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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신작시/박설희/건배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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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008회 작성일 16-12-3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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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박설희




건배



흙먼지 깊게 쌓인 길을
전진 또 전진
너무 가벼워 폴폴 날리는 곱고 보드라운 길
비가 오면 바퀴와 몸통을 삼켜버리는 길



우리는 건배를 했지
전진 또 전진
이백 년 전 시간을 찾아 넘어가는 청석령 고개
앞만 보고 시선을 돌리지 않기로 한 기약들



길가의 흰 꽃 한 송이 깊게 눈 맞춘 것뿐인데
들꽃을 좋아한 누군가를 잠시 생각했던 것뿐인데
귓가에 풀벌레 울음,
하늘에는 덩그러니 초승달
헐떡이는 조그만 짐승처럼



길을 찾으면 다시 건배를 하리
밤길을 가는 이의 발끝이 날렵하기를
그의 눈이 밝고
가방엔 양식이 있기를



안의 밝음이 밖의 어둠을 이기지 못할 때
처음부터 걷는 법을 다시 배운다
수천 년 먼짓길을 굴러내린다
믿는 것은 지나온 길
몸에 각인된 길을 다시 펼쳐본다



길은 끝없고
저 초승달도 다시 시작이다





구로애경역사를 지나며



아버지의 자랑은 영동대교
마지막 작품은 구로애경역사
“내가 그것들을 지었다”고 말할 때
그의 얼굴은 빛났다



다리와 역사와 빌딩들은 자라
열 살, 스무 살…
할 일은 끝났다고
이제 그만 집에서 쉬라고
등짐 지고 오르내린 시간이 얼마인데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 했다고 담담히 전할 때



몸은 수척했다
숨어 있던 이목구비가 드러났다
 
평생 받아본 적 없는 긴 휴가
도토리를 줍는다, 꽃을 꺾는다,
아버지는 분주했다 소년처럼
점점 작아져갔다
그리고 돌아갔다



오늘도
63빌딩, 올림픽대로가 자랑인
박씨 김씨 이씨로 불리는 이들
불콰한 한 잔에 허물어지듯 몸을 부리는



구로애경역사를 지나며
당신이 할 일은 끝났다는 환청을 듣는다
아버지의 마지막 작품을 되돌아본다




**약력:강원도 속초 출생. 2003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쪽문으로 드나드는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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