이 작품에서 시인은 길 떠남의 동기와 과정, 그 결과를 순차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괴테를 상기하는 것은 강우식 시인 특유의 (약간의 과장을 내재한)해학적 포즈이고, 진짜 이유는 “사는 날까지 마라톤선수는 아니지만/완보의 걸음이더라도/녹슬기보다는 닳아 없어지자”는 필생의 각오가 섰기 때문이다. 각오가 다부지다면 그 다음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늘길이건 바닷길이건 흙길이건/어디든 역마살이 끼인 듯이/자고 일어나면 문을 차고 나섰”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수류화개’의 와중에 시인은 문득 깨닫는다. “언젠가 새로운 하늘 길을 가다/내 살던 지상의 길을 내려다보니/얼기설기 나뭇가지처럼 뻗어 있는 그 끝에/집들이 열매처럼 달려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시인의 길 떠남은 오히려 한결 수월해지는데 왜냐하면 “길을 찾아 떠나는 곳에는/언제나 길의 끝을 안다는 듯 집이 자리 잡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인에게 여행은 ‘길’을 찾아 떠나는 것이고, 다시 ‘집’을 찾아 길의 매듭을 짓는 일종의 수련修練과도 같은 행위다. 따라서 시인의 세계여행 시집은 이국의 경치와 풍물로 짜깁기하는 박물지博物誌가 아니고 훗날의 쓰임을 위해 지역의 규모와 자원과 도로 등의 상세를 기록하는 보고서 따위도 될 수 없다. ‘길과 집’이라는 존재의 미증유의 숙명적 유혹 앞에서 이탈(길 떠남)과 회귀(집 찾음)를 반복하는, 아니 그 ‘사이’, 사이의 길항拮抗을 사유하고 형상화한 보석 같은 결정체라 해야 할 것이다. 방대한 내용을 세세하게 짚을 수는 없지만 여기서는 시인이 길과 ‘그곳’에서 투사하고 또 역반사로 들춰낸 정서의 몇 개 궤적만을 따라 가보고자 한다.
2.
강우식 시인의 ‘사랑의 시인’이다. 그것이 낭만적인 것이든 지극히 예술적인 것이든 별 무관하게 시인은 사랑의 추구와 그 순간순간 엄습하는 전율을 좇는다. 아니 향유하고자 하며 나아가 울림으로 널리 확산하고자 한다.
어느 곳인들 차이가 없겠느냐마는
사람마저도 인산인해로 차이가 나는
차이나의 장강삼협은 강의 만리장성이다.
내가 장강의 물줄기를 타는 것은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흐르는 대로 되는대로
물의 자연을 따르고 싶어서다.
이 강의 어디쯤에
오뉴월이면 흰 꽃을 다는 산사나무가
붉은 꽃을 피웠다는 기적 같은
지금은 물속에 잠긴 산사나무 사랑이 있어서다.
양자강 물길처럼
어쩌다 실핏줄 같은 인연이 이어져서
흰 꽃도 사랑하는 사람의 피가 스며들어 붉게 피는
산사나무 아래서 이룬 사랑.
장강은 한때는 모택동 사상 때문에
수많은 지식인 청춘 남녀들이 흐르고 흘러
도시에서 산골오지까지 역류되어 온 곳.
기약 없는 내일을 믿으며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 사랑을 틔우고
그 사랑이 모택동 어록보다
더 큰 혁명이기를 바라며 이루지 못할 사랑을
깊은 산골처럼 숨어 했던 곳.
사랑이 이 세상에 왜 있는가 하면
아무리 잊으려 하고 나를 바꾸고 버려도 변하지 않는
당신을 만나 행복했던 그런 진실이 있기 때문이리.
내 나이 여든, 늙은이 가슴에도 사랑은 있어
깊디깊은 물결 속에서도 아직 살아있는 산사나무
그 사랑의 파동을 찾고파서
오늘도 나는 장강하고도 삼협의 협곡을 돈다.
―「장강삼협을 지나며」 전문
시인은 거대한 중국의 한 가운데 장강의 삼협에 든다. 이 여행은 말 그대로 수류화개의 처세에도 부합하지만 더 내밀한 동인動因은 “이 강 어디쯤에/오뉴월이면 흰 꽃을 다는 산사나무가/붉은 꽃을 피웠다는 기적 같은/지금은 물속에 잠긴 산사나무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겉으로 드러내는 이유일 뿐 사실은 “기약 없는 내일을 믿으며/사람과 사람끼리 만나 사랑을 틔우고/그 사랑이 모택동 어록보다/더 튼 혁명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현대중국, 세계의 중환자에서 당당히 G2의 반열에 오른 초강대국 중국의 초석을 놓은 ‘모택종 어록’보다 시인은 ‘흰 꽃’을 달아야 하는 산사나무가 ‘어느 유월에 붉은 꽃’을 달았다는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가슴에 품는 것이야 말로 시인의 자세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시인은 분명하게 “내 나이 여든, 늙은이 가슴에도 사랑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 사랑의 파동을 찾고파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장강하고도 삼협의 협곡을 돈다” 이쯤이면 그 사랑은 곧 존재의 자기 증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강우식 시인은 이 사랑에의 염원을 확산해 장강을 떠나 태평양 한 가운데 마리아나 해구에까지 다다른다. “세계에서 제일 깊은 바다가 있는 해구 위로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무지개가 떴다. 무지개다리 위로 나는 자전거를 타고 어머니를 뵈러간다. 저 바다에는 어머니가 계시다. 수심 1만 미터의 심연도 겁나지 않다.”(「마리아나해구」)고 한다.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에베레스트를 거꾸로 박아도 흔적이 없을 심연 앞에서 시인은 공포가 아니라 일종의 완벽한 보유를 생각한다. “그 해표면 위에 나는 평소에 어머니처럼 간직했던 은가락지를 떨어뜨렸다. 은가락지 속에 바다로 침잠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시인의 사랑은 장강삼협이나 마리아나해구처럼 길 끝의 집에서 떠오르기도 하지만 체 게바라 마그넷(「체 게바라」)이나 이제 사 맘 놓고 보라고 꺼내 놓고 잠드는 「타조 알」처럼 익숙한 집 안의 사물들에게서 발견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새로운 의미로 되살아나는 발견의 압권이라 해야 할 것이다.
