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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신작시/도복희/토끼를 원하지 않아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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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도복희
토끼를 원하지 않아
몇 구비 넘도록 끝나지 않는 토끼사냥
토끼굴은 비어 있어야 한다
오월의 잎 사이로 토끼귀가 보일듯 사라진 날
없는 당신을 서너 번씩 움켜 잡기도 할 것이다
갇힌 숲, 빈 자리에 대처하는 방법에 붉은 이끼가 자랄 것이다
오전의 방문을 열고
가을인지 겨울인지 아니면 봄인지
계절이 없는 숲으로 가자
몇 개의 능선을 오르내리고
놓친 구름의 방향을 되찾아 가는 발에 물집 터져도
토끼는 보이지 않는다
날짐승들이 삼나무 그늘에 깃들어 부화하는 시간
떠난 이름들은 풍문으로 떠돌테지
너라는 그리움에 붉은 귀가 자란다는 걸 안다
긴 머리카락을 질끈 묶고
내달리던 방향에서 편서풍이 불어온다
구름의 이마를 만진다
붉은 귀 토끼는 이제 내 가슴을 떠나야 한다
오늘이라는 느낌
당신이 신청한 봄의 느낌은 현재 품절 상태죠
제철의 구름과 햇빛의 물량이 조기에 동이 났어요
물서른 감정상태를 원한다면 미리 예약해 두세요
순번이 밀려 있긴 하지만
고이는 대로 배달해 드립니다
계절별로 원하는 수량이 달라져서
적절량을 확보하기는 어렵습니다
환절기에 품귀현상은 더욱 두드러지죠
느낌의 능력으로 당신은
무너진 자리 너머에서
옥죄던 오후의 일상을 날려 버릴 겁니다
계수나무 숲에 바람으로 흐르고
푸른 뱀의 살갗으로 오늘을 읽어낼 것입니다
나무의 물관을 따라 새벽에 당도했나요
귓등으로 스며드는 비
영혼이 젖어요 잎눈이 간지러워요
아침이 되면 검은 가지마다 눈 뜬 초록들
팡팡 터져나온 저것들은 봄의 함성입니다
택배는 정오에 도착할 것이니 기다려주세요
주문하신 오늘이라는 느낌은 착불입니다
칠일 이내 반품이 가능하나
훼손되는 일 없도록 주의하세요
**약력:충남 부여 출생. 2011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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