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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신작시/정동철/얼음 열쇠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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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정동철
얼음 열쇠
아침 산책길에 청동색깔 열쇠
복사꽃 그늘 아래 놓여져 있다
머금은 이슬이 푸른 산을 흰 새를
은모래 반짝이는 강변을 담고 있다
버려진 것일까
잃어버린 것일까
한 때 잠긴 문을 열던 것
열린 문을 굳게 닫아걸던 것
이것으로 어떤 비밀의 세상을 열 수 있을지
망설이는 동안,
아침 햇살이 하루를 연다
닫힌 문 앞에서 돌아온 적이 있다
내가 가졌던 것은 투명한 눈물
완고하게 잠긴 문 앞에서
담장 너머를 기웃거린 적이 있다
단단했으나
흔적없이 녹아버릴까봐
가슴께만 품고 다니던 빛나던 얼음 열쇠
닫힌 문 앞에서
차가운 열쇠만 만지작거렸다
회색 콘크리트 길바닥에 열쇠를 들이민다
한 번도 허락되지 않았던
지구 안쪽의 문을 연다
안녕, 키다리 아저씨
그 곳에 가면 키다리 아저씨가 있어
상처 난 목재 몇 개 철제 비계가 나뒹구는 그 곳
가진 것이라고는 실밥 터진 쿠션의자 서넛 뿐이지만
복사꽃 그늘 아래 늘어지게 낮잠을 즐기기도 하지
가끔은 그늘에 가려 그냥 복숭나무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
그것은 뭣 모르고 지나는 바람이나 흙먼지를 일으키며
남은 자재를 실어 나르는 트럭들의 생각일 뿐
한때 아저씨가 빛나는 속도였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지
정오가 되면 책가방을 들쳐메고 아이들이 달려와
복숭나무 그늘 아래 아이들이 음표처럼 매달려
한 칸, 두 칸 뛰어내려 그때마다
아저씨와 복사꽃 그늘이 좁아졌다 늘어났다 하는 것은
순전히 아저씨가 복숭나무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는 탓이지
낮달은 창문틀에 낮은음자리표로 내려앉고
복사꽃 그늘 아래 분홍빛 꽃잎들은 건반 위를 뛰어다녀
노랫소리 점점 커져가지
건반을 두드리는 어깨가 낡았다고
악보를 옮겨 적다 말고 복숭나무, 나뭇가지 하나 내어 아저씨를 감싸지
녹슬어가는 바퀴가 아직은 쓸만하다
이 정도면 속도를 잊고 늙어가도 괜찮다고 혼자서 꾸벅 졸 때마다
안녕, 키다리 아저씨
복사꽃 몇 잎 꺄르륵 굴러다니지
**약력:전북 전주 출생. 2006년 〈광주일보〉, 〈전남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현재 우석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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