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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신작시/강우식/새집에 대하여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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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강우식
새집에 대하여
요즈음 새집을 보면
나뭇가지로만 짓는 게 아니라
아파트를 짓듯이 철사줄을 가져다
철근도 박는다고 한다.
새나 사람이나 삶은 가파르다.
천 길 벼랑의 돌틈 사이의 새집.
새라고 저런 곳에 집을 짓고 싶었겠는가.
쫓기고 당하며 끝없이 밀려온 선택이 아니었겠는가.
그렇다. 생이란 어떤 막다른 골목이더라도
현재 있는 자리가 늘 최선의 마지막 선택이다.
선택이 새의 아무도 범접 못할 지혜고 자존심이다.
사람은 되도록 산사태나 물난리를 피해 집을 짓지만
그렇다고 삶의 행로가 평탄만 하였겠는가.
새가 집을 짓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생존을 위해 재생이 불가능한 핵을
마지막 수단이나 선택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나라와
의도와 방법은 다르지만
k-2나 에베레스트의 극한점까지 목숨을 걸고
한 발 한 발 무겁게 발을 떼는
사람들을 오늘도 나는 본다.
그들은 새와 똑같은 한계상황이 닥쳤을 때의
극한에 대해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시험하는 것으로 내게는 비친다.
새나 사람이나 삶은 가파르다.
그러한 삶이 험난하고 가파르더라도
아니 끝없이 슬프더라도 그 의지와 선택이
한편으로는 생의 자존과 긍지를 주기도 한다.
정이월 그리고 삼월
1월.
댕기머리처럼 길고 긴 칠흑 어둠이어도
님 오신 긴 밤이어서 오히려 짧아라.
사랑에 눈 멀어서 천지사방이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사랑이 어둠과 뭐 다르랴.
2월.
새닢 돋듯 파릇파릇하게 님이 오시려나
간간 눈이 녹고 길이 드러난다.
겨우내 장롱속에서 꿈꾸던 이불
짧은 햇볕이더라도 말려놔야되겠다.
3월.
얼었던 마음도 풀리는 게 따뜻하게 아파라.
누군가 숙면 끝에 기인 하품하며 깨어나는 소리.
명실상부한 꽃피는 봄인데 그까짓
겨우내 쌓였던 먼지가 좀 있기로서니 뭐 대수랴.
먼 산에는 아직 눈이 남아 있어 뽐내듯
그 잔설을 보며 피는 꽃이어서 더 아름다워라.
**약력:196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사행시초』, 『고려의 눈보라』, 『꽃을 꺾기 시작하면서』, 『물의 혼』, 『설연집』, 『어머니의 물감상자』, 『바보산수』, 『바보산수 가을 봄』, 『마추픽추』, 『사행시초2』 발간. 현대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한국펜클럽 문학상 시 부문, 성균문학상, 월탄문학상, 김만중문학상 수상.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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