3.
앞에 잠시 언급했지만 강우식 시인의 세계여행시집은 그 규모와 궤적의 방대함에 있어 과연 ‘세계’라는 수식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충실하다. 시집을 천천히 세심하게 읽는 독자라면 이번 시집이 오랜 기획과 투자의 결과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세세한 부분은 독자의 몫으로 남기고 끝으로 「야간비행 - 팔라우에서」를 통해 시인이 닫는 세계여행의 종장終章을 살펴보고자 한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하늘을 가지고 있다.
태어나 살다 자기도 모르는 세계로 가면
하늘천국이 된다.
수심 2천 미터나 되는
팔라우 바다에서 나는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어젯밤 야간비행에서 본
하늘나라와 이 물속도 다르지 않다고 여긴다.
어린이가 내 손을 잡아 이끌듯이
처음 미지의 세계로 유영하는 우주비행사처럼
하늘은 디딜 땅이 필요 없는 별의 2층집이다.
내가 체험하지 못한 낯선 풍경이 천국이듯이
낱낱이 보석 같은 팔라우물고기들도 물 밖
지상은 살아서는 갈 수 없는 다 미지의 별이다.
우리가 대기권 밖 세계로의 일탈을 꿈꾸듯이
물고기들의 유토피아는 물 밖 세상일 것이다.
가난하고 추운 젊은 날
들꽃처럼 돋아난 사랑 하나를 키우기 위해
가슴에 얼마나 별의 집들을 가지길 소망했던가.
그 별의 집이 비록 작은 방 한 간의 암자일지라도
나만의 보금자리로 살기로 꿈꾸었던가.
살아 숨 쉬는 것들은 모두 나름의 꿈을 가진다.
죽은 별들이 내는 빛의 기적을 보듯
밤마다 은하수 저 너머에 뭐가 있을까 꿈을 꾼다.
어린왕자였던 옛날 옛적의 꿈,
오늘도 별을 이루기 위해 야간비행을 하며
하늘나라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한다.
―「야간비행-팔라우에서」 부분
이 작품은 모두 11개의 작품을 아라비아 숫자로 표제 한 일련의 연작시라 할 수 있다. ‘야간비행’은 ‘어린 왕자’ 때문에 생떽쥐페리의 것이기도 하지만, 앞의 「서시」에서 볼 수 있었듯이 강우식 시인의 것이기도 하다. 사막과 바다는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생떽쥐페리의 야간비행이 인간의 무화無化를, 고요와 침묵을 향해 나는 것이라면 강우식의 야간비행은 인간다움으로의 승화와 그 파동의 울림을 위해 난다. 시인은 남태평양 한 가운데 팔라우 섬에 야간비행으로 가서 “수심 2천 미터나 되는/라우 바다에서 나는 스쿠버다이빙을 하며/어젯밤 야간비행에서 본/하늘나라와 이 물속도 다르지 않다고 여긴다.”고 밝힌다. 왜냐하면 그렇게 보는 화가가 눈에는 “가난하고 추운 젊은 날”이 마치 필터처럼 내려져 하늘나라와 깊은 물속을 한 가지로 보게 하기 때문이다. ‘꿈’과 ‘희망’이라는 필터를 내린 채 세계를 보면 세계 어디나 길이고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번 세계여행시집을 묶은 동기를 독자에게 권하는 형식으로 다시 한 번 들려준다. 이 시의 5번째 작품이 그것이다. 얼기설기, 거대한 향유고래 배 밑에 붙은 조개 꼴이 되었지만 강우식 시인의 나직하면서도 묵직한 당부를 다시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친다,
어린왕자가 되자.
어른이 되어서는 꿈들도
자기 욕심이 아닌 것은 가질 수 없다.
지구를 벗어나고 싶다는 것은
다시 옛날로 돌아가 어린이가 되어
무지개를 가지고 싶다는 것이다.
꿈을 꿀 수 있는 밤이 되어
별이 돋아나면
누구나 하늘나라에 가고 싶고
야간비행을 하고 싶어진다.
어린왕자가 되는 꿈을 가지고 싶다면
야간비행을 하며 한 번쯤은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보다
더 고도를 높여 떠보고
케이프타운 희망봉 끝자락에서는
보이지 않는 동과 서로 갈리는
바다 물길에 어디로 갈지 점도 쳐보자.
어른이 되어서 가질 수 없던 꿈
어른이면서 어린이가 되는 야간비행을 하면서
내 별들을 하나씩 둘씩 밤하늘에 수놓자.
―「야간비행-팔라우에서」 부분
*백인덕 199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끝을 찾아서』, 『한밤의 못질』, 『오래된 약』,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가』, 『단단斷斷함에 대하여』, 『짐작의 우주』. 저서 『사이버 시대의 시적 상상력』 등. 본지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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