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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소시집/권정일/유정한 음악처럼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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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090회 작성일 16-12-30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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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집

권정일





유정한 음악처럼




파란 색소폰이 울고 있다.
유정한 음악처럼



조도가 낮은 가로등 아래 무반주의
취객 한사람과 고양이 두 마리 사이에서



저 고양이는 눈물의 장르를 언제 배워야 하나.



흘렸을 눈물과 흘려야 할 눈물 그리고 눈물
넘치도록 그것은 있고



떠밀려온 자들은 울음이 길다.
목을 늘여 바라보는 무정과 흐르는 것의 다정



슬픔은 이상한 것이다.
한사코 흐르는 것이 있다.




마야



한 알의 염주를 더 굴렸을 때 손금을 돌아다니는 권총과 튤립을 마야라고 하자



총알 같은 흥분과
주홍 같은 황홀을



이런들 저런들 그러모으는 이때 마야를 환영과 허위에 충만한 물질이라고 하자



권총은 총부리를 겨냥하다 사람처럼 죽고
튤립은 염주가 염주를 건너가는 순간에만 소소곡절 꽃잎을 열고



권총과 튤립은 서로의 다라니를 꿈꾸는데 다라니는 소리를 보는 귀를 잃어버렸다



주렁주렁 귀를 달고 수도승처럼 지나가는 마야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도다*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도다



명부전에서 원통보전으로 
한 칸 한 칸 영락없는 디딤돌을 오르는 권총에 튤립을 장전한 마야



 정말 당신이 마야라면 당신을 쏘아버리겠다 그때
 권총과 튤립이 손을 들어도 좋다




    *솔로몬의 말





소리의 언해본




고요를 견디면
귀에서 소리가 자라



오래 돌아오지 않은 메아리와
누군가 내다버린 귓속말들이 결합하여
귓밥이 팝콘처럼 핀다



귓바퀴에 부딪히는 구름의 언어가
푸른 몸이 되곤 하지만



숨길 몸이 없다



소리를 주장하며
소리의 틈을 언해하는 소리들 무릇,


 
(3 · 4 · 3 · 4 조로 열리는 문
바람 없이 불교 없이 지는 풍란
속눈썹에서 소리가 튀는 미토콘드리아 이브
그날 이후 드러누운 벌렁벌렁 물소
사랑해사랑해 빗방울을 립싱크 하는 창
에밀레에밀레 바람에 걸려 넘어지는 현관)



처럼,

소리는 못 갖춘 소리의
어디까지를 파고들어야 하나



타 악 타 악
순행과 역행하는 귓바퀴
악보 없는 혈관을 흐르는 고요는





시간의 해례본




감쪽같이

먹었어요.



크로노스가 금쪽같은 시간을



시간의 얼굴을 잘 가꾸어야만 했는데 골짜기를 키웠습니다.
남아도는 시간이나 죽이자 했던 죄입니다.



시간의 뼈는 인(印, p)을 생산했습니다.
그것은 알루미늄케이스에 든 용각산처럼
소리가 나지 않아 가져본 적 없는 당신



흔드는지조차 모르는
당신을 끝까지
흔들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안았습니다.
후려쳤습니다.
표독스럽게
 


또박또박, 날인하며 빼내가는 시간을 째깍째깍 웃어주었습니다.



하 하 하

열두시의 웃음과 열두시의 웃음이 닮았습니다.
열두시의 얼굴과 열두시의 얼굴 포인트가 똑같습니다.



시간은 낫을 들어
‘어서, 어서어서 자라는’ 머리카락을 오래오래 베어 먹습니다.
그리고 머릿결을 하얗게 날립니다.  





동쪽



나를 지은(作) Eve여



 뱀이 유혹해서 다행입니다. 낙원에서 쫓겨나서 아주 다행입니다. 원죄를 움켜쥐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태양이 솟아오를 때 당신을 부르면 활활 타오르는 햇덩이가 만져집니다.



 나의 팜므파탈 Eve여



 나는 당신의 작입니다. 대지의 진동을 감지하는 햇귀에서 힘이 솟아나오고, 끊임없이 뿜어내고 있는 열기와 사바나초원의 톰슨가젤 그리고 흰 코뿔소의 뿔, 실재하는 모든 것이 신의 화육이라 해도, 뱀의 유혹이 아니더라도, 선악의 열매를 스스로 따먹었을



 Eve, 나의 에덴이여



 안정된 대기에서 바람이 불어와 햇살 속으로 이끌리는 매, 수메르에서 갠지스 황무지의 대륙까지, 동쪽으로 뻗어내려 질서정연한 영봉들의 행렬, 강과 함께 가라앉고 강과 함께 솟아오른 그 맨 처음의 죄가 죽음을 불러온다할지라도



 싹이 난 감자의 연금술을 위해서, 물빛으로 튀는 바다의 맥박을 위해서, 토란 잎사귀에서 구르는 이슬방울을 위해서 나는 지금 사바를 쥐고 동쪽으로 몸을 비틀어 말없이 난폭한 일출을 봅니다.



 양들의 눈으로 나를 만드는 Eve여





시작메모



#
음악은 유정하고 무정하고 다정하다. 흘러내리는 액체와 기화하는 액체, 사이에서 눈물을 배울 때가 있다. 거리의 악사들 등 뒤로 나를 흘려보내며 흐르며



#
고요는 소리를 동반하고 온다. 울음은 슬픔을 슬퍼하며 온다. 시간은 멈출 줄 모르는 머리카락을 물들이며 온다. 나에게로 오는 것들을 움켜쥐고 늘 동쪽에 서 있다.



#
그래서
헛되고 헛되고 헛된 기도와 노래가
헛되고 헛되고 헛된 작作이 아니기를 작위이기를…….





**약력:1999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양들의 저녁이 왔다』 외 2권 산문집 『치유의 음악』. 제1회 김구용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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